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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지나, 나에게로 (완결)

by 뇽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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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장 좋은 점은

나이가 먹어가는 만큼

조금씩 마음의 여유가 생겨난다는 거예요.



물론 이제 웃을 때마다 생기기 시작하는

눈가의 주름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요.



새파랗게 어린 나이도 아니고

아직 익어갈 나이도 아니지만

20대의 저보다는

30대 중반의 제가 좋습니다.



20대의 저는

스스로 만들어낸 강박이나 불안들로

이리저리 부딪치며 살았던 것 같아요.



30대의 저는

예전보다는 적당한 수준의 강박과

적당한 스트레스 속에서 지내면서

그래도 스스로를 많이 살필 수 있게 되었어요.



이건 대단한 부분이 바뀌어서

그렇게 되었다기보다는,

그때그때의 제 기분과 감정을 존중해 주게 되면서

점점 바뀌게 되었던 것 같아요.



예전부터 틈이 날 때마다

책이나 소설을 읽는 편이에요.



좋아서 읽지만

한편에는 책을 읽어야겠다는 의무감으로 읽기도 해요.



그냥 내키는 대로 읽으면

재밌는 소설들을 위주로 읽기 쉽거든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100페이지로 분량을 정해두고

책을 읽곤 했어요.



다 못 읽으면 새벽이 넘어서도

잠자리에 들지 않았어요.



요즘에는 일단 그렇게 무리하게 계획을 안 짭니다.



그리고 시간이 안 나면

직장을 오고 가는 차 안에서

오디오북으로 책의 내용을 들으면서 오기도 합니다.



어느 날은 일 끝내고 집에 돌아갈 때

머릿속으로 모든 것들이 밀리다 못해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예전에는 그런 제 기분을 무시하고

하루 하루 해야 하는 일들을

무조건적으로 다 하곤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부정적이거나 조금 게을러지는 제 기분도 인정해 줍니다.



뭐 어때요.

그냥 좋은 노래를 듣고

창문도 내리면서 바람맞으며 운전해요.



집에 도착하고 나면

훨씬 더 개운한 마음이 됩니다.



예전에는 모든 게

의지의 문제인 줄 알았거든요?



의지만 불태우면

어떻게든 모든 것이 굴러갈 줄 알았죠.



그래서 지치고 힘들어서 쉬고 싶은데

해야 할 것이 남았다면



정신 차려.
지금 그런 마음 가질 때 아니야.
잠이 오냐. 잠이 올 때냐. 정신 차리자.



생각하며 제 마음 자체를 부정했던 것 같아요.



결국엔 어느 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이 오더라고요.



'당신이 옳다'라는 책으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님의 강연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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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youtu.be/uvy9T_coMYw?si=b7YnMFfk_HDKXjn2




내 존재의 핵심은 감정이에요, 느낌이에요.
그것을 알아주지 않으면 내가 나에서 멀어지고 잃어버려요.
그러면 반드시 병이 나요.

-정혜신 교수 tvn <어쩌다 어른>-



감정과 느낌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내 존재의 핵심인 것이죠.



사실상 나를 이루고 있는 '감정'을

살펴주지 못하면

결국은 오래 못 가더라고요.



특히 몸이 좋지 않거나

심하게 가라앉았을 때

반드시 시간을 내서 들여다 봐줘야

비로소 나 자신과 가까워질 수 있어요.



어려운 일을 다 해냈다면

뿌듯해하는 그 마음을 온전히 누려주고,

그럴만한 일이 있어 속상하다면

속상한 그 마음을 알아주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며 지냈으면 좋겠어요.



모든 감정을 다 받아주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 감정에만 오랫동안 머물러 있으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내 마음을 부정하지 않고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고

그랬구나, 하고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다음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돼요.



그리고 그 알아주는 목소리는

나 자신일 때가 가장 힘이 세고요.





나이가 들어가는 제 스스로가 좋은 이유는

단 한 가지네요.



이제야 제 감정과 느낌을

마주 서서 바라봐 줄 수 있는 제가 좋습니다.



그게 참 다행입니다.
















그동안 <열심히 사는데 왜 불안하지>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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