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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Oct 14. 2020

9월, 현실을 인정하고 현실을 산다

며칠 조심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구나, 장기전이구나

코로나를 겪고 있는 4계절.


9월, 가장 가까운 과거인데 오히려 2월보다 기억이 안 난다.

나이 탓인가. 비슷한 일상의 반복이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저 그런 날이라 딱히 기억해둘 일이 없었던 건가.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 후로 8월 마지막 주부터 나의 직장에는 다시 휴관 공지가 내려졌다. 남편도 주 3일 재택근무가 시작되었고.



9월7일은 첫째인 딸의 개학날이었는데 등교 없이 온라인으로 대신했다. 온라인으로 국어와 수학을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을 친한 선생님 이야기하듯이 말한다. '정소현선생님이 그랬잖아~, 김문주선생님이 여기 풀어보라고 했어.'하면서. 꼭 아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같아 신기하고도 재미있었다. 우리로 치면 '효리언니가 그랬잖아~'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9월 초에는 둘째인 아들의 생일도 있었는데, 아들과 생일이 같은 날인 내 친구네와 함께 조촐한 파티를 하며 보냈다. 이런 혼란의 시간에도 특별한 날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참 좋고 감사했다.



나는 2주간 출근을 하지 않았고, 놀라운 수의 확진자가 나오는 걸 보니 집콕만이 답이었다. 9월은 아이들이 어린이 집에 다닌 후, 처음으로 한 번도 출석하지 않은 채로 원비를 결제했다. 물론 아이행복카드로 지원되는 금액을 결제하는 것이긴 하지만 조금 특별한 기분이었다.


8월 말이 되면서 우울감이 올라왔던 나는 남편에게 에어비앤비로 시골에 마당딸린 단독주택을 빌려 열흘정도 지내다 오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 사는 곳은 아파트라 아이들의 분출되지 못한 에너지가 쌓여 있는 모습을 목격할 때면 늦은 저녁이라도 인적이 드물 때 놀이터나 운동장으로 데리고 나가곤 했는데, 꼭 나나 남편이 따라나가야 하는게 좀 귀찮았다고 해야할까 번거로웠다고 해야할까.

다같이 집에 있으니 집안일은 더 넘쳐나는데 아이들의 에너지 관리까지 해드려야 하니 내 스트레스 관리는 누가 해주나 싶고, 어차피 온라인 수업이니 굳이 이 동네에, 이 집에 있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결론이었다. 마당딸린 단독주택이면 내가 따라 나가지 않아도 되고 마스크를 안 써도 되며 나도 좀 쉬겠다 싶었다.


남편의 대답은?

당연히 노노.

남편의 좌우명은 "돈은 안 쓰는 것이다" 이기에 더욱 그렇고, 아이들데리고 놀이터나 운동장에 나가는 건 본인이 더욱 잘 해주겠다며,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대출로 은행에 월세내고 있으니 그냥 우리 집을 에어비앤비라고 생각하라나.

나는 아파트를 에어비앤비로 얻은 적이 없는데.



서로의 각을 세우는 예민한 발언이 오고 가다가 결국 남편이 예산을 제시하며 "이 정도에서 시도해보라"는 말을 하게 하는데 성공했지만 날씨예보를 보고는 고심끝에 시도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실제로 날씨가 저 예보대로 였던 건 아니었지만 비가 꽤 많이 오긴 했고, 갑자기 비가 오다가 그쳤다가 다시 오거나 햇살이 가득한데도 비가 오는 낯선 날씨가 며칠 간 계속되었다.

열흘살기 안하길 잘했어 까진 아니었지만 갔었다면 좀 속상했겠다 싶긴 했었고, 비도 오는데 혼자 애들데리고 시골집에 있었으면 좀 무서웠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추석 전에 가을여행을 다녀올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열흘살기를 대충 퉁쳤다.


가을여행은 코로나의 기세가 아주 조금이었지만 꺾인 상태이기도 했고, 날씨가 정말 정말 좋았던 터라 환상적이고 성공적이었다.





9월의 어떤 에피소드1.


9월의 어느 토요일 밤에 잠들면서 회나 초밥을 먹고 싶었다. 임신한 거 아니다. 잠들면서 먹고 싶더니 꿈에서도 먹고 싶었고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면서 "오빠! 초밥 먹고 싶어!"하며 일어났다. 남편은 "알았어."라고 화답했다. 어쩌라는거야.

"나 초밥먹고 싶어. 어젯 밤 부터 먹고 싶었어."

"알았어."

"알았다고?"

"먹고 싶음 먹어."


이때부터 남편의 사십춘기가 시작된건가, 조기 갱년기가 온건가. 먹고 싶다고 하면 점심 때 같이 나가자고 하던지, 어디서 사다 먹을 수 있는지를 묻는 센스있는 남자친구 출신 남자인데, 지금은 그냥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인간이네.

"애들 보고 있어, 나가서 사올게."

했더니 쿨하게 빠이빠이하더라고.


