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개정 교육과정의 주요 골자 중 하나는 문이과 통합교육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고등학교 1학년은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통합사회', '통합과학' 그리고 '과학탐구실험' 과목을 공통으로 들어야 합니다. 2학년이 되면 일반선택 과목 중에서도 선택해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수학 과목을 예로 들면 '수학 1'과 '수학 2'는 공통으로 공부하지만, '미적분'과 '확률과 통계' 중에서는 한 과목을 선택해서 듣도록 하고 있죠.
문이과 소양을 두루 갖춘 소위 융합형 인재를 키우겠다는 개살구와 같은 말은 사실상 대학수학능력시험(이후 수능)에서 문과생들에게 시고 떫은맛을 제대로 맛보게 했습니다. 2022학년도 대입은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문이과 첫 통합 시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수학 선택과목에 따라 수능에서 유불리가 두드러져서 이과생의 '문과 침공' 현상이 대거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서울권역의 대학들은 자연계열 학과를 중심으로 입시에 유리한 과목을 지정해 놓은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서울대 기계공학부를 지원하는 학생은 '미적분'과 '기하', 그리고 '물리학 2'를 핵심 권장 과목으로 지정한 경우처럼 말입니다. 반면 인문계열 학과는 핵심 권장 과목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경제학부를 지원하는 학생에게 '미적분' 또는 '확률과 통계'를 권장 과목으로 지정해 놓은 정도죠. 하지만 난이도 차이를 좁히지 못해서 같은 원점수를 받고도 '확률과 통계' 응시생들의 표준점수는 '미적분' 응시생의 표준점수보다 낮았던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 2022학년도 정시모집에서 수학 조정점수를 높게 받은 '미적분'을 선택한 학생들이 대학을 높여서 소위 SKY의 인문계 학과에 지원하는 '문과 침공' 현상이 두드러졌던 것입니다.
문이과 구분이 사라졌기 때문에 공통과목에 대한 문제는 동일하고, 대신 선택과목에 따라 점수에 변별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보니 조정 점수에 유리한 '미적분'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계속해서 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진로와 적성을 고려해서 선택과목을 늘린 결과입니다. 선택과목의 수는 늘어났지만 입시에 유리한 과목으로의 쏠림 현상은 사실 입시 전문가가 아니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입시는 문제은행식 출제가 아니기 때문에 난이도와 변별력에서 늘 잡음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대학을 높여 들어간 '문과 침공' 학생들의 절반이 '반수'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단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난 뒤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교차지원을 한 학생들의 상당수가 후회를 하고 다시 입시를 치르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죠. 문제는 통합 수능의 유불리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교육당국이 알고 있으면서도 2023학년도 입시에 대해 별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학들이 입학생의 유지 충원율에 문제가 심각해서 극심한 반발을 하지 않는 한, 지금의 '문과 침공' 현상을 해결할 대안을 교육당국은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슬픈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맘고생은 학생과 학부모의 몫이 됩니다. 문과생은 이과생에게 밀려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고, 이과생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고도 적성에 맞지 않아 다시 수능을 준비하는 일이 생기니 말이죠. 개인이 지불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 거기에 전형료와 재수학원 비용 등을 생각하면 이건 굉장히 큰 사회적 낭비가 아닐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는 문제입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편제는 보통 교과의 경우 선택과목이 더 다양화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현재는 보통교과가 공통과목, 일반선택과목, 진로선택과목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여기에 융합선택과목까지 생긴다고 하니 선택의 폭은 더 넓어진다고 볼 수 있겠죠. 물론 아직까지 예정에 불과한 계획입니다만, 선택의 폭을 넓혀만 놓고 입시가 바뀌지 않는다면 지금의 문제는 당연히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역시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보여주기식 교육 정책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혼란과 맘고생은 온전히 학생과 학부모의 몫이 될 거라는 것을 교육당국은 간과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