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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의 말13: '천부인권'이란 없다

by 이인미

요며칠 내란범죄자 윤씨를 다루는 일에 진전이 너무 더뎌 매우 답답하다. 범죄자 주제에 조사(수사)를 온통 거부한다. 윤씨는 법을 존중하지 않고 법의 빈틈을 악용한다. 기본적으로 법엔 빈틈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제정된 법이라면 그 어떤 법이든 개정과 개정을 거듭한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뻔뻔하다, 찌질하다 등, 윤씨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온 사회에 울려퍼져도 윤씨는 법적 처벌을 어떻게든 피해가려 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법의 판결에 순종해 최근 징역살이를 시작한 조국 선생님과 달리) 윤씨는 법적 책임 회피라는 어려운 과업에서 무려 '성공'할 수도 있다.


이 와중에 언론은 '침착하게' 그러저러한 윤씨 관련 사실을 보도한다. 만약 조국, 윤미향, 이재명 등의 인사들이 지금 윤씨처럼 행동했더라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언론은 '쌩' 난리를 쳤을 게 틀림없다. 일례로 윤씨가 탄핵심판과 수사(조사)를 실제로 12월 14일 이후 열흘이나 지연시키고 있는 악랄한 행태에 대한 비판 기사 옆에, 언론은 점잖게(!) 이런 기사를 덧붙인다. 이재명이 재판을 지연하면 안된다!




말해봐야 입만 아프지만, 법 집행 (&판단) 종사자들이 불평등 애호자들인 것처럼 언론계 종사자들도 불평등 애호자들이다. 100% 다 그렇지는 않겠으나, 그들 중 대다수는 애초에 불평등 대우를 받기 위해 그 집단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내가 더 공부 잘했어!"를 입증하면 그 보상으로 따라오는 성과물)


그리하여, 그 두 집단에 속한 불평등 애호자들은 쉽게 '정화' 및 ‘개혁‘되지 않는다는 공통점 또한 지닌다. 나름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 불평등 대우를 당당하게 받기 위해 그 자리에 들어앉았기에 불평등한 대우가 그들에겐 당연하다. 그래서 심지어 국회의원들보다 그 두 집단에 대한 개혁이 까다롭다.


아닌 게 아니라 비슷하게 불평등 애호자인 국힘 국회의원들의 경우는 그나마 4년 만에 한 번씩 교체하는 방법이라도 있다. 그렇지만, 저 두 집단은, 지금으로선 방법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우리 사회 전체의 불평등 애호 수준이 아직은, 다같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 두 집단에 속한 불평등 애호자들을 볼 때 "너희들 두 집단은 개혁의 대상(객체), 나 같은 선량한 시민은 개혁의 주체"라고 간단히 생각할 일이 아니다. 나 자신은 얼마나 평등을 원하는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우선 이렇게 자문해보자. 나는 내 아이가 공부 잘하는 것을 기대할 때, 왜 기대하는가? 남들보다 내 아이의 성적이 '낫기'를 기대할 때, 반등수, 전교등수가 높기를 왜 기대하는가? 더 나은 대우, "더 좋은 대우(불평등한 대우)"가 뒤따를 거라는 기대 때문은 혹시 아닌가?


위의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핵심적 질문'을 내포한다. "나와 내 자녀의 불평등 애호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는 나를 포함해 우리 사회의 불평등 애호 수준이 평등 애호 수준으로 전환 및 수정될 때까지, 저 두 집단의 횡포 그리고 난동은 '꼭 그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아렌트는 '천부인권'을 반대한다. 엄밀히 말하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모두 평등하다"며 당연히 전제하는 태도를 반대한다. 아렌트는 인간은 불평등하게 (능력과 재능 면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시한다. 거기에서부터 우리의 불평등 애호 수준을 검토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서로를 향하여 이렇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린 모두 불평등하게 태어났으니, 평등하게 서로를 대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다같이 고민을 시작합시다."


불평등 애호 수준은 말하자면 사회 전체가 힘을 합쳐 공들여 쌓는 탑 같은 것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거나 낮아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어느 정도 숫자 이하로 줄어들지 않으면 그 탑은 절대 무너지지도 않고, 낮아지지도 않는다.


법과 언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개혁, 정화하는 일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DNA나 IQ 등에서 불평등하게 부여받은 능력과 재능을 갈고닦은 끝에 얻어지는 불평등한 성과물을 최소한 나는 당연시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많아져야 가능한 일이다. 그걸, 오늘 당장 시작한다 해도 우리 사회 전반의 불평등 애호 수준을 낮추기까지는 한참 시간이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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