다행히 대형마트 쉬는 날이 아니라서 초밥과 회를 살 수 있었다. 너무 먹고 싶었던 나머지 집-마트에서 초밥사기-집까지 20분도 안걸렸던 것 같다.



콘버터는 아이들도 함꼐 먹었고, 초밥과 회는 내가 다 먹었다. 난 원래 잘 먹는다. 저 정도 먹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들은 물고기의 생살을 왜 먹냐며, 이게 맛있냐며 신기하게 쳐다봤지만 나는 너무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입맛을 교란시키는 스키다시가 없으니 더 좋았다. 내 인생 회와 인생 초밥이랄까.

'인생+무엇'은 기분이지 진짜는 아닌듯 하다.


9월의 어떤 에피소드2.


 2주간 출근을 안하는 동안 독박쓰며 아이들을 보다가 2주의 막바지쯤 친정 엄마가 우리집에 오셨다. 우리 아이들이랑 한 시간여 놀아주시더니 내게 말씀하셨다.


 "애들이 그동안 엄마랑 붙어있어서 그런지 안정적이어 보인다 얘."

 "뭐? 나는 불안정해."

 "하하하하하하"


 엄마가 나 혼자만의 시간을 허해 주셔서 나는 나가서 커피한 잔 마시고 들어왔더니 엄마가 말씀하셨다.

 "니가 불안정할 만 하다야. 나 갈란다."


9월의 어떤 에피소드3.


보통 아이들이 잠들 시간이 되면 나도 같이 아이들 방에 들어가서 재우고 나왔었다. 이제 첫째가 초등학생이 되었으니 일주일에 두 번은 내가 재워주지 않고 아이들끼리만 자기로 약속을 했는데, 어느 날 아이들이 잠을 안자고 장난치느라 방이 시끌시끌했다. 가뜩이나 아이들 방의 소음이 심하다고 아랫층에서 주의를 들었던 경력이 있어 밤이니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자라고 주의를 주었다. 주의를 주어도 소음은 계속되어 나는 엄포를 놓았다.

 "한 번 더 엄마 입에서 조용히하란 얘기 나오면 니네 일주일 동안 유튜브 못 봐! 알겠어?"

한 다음에야 비로소 아이들의 데시벨이 낮아졌다.


딸아이가 자기 전에 쉬가 마렵다며 나왔는데 굳이 안방 화장실에서 쉬를 하겠단다. 무서운 표정으로 빨리 쉬하고 가서 자라고 했더니

 "엄마, 화장실에 편지 있어. 꼭 내일 아침에 봐야 돼. 알았지?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는 휙 가버렸다.



아이들의 취침시간이 늦으면 늦어지는 만큼 나도 신경이 곤두서고 힘들다. 그 날은 아마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갔더니 저렇게 편지가 있는거다. 어젯밤에 딸아이가 아침에 보라고 한 편지가 저거구나 싶었다. 놔둬도 꼭 변기위에.... 하긴, 그래야 잊지 않고 보겠다 싶긴 했다.


펼쳐보기 전에 짧지만 여러가지 생각을 해봤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해요, 내일부턴 일찍 잘게요, 엄마 말 잘 들을게요 아니면 그냥 평범하게 엄마 사랑해요 이런 말이겠거니... 좀 더 머리를 썼다면 다 동생이 먼저 시끄럽게 할 일을 만든거다 라는 고자질류가 되겠지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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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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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슬픔 예감도 없었는데

왜 슬프지...



그래

고오맙다

나도 안다


니가 내 딸이다


내가 널 낳았지



기가막혀 웃음도 안나오는 아침을 맞았던 날이 있었다.




그 와중에 조금(사실은 많이) 좋았던 일도 있다.

긴급고용안정자금이 입금되었다. 1차는 7월 말에, 2차는 9월 추석 전에 입금되었다. 코로나기간 중 3달 반 정도 일을 못한 셈인데, 이렇게라도 급여의 공백을 메워서 다행이었다. 일부는 폭깊은 비자금으로 마련해놓기도 했지만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멋진 곳을 다니며 돈을 쓰기도 했다. 정말 멋진 곳이었어서 남편에게 사진 좀 찍어달라고 했더니 타이밍 기막히게 찍어주었다.

엄청 예뻐뵈네.

남편의 마음이 들리는 듯 하다.


자세히 가려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코로나블루로 우울감을 가득 껴안은채 시작했던 9월이었다.


 '날씨가 왜 이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여름에 비해 9월 중순 이후로는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날씨를 선물해 주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울감은 조금씩 사라져갔다. 9월 셋째주 부터는 출근을 재개하여 일상의 리듬을 조금이나마 끌어 올렸고 시골 열흘살기 대신 떠났던 3박4일의 가을 여행이 완벽 이상으로 좋기도 했다.


이제 다른 꿈을 꾸어도 되지 않을까.

이제 다른 계획을 세워도 되지 않을까.

억새와 핑크뮬리가 만발한 가을인데 이젠 괜찮아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과 함께 코로나는 낮은 기온에 더 흥한다던데 어떡하지 하는 여전히 우울하고 슬픈 마음이

서로 49대51 혹은 51대 49로 접전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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