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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May 13. 2023

드디어 만나러 왔습니다. 미우라아야코기념문학관.

30년의 그리움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중 깊은 심심함 속에 있게 될 때, 나는 문득문득 마음이 뭉클해져 눈물이 차오르곤 했다. 계획적인 삶을 추구했던 나는 결혼과 함께 육아라는 변수와 사건이 난무하는 가운데 그 삶의 고됨을 이루 표현할 길이 없어 결국 '나는 왜 태어났을까'라는 물음속으로 침잠하곤 했다.

 오늘은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을 위해 태어났다.


 인생에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했던 변수와 사건의 순간들이 결국 나의 인생을 이루어 나를 여기, 아사히가와에 데려다 놓았다. 이것은 기적이 아닐까 생각할 만큼 사는 동안 너무 원했던 일이고, 원하면서도 아마 안될거야, 라고 생각했던 일이다. 하지만 기적같이 꿈이 이루어졌다.





 한국으로 가는 날이 하루 남은 날이기 때문인지 가이드님은 쇼핑몰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아주셨다. 일본에 머문지 4일만에 처음 스타벅스커피를 마셨다. 이것도 기적같다. 속이 풀리는 기분. 또 맘에 드는 홋카이도컵도 샀다.


 집합시간이다. 버스에 탄다. 뭉클함이 차오른다. 룸메언니에게 "저 너무 떨려요."라며 지난 밤부터 중얼중얼거렸다. 버스가 출발했다. 한 30분 정도 달린 것 같다.



 


 뭉클의 끝, <미우라아야코기념문학관> 주차장으로 버스가 들어섰다. 도착했다고 했다. 쿵쾅쿵쾅거렸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쓰지구치병원이 있던 자리를 문학관으로 만들었다. 1998년에 개관했다고 한다.



 소설에도 나오는 시범림, 혹은 견본림이라고 번역되기도 했다. 이 길을 따라 루리코가 달려가고 요코와 도오루가 뛰어놀았을 것이다. 뛰어놀기도 했겠지만 그들이 고뇌할 때 찾던 곳이기도 하고 루리코가 살해당하고 요코가 자살시도를 했던 슬픈 장소이기도 하다.







시범림, 이곳이 궁금했다. 메타세콰이어길 같을까, 대나무숲 같을까. 많은 상상을 했던 시범림.


보통 상상하는 나무의 높이보다 훨씬 높다란 나무들 사이를 걸었다. 고개를 생각보다 높이 들어야 하늘이 보인다. 조금은 노력해야 볼 수 있는 하늘이기에 고민이 깊을수록 더 생각나는 곳이겠다, 싶다.





문학관으로 들어갔다. 이 여행의 테마가 문학관에 들어오니 제대로 느껴진다.







규슈에서 온 미우라아야코의 팬이라고 한다. 팬이 오면 저렇게 서서 환대했다고 한다. 내 표정이 저 팬분의 표정같았을까 싶다.






반갑습니다. 보고싶었어요.

내 엄마와 내가 당신과 당신의 글을 참 좋아했습니다. 궁금했어요. 당신의 글 밖에 있는 것들도요.



 사실 문학관에 입장하고 나서 얼마안됐을 때 부터 오열을 금치 못했다. 나도 내가 왜이러나 싶어 화장실가서 하던 오열마저 하고 재빨리 재정비해서 나왔는데(전문 학예사가 설명을 해주던 중이었기 때문에 이러면 시간이 아까운거다) 쉽게 그쳐지지 않았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북받쳤나, 감격했나, 너무 좋았나, 너무 기뻤나, 뭐 그런 여러가지 감정들이었던 건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너무 창피하기도 했는데 다른 선생님들이 많이 공감해주시고 위로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본관은 작가에 대해 알 수 있는 사진자료와 문서들이 있었고 별관으로 가면 그가 집필했던 방의 구조를 복원해놓은 공간이 있다. 구석 한 켠에는 미우라아야코의 옛 애인이었던 (작고한)마에카와 타다시의 화장한 늑골을 담은 상자가 보자기에 쌓여있다. 물론 그 공간에 있는 것은 진짜는 아니고 전시를 위해 똑같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했다.




