체크리스트를 적고 채우는 것을 좋아했던 건
중학교 때부터였던 것 같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
한 달 단위 먼쓸리 플래너를
사용하기 시작했었다.
처음 사용했던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플래너와 체크리스트는
나를 지탱해왔던 하나의 큰 줄기가 아니었나 싶다.
다 달성해보겠다고
스스로를 옥죄기도 했었지만
체크리스트는 하나의 기쁨이기도 했다.
할 일을 목록으로 정리하고,
그것을 하나하나 지워나가는 일이
나름의 뿌듯함과 성취감을 줬다.
거기다 하나씩 체크해나가다가
집에 가기 전에 모두 체크된 그 리스트를 보았을 때의 짜릿함이란. 크.
하지만 그 짜릿함은 언제나 짧았다.
하나를 끝내면 곧장 다음 항목이 기다리고 있었고,
모두 채우지 못한 날이면
괜히 스스로를 나무랐다.
“이건 왜 못했어.”
“오늘 아무 것도 못했네."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100%를 향해 달렸던 것 같다.
연세대 심리학과 이동귀 교수님은
완벽주의자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선
이 네 가지를 기억하라고 말했다.
1. ‘해야 한다’ 앞에 ‘가능하면’을 붙이기
2. 계획의 70%만 달성한다고 생각하기
3. 노력한 부분은 인정하고 칭찬하기
4.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기
이 중에서도 교수님은
“계획의 70%만 달성한다고 생각하기”를
특히 중요하게 봤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런 말을 스스로에게
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공부해야 할 과목들을
줄줄이 써내려가며
책상 앞에 앉았던 어느 새벽.
그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중에서 80%만 한다고 생각하자.
나머지는 내일 하면 돼.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그 말 한마디로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고,
그 덕분에 결국엔
세웠던 목표의 많은 부분을 해냈다.
이제는 고3이 아니라,
누가 나를 감시하거나
성적을 매기지 않는 어른이 되었지만
때로는 그때보다 더 초조하고 불안할 때가 있다.
누가 정해준 기준이 없으니까
매일 새 기준을 만들어냈고,
그 기준은 점점 더 높아졌다.
그래서 요즘은 다시,
그때의 나처럼
이 말을 중얼거린다.
“이 중에서 70%만 한다고 생각하자.
나머지는 내일 하면 돼.”
70%만 해도 괜찮다.
사실 우리는 계획을 세울 때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양보다
10~20%쯤은 더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다.
모두 채우지 않아도,
그 안에서도 충분히 의미를 만들 수 있다.
남은 30%는 내일의 나에게 맡겨도 된다.
요즘 나는 그 불완전함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빈칸이 남아 있다는 건
내일도 살아갈 여지가 있다는 뜻이니까.
70%만 해도 괜찮다는 말은,
결국 오늘의 나를
이만큼이면 충분하다고
품어주는 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