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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의 말8: 양파 같은 전체주의

히틀러와 윤씨 비교

by 이인미

윤씨와 히틀러를 두 가지 측면에서 비교하고자 한다. 첫째는 '법'의 측면에서. 둘째는 '격노'와 게으름의 측면에서. (대문 사진: 바이에른 알프스 히틀러의 별장)


1. 법을 무시하는 무법자


히틀러는 법을 대놓고 무시했다. 1933년 초, 국회에 화재가 일어났다. 범인이 긴급체포됐는데, 히틀러는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국회 해산을 강력히 주장했다. 결국 나치당을 제외하고 다른 당을 모두 해체해버렸다. 그뿐 아니었다. 히틀러는 상호신뢰로 준수되어야 할 '국제협정'을 무시했다. 우선 뮌헨 협정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1939년 독일인 죄수들에게 폴란드 군복을 입혀 독일 방송국을 공격하게 했다. 히틀러는 즉시 '반격'의 명분을 내세워 전쟁을 선포했고 감행했다. 이후 히틀러는 스탈린과의 불가침협정도 일방으로 파기했다.


윤씨는 법을 무시한다. 12월 3일 일명 '서울의 밤'을 기습적으로 도발했다. 군대와 경찰과 관료와 국회의원(여당)들을 수족처럼 움직여 조직폭력을 집행했다. '서울의 밤' 이전, 여러 방법으로 북한을 자극해 '반격'의 명분으로 전쟁을 수행하려 했다. 천만다행으로 (윤씨 일당에겐 '불행히도') 북한이 그에 말려들지 않았다.


아렌트는, 자신이 꼽은 자신의 최고작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권위주의 정부는 최소한 법을 준수하지만, 전체주의 정부는 그렇지 않다.


아렌트에 따르면, 심지어 아주 폭압적인 정부일지라도 그것의 속성이 권위주의적이라면 법을 준수한다. 법의 권위는 기본적으로 정부 바깥에서 온다. 법의 권위는 법을 만든 의회(국민이 뽑은 의원들)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하물며 권위주의 정부일지라도 자기정당성 확보의 차원에서 법의 권위를 수긍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 윤씨 일당(윤씨 + 검찰 집단 & 관료 집단 & 군/경 집단 & 의원-국힘 집단)은 그 속성상 권위주의 정부가 아니라, 전체주의 정부(체제)의 초보적 구성요인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들은 권위주의 정부를 운영한 게 아니었다. 그들이 법을 대하는 모습을 관찰하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들은 법을 준수하며 법의 권위를 인정하는 게 아니라, 법을 이용하기만 한다.




2. 수시로 격노하는 게으름뱅이


히틀러를 다룬 여러 영화들에서도 그 점이 다루어졌지만, 다큐멘터리 <히틀러의 이너 써클(Hitler’s Circle of Evil)>에서 히틀러는 유독 '격노'를 잘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영화 <더 벙커(The Bunker)>, <다운폴(Dawnfall)>에서도 히틀러는 걸핏하면 얼굴이 시뻘개져 격노를 잘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리고 히틀러는 측근들과 함께 놀 때 자정을 넘기도록, 자기가 본 헐리우드 영화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아서, 모인 사람들을 지치게 하곤 했다. 히틀러는 상호대화라기보다는 독백과도 같은 1인 장광설을 늘어놓는 편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적이 별로 없고, 베를린의 총통 사무실에 출근도 거의 하지 않고 바이에른 알프스의 별장에 주로 머물면서 게으름을 피웠다. 나치 2인자 루돌프 헤스가 허락도 없이 영국으로 날아갔을 때는 별장이 떠나가도록 격노하는 바람에 이너 써클 멤버들은 오금이 저려서 조용히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전쟁터에서 패배의 소식이 날아들 때마다 히틀러는 격노했다. 발키리 작전(군인들의 히틀러 암살작전) 당시, 늑대의 굴(Wolfsschanze)에서 가벼운 상처만 입고 전반적으로 별 타격을 입지 않았던 히틀러는 초대손님 무솔리니가 함께 앉아있는 자리에서도 관료들에게 격노를 발했다. 히틀러의 격노는 당대에 국민들에게 그 전모가 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너 써클 멤버들은 익히 알고 있었으며, 격노에 짓눌려 자주 움츠러들었다.


