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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May 13. 2023

30년 외사랑의 흔적을 찾아, 이제라도 만나러 갑니다.

시오카리고개 기념관

 미우라아야코의 대표작은 <빙점>이다. 1964년 아사히신문에서 주최한 천만엔 소설공모전에서 1등을 했다. 1등한 그의 소설이 아사히신문에 연재되기 시작했는데 소설의 인기가 점차 치솟자 소문을 들은 한국에서도 일본어를 아는 사람이 번역하여 퍼졌다고 한다.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전무했던 시대라 일본에서 <빙점>이 단행본으로 출판되기도 전에 우리나라에서 먼저 내용의 일부를 <빙점 상>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적도 있다고 한다.


 나는 초등학교때였나, 엄마가 유독 열심히 챙겨보는 드라마가 있길래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티비앞에 앉아있곤 했다. 그 드라마가 <빙점>이었다. 내용은 잘 이해가 안됐지만 뭔가 긴박하게 진행되는 것 같았고 드라마에 출연했던 이미연언니가 너무 예뻐서 이미연언니 보는 즐거움으로 그 드라마를 보았다.


  후에 그 드라마의 원작이 소설 <빙점>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긴장감을 부르는 전개때문에도 소설을 열심히 읽었지만, 교회에 다니던 나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던 기독교의 "원죄"라는 개념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명확히 이해가 되어 더 아끼게 되었다. 그래서 이 소설이 더 좋았고 어떤 사람이 이 소설을 쓴건가 궁금해 작가를 추적하기 시작했고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으며 작가인 미우라아야코에 대해 더 알아가려고 애썼다.


 알고 싶을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으로 그의 이름을 검색하는 것, 그의 집필작을 찾아보고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읽어보는 것 정도 뿐이었다. 요즘 처럼 작가들이 하는 강연도 없던 시절이고, 매체와의 인터뷰도 찾기 어려웠고, 한국에 방문한 적도 없더라.


 검색끝에 '아사히가와'라는 곳에 <미우라아야코문학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13~4년 쯤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 블로그에서 <미우라아야코문학관>에 갔다가 미우라아야코의 남편인 미우라미쓰요를 만나게 되어 그의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영광이었다는 내용을 보고 일본어가 가능한 남편에게 같이 가자고 졸랐었다. 남편은 사실 문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서 반응이 시큰둥했었다.

 

 국내라면 나들이삼아 갈 수 있겠지만 일본에, 그것도 3시간 30분이가 걸리는 일본의 삿포로, 게다가 이름도 낯선 아사히가와라니. 그리고 이 문학관 말고는 근처에 별다른 관광지가 없어보였다. 거절하는 남편의 마음도 이해했다.


 그리운 마음은 점점 쌓이고 언어와 거리의 장벽은 너무나 명백하고, 그러니 더 궁금하고 더 파헤치고 싶어지고 그러면 더 그리워지는 그리움의 악순환(?)이 계속되던 중 이 여행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드디어 미우라아야코 남편인 미우라미쓰요와 잡화점을 운영하며 살았던 집에 가는 날이다. 마침내.

나는 잘 몰랐는데 <시오카리고개>라는 그의 작품이 있다. 일본의 기독교잡지인 "신도의 벗"이라는 잡지에 연재하던 소설을 모아 책으로 출판했고,  <빙점>을 통해서도 기독교인이 된 일본인이 많았는데 <시오카리고개>를 읽고 기독교인이 된 일본인이 더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설령>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출판된 적이 있다고 한다.



 시오카리고개를 지나가던 열차가 갑자기 운전석이 있는 앞쪽과 분리가 되면서 뒷쪽은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곧 만날 급경사로로 진입하면 가속도가 붙어 열차는 선로를 이탈하고 전복되면 이 열차의 승객은 물론 가까운 마을의 집들도 피해를 입고 말 것이다. 그 순간 '나가노 마사오'라는 청년이 선로에 몸을 던져 열차를 멈추게 했고 그 청년은 목숨을 잃었다. 그는 아사히가와 운수사무소의 주임이었다고 한다(소설에서는 나가오 노부오 라는 이름으로 분한다).
저 아랫방향으로 더 내려가면 추모비도 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차용하여 미우라아야코는 <시오카리고개>라는 소설로 발전시켰고, 실제 이 사고가 있었던 지점에서 1~2km 떨어진 곳에 <시오카리 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부부가 살던 잡화점의 모습을 복원한 곳이 있다. 4월~11월까지는 일반에 공개되고 12월~3월은 휴관이다. 나는 12월에 간 터라 내부를 볼 수는 없었지만 외부의 모습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막연하게 생각했던 그의 잡화점, 그의 집, 그가 글 쓰는 모습 등을 실제 그의 집을 보고 다시 한 번 상상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눈이 많이 온 날이었고, 많은 눈이 쌓인 날이었다. 많이 쌓인 눈 만큼 내 그리움도 쌓여있었는데 이렇게나마 그의 흔적을 눈으로 보고 만져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유튜브나 방송으로 볼 수 있는 연예인들일지만 실제로도 보고싶고 만나고 싶듯이, 나에게 미우라아야코가 그랬다. 긴 투병생활을 털고 일어나 잡화점을 경영하고, 공모전에 투고하기 위해 밤마다 글을 썼다. 아사히가와는 특히 춥기 때문에 밤이면 잉크가 얼어, 입김으로 녹여가며 글을 썼다고 한다.


시오카리고개 기념관, 1층은 잡화점 2층은 거주하던 집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드러나는 사랑의 위대함, 그러면서도 날이 선 역사관은 소설과 에세이에서만 드러났던 것이 아니라 그의 생애동안 지속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나는 10대부터 연모하던 그를 잊지 못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처음 그를 알던 때로부터 30년 가까이 흐른, 중년이 다 되어간 나이에 그를 찾아 시간과 공간, 상황과 형편까지도 뛰어넘어 이 곳에 있는 것이었던 것이다.


 머릿속으로만 마음으로만 상상하고 생각했던 그에게 물리적으로 조금 더 다가간 기분이었다. 마음이 많이 뭉클하고 벅찼는데, 오르막길 위에 있던 기념관이라 올라가는 동안 미끄러질까 발바닥에 힘주고 올라가느라 눈물이 핑돌다가 식었고, 기념관 앞에서는 인증샷 찍느라, 조금더 멍하니 머물고 싶었지만 버스탑승시간이 임박했고, 내려올 때는 혹시나 넘어질까 싶어 발바닥에 힘주느라 모든 집중력을 발바닥에 다 써버렸다.





 발바닥에 힘주고 걸어서 다치지 않았고 그때 찍어온 인증샷덕에 지금도 보면서 그리운 마음을 보듬고 또 읽고 싶은 그의 책을 고르고 나는 그의 어떤 독자가 되고 싶은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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