  미우라아야코가 폐결핵과 카리에스로 투병하는 동안 그를 신앙의 길로 안내한 것이 마에카와 타다시이며 미우라미쓰요에게 마음을 열게된 데에는 미쓰요의 마음도 컸지만 외모가 타다시와 상당히 닮았기 때문이라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고 했었다. 미쓰요가 가지고 다니던 지갑안에도 부부의 사진과 함께 마에카와 타다시의 사진도 같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타다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만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도 했었다고 한다.

 나의 세계관으로는 지금이어도 다소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런 인생가운데 대작이 태어나고 감동의 작품들이 계속 태어났다.





 문학관을 나와 시범림을 주욱 걸어가면 이런 언덕이 나오는데, 눈이 많이 쌓여있어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아 오르지 말까 하다가(이 여행참가자중에 40이 넘은 내가 최연소, 한살 많은 언니 있었고, 그 다음이 69년생이시고 대부분 60~70대)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가보자! 하고 올라가보았다.






현실인가. 이 풍경을 보며 난 오겡키데스까 를 외쳤다.


아야코상 잘 계시나요

난 잘 있습니다. 여기에 와서 더 잘 있습니다



 사진의 오른쪽으로 강이 흐른다. 아마 강까지 내려가서 요코(쓰치구치병원장 게이조는 자신의 아내인 나쓰에와 자신의 병원의사 무라이가 불륜을 저지르는 동안 루리코가 유괴범에 의해 살해된 것을 안 뒤, 게이조는 나쓰에에 대한 복수로 유괴범의 딸 요코를 입양하여 기르기로 한다. 후에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안 요코는 자살시도를 한다.)는 수면제를 먹지 않았을까 싶다. 여름이나 가을에 오면 눈이 걷힌 청량한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이나 눈이 덮여있기에 덮인대로 주는 장관의 풍경이 감동적이었다.




 여행을 준비하거나 기다리는 시간동안 이곳에서 이동을 하는 적지 않은 시간동안 가끔이라기엔 자주 나는 울컥울컥했고 생각보다 자주 감정이 차올랐다.


 괴테나 도스토옙스키에게는 딱히 그리움이나 궁금함이 없었다. 그들의 책을 이해하고 책 한장 넘기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그들의 삶 안으로까지 들어가보고 싶은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던 것 같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작가들에게 역시 그리움을 갖기란 어렵다. 그들은 SNS로 유연하게 독자들과 연결고리를 만들고 소통을 한다. 그들에 대해 궁금할 때는 검색으로도 충분한 정보를 얻는다.


너무 고전도 아니면서 너무 나와 가깝지도 않은 세대의 작가들에 대한 그리움은 조금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작고하신지 꽤 되었음에도 아직 기념관이나 문학관이 없는 박완서님을 생각할 때 더더욱. 너무 그립고 궁금하고 더 알고 싶고 파헤치고 싶지만 언어와 지역의 한계로 다른 방법을 얻지 못해 꾹꾹 쌓아놓은 그리움의 세월이 한번에 덮쳐왔었던 것 같다.


 떠난 작가를 충분히 그리워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독자에게 필요하다. 충분히 알지 못하고 떠난 작가를 독자가 애도하는 방법은 작가의 작품을 더 읽고 그의 삶을 추적하는 것인데 연구자가 아닌이상 닿을 수 없는 지점이 있겠고, 그 지점을 조금이나마 낮추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연구자나 유족이 아닐까 싶다. 이 공간에서 충분친 않았지만 큰 아쉬움은 없을 만큼 나는 미우라아야코를 추억했고 조금이나마 더 알아갔다.




 여운이 주는 울림이 있었고 반가움 끝에 오는 아련한 아쉬움도 있었다. 또 언제 올 수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가까운 미래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첫째가 빙점을 읽고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되면 엄마랑 딸이랑 같이 또 오고싶다, 고 생각했다.

 근 30년이 우여곡절을 동반했지만 그래도 유려하게 흘렀으니 앞으로 5년정도는 찰나같이 흐르리라, 바랍고 생각하면서 엄마의 무릎건강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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