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해도 될 수 없는 직업
유치원생 때부터 가요 프로그램을 즐겨 보았고, 늘 아이돌을 좋아했던 나. 어렸을 적 나는 집 안에서 밥 먹다가도 티브이 보면서 노래 부르고 춤 따라 췄던 흥 많은 어린이였다. 부모님들이 되고 싶은 꿈이 뭐냐고 물으면, 내 대답에는 가수가 꼭 들어가 있었다. 난 노래도 우렁차게 부르고 춤도 재미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나이 또래 대비해선 나름 못 부르고 못 추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치원 장기자랑 무대에서도 나름 주인공 역할을 맡았었다. 티브이에 나오면 마냥 재미있고 신날 것 같았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그 어린 나이에도 나는 현실을 인지하게 된다. 내가 아이돌을 할 수 있는 얼굴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초등학생들은 마냥 어리고 아무것도 모를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외모에 대해서 냉정하게 파악해나가기 시작하는 때다. 이미 그때부터 예쁜 아이들은 잘 노는 무리가 되고, 평범하거나 못 생긴 아이들은 반강제적(?)으로 모범생 무리가 된다. 내가 봐도 나는 예쁘지 않았다. 어떻게 해도 아이돌은 될 수 없는 외모였다. 굳이 따지자면 평범보다도 못생긴 축에 속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금이야 날카로운 느낌의 무쌍꺼풀이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시대라지만, 내가 어렸을 적 여성 아이돌은 대부분 쌍꺼풀이 있었다. 무쌍꺼풀이 아주 드물게 있다 하더라도 눈이 매우 크고 순한 느낌이어야 했다. 나는 고전적인 동양인의 전형적인 올라간 무쌍커풀의 눈매였다. 얼굴형도 예쁘지도 않았다. 체형은 마른 편이었지만 그게 다 였다. 나는 어느샌가 꿈이 가수라는 말을 안 하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 그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이 얼굴로는 절대 아이돌이 될 수 없어. 내가 꿈이 아이돌이라고 하면 모두들 나를 비웃을 거야. 그 누구도 그렇게 말한 사람은 없었지만, 어린 나이의 나는 그 현실을 본능적으로 파악했다.
훨씬 더 뒤에 태어나서 요즘 시대였다면 좀 달라졌을까. 아마 지금의 기준에도 아이돌을 하기는 조금 힘든 얼굴이 아닐까 생각되긴 하지만, 그래도 요즘은 그때보다는 훨씬 다양한 미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돌들이 있다. 그리고 내가 어렸을 적에는 성형수술이라는 것도 흔하지 않았었다. 지금의 어른이 된 나는 도리어 성형수술에 관심이 없지만, 만약 수술을 해서 아이돌이 될 수 있다면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화면에 잘 나오는 얼굴은 분명 또 다른 부분이니까. 아무튼 지금은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있다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는 아이돌이라는 건 아예 꿈도 꿀 수 없는 직업이었다.
예체능 계열이라는 게 다 그런 걸까.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아닌 분야. 하지만 내가 운동선수가 못 되고, 바이올린 연주자가 못 되는 데 얼굴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이돌은 정말 얼굴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솔직히 얼굴만 예쁘면 노래나 춤을 아주 뛰어나게 잘 하진 않아도 아이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돌들은 얼굴도 뛰어나고 춤, 노래와 프로듀싱까지도 잘 하지만, 그 능력이 없어도 아주 잘생기고 아주 예쁘면 여전히 지금도 아이돌은 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실 난 어렸을 적 아이돌이 되고 싶었다는 말 조차 할 수 없었다. 감히? 내가? 아이돌은 하고 싶어 해서도 안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요즘도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이제는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중고등학생 때 못생기면 공부라도 잘해야지.라는 말이 있었다. 얼굴이 못 생기면 다른 무언가를 열심히 해서 그 외모의 부족함을 보충해야 한다. 근데 그게 공부다. 다른 걸로는 보충이 안 되나 보다. 그런 말들에게서 은연중에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얼굴이 못 생기면 다른 꿈은 꿀 수도 없는 건가요. 그저 일단 공부나 잘하라는 그 말이 어찌 보면 조언을 빙자한 무례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청소년들한테 무조건 공부 먼저 잘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 이전에 꿈을 꿀 시간을 주는 게 먼저 일 것 같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때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이 분명 지금의 나에게 일정 부분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 어느샌가 상처를 받고 지나간 것도 사실이다.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넌 될 수 없을 거야. 많이 하고 싶었던 꿈일수록, 상처는 더 깊다. 질풍노도의 청소년 시기에 자존감과 당당함을 한 움큼 없애버리는 데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는 아이돌이라는 꿈을 숨죽여 감추고 없앨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아이돌이 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지금은 너무나 잘 안다. 한 해 수많은 아이돌들이 탄생하고 사라져 간다는 사실도, 그리고 그중에서 성공하려면 노력도 노력이고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엄청나게 따라줘야 한다는 사실도 안다. 아이돌이 막상 되어도 그 삶이 쉽지 않다고 한다. 인기를 얻기도 힘들지만, 그 인기로 인해 사생활이란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개인적인 것들이 낱낱이 공개되고, 과거의 언행과 현재의 행동 모두를 검열받아야 한다. 성공해서 돈을 잘 버는 아이돌은 극소수고, 대부분은 아이돌 준비로 인해 학창 시절을 애매하게 보내다가 상처 입고 떠나는 경우가 많다고도 들었다. 하지만, 아예 아이돌을 꿈도 꿀 수 없었던 그 어릴 적 마음으로 인한 아쉬움은 두고두고 내 안에 남아있었다. 다른 시기에 다른 삶으로 태어난 다면, 한 번쯤은 도전해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 아쉬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 라지만, 아이돌은 늦게 도전할 수 없는 직업이다.
그렇게 나는 세상이 하라는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입시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중고등학교의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