히틀러 암살을 위한 폭파 직후 '늑대의 굴' 모습


윤씨의 '격노'도 그 전모가 알려진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우 잦았고 그 정도가 심각했다고 한다. 이제까지 언론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채 상병 사건도 격노 때문에 일어났다고 한다. 그가 격노할까 봐 정기적 국정보고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관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격노할까 무서워서 여당 당대표 시절 한동훈은 그를 독대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윤씨는 히틀러 못지않게 게을렀다. 언론의 취재에 따르면, 2024년 하반기 몇 달간 윤씨는 한남동 관저에서 용산 대통령실까지 제 시간에 출근한 적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가짜 출근 행렬까지 연출했다는 게 경찰 내부 제보에 의해 최근 알려졌다. 그리고, 대선 캠프 일원이었던 신용한 교수 증언에 따르면, 후보 시절 그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시러 밤마실을 나갔을 정도였으며, 그 결과로 오전 일정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대통령 자리에 앉은 뒤에도 그는 오전 일정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알콜성 치매를 의심하기도 하는 형국이다.




히틀러와 윤씨, 윤씨와 히틀러, 그냥 단순한 평행비교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물론 법을 무시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전체주의 지도자가 되는 건 아니다. 또, 격노 잘하는 게으름뱅이라고 할지라도 모두가 전체주의 지도자로 나서는 것은 아니리라. 관건은 시대사회적 배경, 그리고 그런 사람 주변에 마침 모여든 사람들의 일그러진 욕망 등과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아렌트는 나치 수뇌부 조직을 '양파'에 비유한 적이 있다. 나치 수뇌부 조직을 놓고 한 겹 한 겹 껍질을 벗겨내면 알찬 알맹이를 마주하게 되는 게 아니라 빈 공간을 맞이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히틀러는 당대에 막강한 권력자 총통의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무능했다. 열등감의 화신이었고, 분노조절을 잘 못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독일을 위해 일할 계획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윤씨도 그 점에서는 히틀러와 다르지 않다. 윤씨 또한 무슨 대단한 리더십 같은 걸 갖춘 사람이 아니다. 그는 대한민국을 위해 일할 구체적 계획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다. 경제에 무지했고, 법률 분야는 자기가 다뤄본 항목에만 익숙했고, 외교 정책은 거의 전무했다. 국정을 대하는 태도, 안건을 다루는 태도는 그냥 즉흥적이었다. 여러 국제회의 기록영상으로 남은 그의 무례하고 준비없는 언행은 보는 사람이 부끄러울 정도다. 사실 그는 꽤 위축되어있었고, 웃음은 어색했으며, 내내 자신없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무능했다.


1933년에서 1945년까지 독일은 전체주의에 뒤덮였었다. 2022년에서 2024년까지 우리나라는 (내 개인적 의견이지만) 전체주의운동의 시도 앞에서 사실 아슬아슬했다.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정말 아슬아슬했다. 그러면 윤씨를 탄핵한 지금은 안전할까? 그렇다고 단정짓기 어렵다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전체주의운동은 히틀러 혼자서 전개할 수 있지 않았았다. 양파껍질로 존재할 이들이 그 주변에 몰려들었다. 원인을 합리적으로 특정하지 못해 막연히 유대인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에게 쏟아부었던 분노와 혐오가 히틀러 전체주의운동의 세를 불려주었다. 전체주의운동은 윤씨 혼자서 전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양파 껍질들이 존재해야 가능한 운동이다.


그래서 아직 걱정스럽다. 주위를 둘러보면, 원인 불명의 분노, 누군가 대상이 특정되기만을 기다리는 혐오 정서가 '도발'을 기다리며 우리 사회 곳곳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러나 한편, 희망도 있다. 합리적 사유를 하는 사람들이 뚜렷이 존재하기에. (아래 그림, 방울 작가. 12.18 가톨릭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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