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사진: 히틀러와 악수하는 가톨릭 신부 조제프 티소, 출처/퍼블릭도메인)
역사적으로 볼 때 전체주의(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등)에 동조한 기독교인들은 적지 않았다.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제12장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슬로바키아'의 반유대주의를 설명할 때 "성직자 파시스트들, 또는 파시스트 성직자들의 열렬한 반유대주의"라는 표현을 썼다. 가톨릭 신자들이 대부분인 '슬로바키아'는 (히틀러의 꼬드김에 속아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슬로바키아'로 떨어져나와 독립하면서 독일의 폴란드 침략이 있기 전부터 (1938년-1939년) 독일 나치에게 적극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슬로바키아'는 가톨릭 사제 조제프 티소 신부가 통치하고 있었다.
히틀러의 발흥 당시, 체코에게서 떨어져나와 독립을 선언한 '슬로바키아'는 그 전까지 체코와 결합해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체코가 산업화된, 자유로운, 진보적 분위기의 도시였던 반면, '슬로바키아'는 약 250만 명의 가난한 농부와 약 9만 명의 유대인이 살던 지역이었다. 소외감을 은근히 느끼고 있던 터였다고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가난한 지역이었기에, 이곳 유대인들은 유럽의 다른 지역에 비하면 그다지 대부호들도 아니었다. '슬로바키아'에서는 유대인들을 다만 '외래의 종족'이라는 이유로, 나치의 체계적 유대인박해에 동참했다.
우선, 깊은 가톨릭 신앙을 지닌 '슬로바키아' 사람들은 가톨릭 영세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로 간단히 유대인을 구별하였다. 그런 다음, 유대인들을 모아두는 게토에 찬성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했고, 유대인을 강제노동에 동원하기 시작했다.
아렌트는 그 같은 '슬로바키아'의 반유대주의를 가리켜 "외견상 가톨릭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라고 말하였다. 기독교 정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 때문에 반유대주의를 저질렀던 게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외견상" 기독교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번 12.3내란 사태 와중에 광화문에서 열리는 집회는 '전광훈'이라는 목사가 주도한다고 한다. "하나님, 까불면 죽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기 때문에 그를 기독교인이라 볼 수 있는지 애매하긴 하다. 그러나 어떻든 그가 자기정체성을 개신교 목사로 발표하고 있으니, 기독교인으로 봐주어야 할 것이다.
그는 이번 12.3내란 사태에서 내란범죄 윤씨일당을 지지하는 논리 중 하나로 '반이재명'을 주장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소위 '법률가(법 집행자, 즉 검찰과 판사)'들이 현재 범법자로 몰아붙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혐오의 정서를 확대재생산한다. 법 집행과정에서 어떤 무리한 수사와 기소가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보려 하지 않고, "법률가들이 유죄라고 말하면 그것은 유죄"라고 단순하게 판단한다. 마치 영세를 받았으면 가톨릭 신자, 안 받았으면 유대인, 이렇게 구별했던 '슬로바키아' 국민들과 비슷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 유의할 것이 있다. 우리는, 그 목사가 기독교인이어서 12.3내란을 저지른 윤씨일당을 지지한다고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 윤씨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 기독교인 숫자가 제법 되고, 태극기 극우집회에서 "아멘" 소리가 크게 울려퍼진다고 해서 기독교가 윤씨일당과 친화적이다, 라는 추론을 빠르게 진행해서도 안된다. 그러므로, 김*홍 교수(장신대), 김*재 목사, 손현* 목사, 정동* 목사 등이 '하나님'을 들먹인다 해서 마치 개신교가 12.3내란범죄자를 옹호하는 대표적 집단으로 비난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반면, 나치 저항운동가 디트리히 본회퍼를 거명하거나 우리나라 1970-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역사를 들먹이며, 어느 시대에서든 기독교 신앙이 진보적 사회운동을 이끈다고 말하는 것도 그다지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12.3내란 사태 와중에 스톨 의상을 갖추고 거리에 나서서 시위에 참여하는 목사들이 있으니 "기독교는 역시!"라고 감탄/감동하는 것도 주의해야 할 것 같다. 그들은 기독교인임과 동시에 민주 시민이기 때문에 탄핵촉구 집회와 윤씨일당 체포 집회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 신학은 전통적으로, 기독교인을 '하나님나라의 백성'임과 동시에 '땅의 나라 백성'으로 칭한다. 기독교인들의 행위는 기독교 신앙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지만 기독교 신앙이 그들 행위의 유일한 동력은 아닌 것이다.
요컨대, '기독교' 혹은 '개신교'라는 종교를 전체주의 친화적 종교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체주의 저항적 종교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는 천재적 철학자들 몇몇(예: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사르트르 등)이 전체주의 체제와 전체주의적 폭력에 동조했다 하여 우리가 '철학'이라는 학문을 전체주의 친화적 학문으로 단정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참고로 마르틴 하이데거는 나치당에 입당했었고, 나치 치하에서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을 지내는 등 출세했으며, 나치당 가입 이력(1945년까지 당적 유지)에 대해 나치 패망 이후에도 별다르게 사과하지 않았다.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좌파전체주의(일명 공산전체주의??!)'라고 할 수 있는 스탈린 치하 소련의 비인간적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대하면서도 "진보적 폭력"을 옹호했고, 장-폴 사르트르 또한 스탈린의 폭력을 알면서도 1960년대 초반까지 "진보라는 단어가 의미를 갖는 유일한 나라"라고 강조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