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조금은 내려두자고 결심하며
나에게 끊임없이 말해줬던 것이 있다.
제발 좀 현실 속에서 계획을 세워라.
인정해야 했다.
몸을 동시에 두 개를 쓸 수도 없었고
내 몸은 아무리 운동을 해도 체력의 한계가 있었다.
나는 기계가 아니었다.
사려 깊게 사용하지 않으면
어딘가 탈이 났다.
작년 여름,
밥도 잘 안 먹고 잠도 안 자며
어떤 일에 몰두했다가
면역력이 완전히 떨어져서
한여름에 전기장판을
이불처럼 뒤집어쓰고 벌벌 떨며
일주일을 지냈다.
동네 의사선생님도 의아해하실 정도로
오한이 오래가서 큰 병이 아닌가
겁이 날 정도였다.
몇 년의 나를 지켜보다 보면
일중독 증세가 있기는 했다.
일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별로 일이라고 생각 안 하고 그냥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일하는 시간이 쭉쭉 길어지는 편이었는데,
퇴근 시간 이후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는
꼭 더 일을 하고 갔었다.
사실은 집에 가서도
아이를 재우고 계속 일했었다.
이제는 안다.
일을 좋아했다기보다는
직장에서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모습을 보고
혼자서 뿌듯해했다는걸.
그리고 동료들로부터
"아니, 이걸 어떻게 하셨어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집에서 다 해치우고
직장에서는 여유 있는 척해왔다는걸.
쓸데없는 허세였다.
또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 교수인
라인홀드 니버 박사가 쓴 기도문에
이런 말이 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은혜를 주시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그리고 그 차이를 깨닫게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라인홀드 니버 박사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의 경계는
일과 삶의 경계이기도 한 것 같다.
일과 삶 사이에는
조금의 거리감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1년 동안 크게 아프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다.
워낙 건강하다가
크게 앓은 적이 몇 번 있고나서야 알아차렸다.
눈을 들어 보니
늘 집까지 일거리를 들고 오곤 했다.
집에서 시간이 생겨서 일을 하든 말든
상관없이 매일 가져왔었는데,
보통은 일거리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스트레스성 물질인
노르아드레날린의 스위치가 바로 켜진다고 한다.
온앤오프를 확실히 하기 위해
일의 마지노선을 정하며 살아보려고 한다.
다 못 끝냈으면 다음 날 와서 하면 되는 거다.
다 못했다고
나도, 일도, 직장도 안 무너진다.
삶에는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할 때도 있지만,
매일 조금씩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