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건 한 때 남자친구였던 현재의 내 남편일 뿐, 부모도 자식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이다. 내가 선택한 적이 없기에 선물인 줄 알았는데, 내가 선택한 적 없는 업보였다. 선택권이 없이 부모와 자식을 맞았고 남편이나 나의 피가 섞인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우리와 가족이 될 수는 없다. 그저 친하게 지내는 사이, 거기까지이다.
물보다 진하다는 피로 연결된 가족은, 서로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해 잘 모르며, 굳이 말한다면 지금도 서로 잘 모른다. 알려고 노력할수록 알 수 없다. 뭘 알려고 했는지도 까먹는다. 귀찮고 걸리적거린다고 떼어낼 수도 없고, 아쉽고 필요할 땐 있지만 새로운 결합을 원하지 않는다. 받아들인 적이 없으나 상석에 앉아있고 밀쳐내려 했으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온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데 부모에게 자식의 무소식은 무개념자식 인증이다. 만나면 화목할 것 같지만 안만나면 더 화목하다. 당일치기가 대세라지만 한끼 식사면 충분하다. 아니, 티타임만 가져도 충분하지. 스마트폰 둬서 뭐합니까. 영상통화로 합시다. 아무리 밀쳐내도 끈덕지게 붙어 있는 양가 가족이여. 이제 설날에만(신정에)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