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욕망을 따라가기 바빴던 지난 날들.
왜 그랬을까 생각했는데
그때는 인생이 객관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1.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고르시오. ( )
① 도박 등으로 초중반부터 나락 가는 인생
② 그저 그렇게 살다가 노후에 쫄딱 망하는 인생
③ 열심히 살았지만 직장 안에서만 발버둥 치다가 노후에 땅을 치고 후회하는 인생
④ 젊었을 때 바짝 고생했다가 중년부터 여유 있게 사는 인생
⑤ 노력과 운이 겹쳐 젊었을 때부터 여유 있게 사는 인생
당연히 4번이나 5번을 고르고 싶었다.
나는 젊었을 때 조금 고생했다가
중년부터는 여유 있게 살아야지.
운대가 잘 맞으면 젊을 때부터
여유 있게 살 수 있을 거야.
그때에는 저 다섯 가지만 보고
눈앞에 보이는 것만 쫓으려고 했다.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니
인생은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포트폴리오나 작품 평가에 가깝다.
헝가리의 대문호 산도르 마라이는 소설 <열정>에서
'중요한 문제는 결국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한다.'라고 썼다.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이냐?"라는 질문에
사람은 살아가면서
삶이라는 포트폴리오나 장면, 작품으로 정리하여
나 자신에게 답하게 된다.
그런데 겨우 5가지의 선택지 안에서
정하려 했다는 게 가장 큰 오판이었다.
거기다 저 다섯 가지 선택지 안에서도
인생은 언제나 엎치락뒤치락할 수 있었다.
나락 가는 것 같다가도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게 인생이고,
좀 살만한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의 선망을 받더라도
곧바로 추락하는 게 인생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고
뉴스의 사회, 연예 면에서 매일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저 선택지는
오롯이 '경제력'에 대한 얘기뿐이다.
물론 노후까지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은
무조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인생은 그것뿐이 아니다.
매슬로우의 욕구체계 이론에서는
인간이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가 충족되면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소속감과 사랑을
원하게 된다고 한다.
안전하다고 느낄 정도의 경제력을 가지면
그 이후에는
스스로가 성장하고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도 필요하고,
가족을 비롯한 그룹에 속해 있으면서
그 안에서의 애정과 관계를 쌓아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어떤 인생을 살고 싶어?"라는
무겁고 어려운 질문이라서
흔히 사람들은 나처럼 이 질문을 객관식으로 만들어서
할 수 있는 답을 좁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답하는 것을 피하기도 한다.
인생이라는 것이 정답이 어디 있고
또 무작정 옳은 것이 어디에 있겠냐마는,
모두에게 각자에 맞는 답을 찾아가며 사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장 답을 내리지 않아도 되니,
스스로가 생각하는 괜찮은 인생은 무엇일지
구체적으로 그려나가고
고민해 보며 찾아보는 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