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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의 말17: 정치적 응급조치가 필요하다

by 이인미

공개된 장소에서 법을 고의적으로 어기는 현상을 목격할 때 어떤 이들은 금방 '시민불복종'이라는 개념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시민불복종자는 그가 개인으로서 스스로 예외적 존재가 되어 "법 없이 지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불복종' 행위를 전개한 것이 결코 아니다. 시민불복종자는 현행법 조항 중 몇 가지를 집중적으로 문제삼을 뿐, 공화국 시스템 전체(자체)를 깨뜨리겠다는 의도가 애초에 없다. 시민불복종자는 사실상 현행법의 개정, 나아가 새로운 관점과 관용을 갖춘 법 제정을 소망한다.


그런 점에서, 시민불복종은 민주공화국 현행법의 '한계'를 깨우치고 일깨우는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어느 경우에도 시민불복종은 공화주의, 법치주의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한편, 시민불복종자는 공공 장소에서 공개적 저항을 하며, 저항을 하는 와중에 혹시 체포될라치면 '당당히' 체포되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입장을 '당당히' 밝힘은 물론이다. 자신이 단행한 시민불복종 행위의 의의를 공적 영역에서 공개하는 것이 시민불복종자의 목표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1.19법원습격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12.3내란사태의 주요 피의자로 체포되어 구금되어있는 윤씨는 (법을 고의적으로 어기고는 있지만) 시민불복종자가 아니다.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 근거는 정치이론가 아렌트의 아래와 같은 선언에도 있다.


어떤 경우에도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은 범죄적 불복종(criminal disobedience)과 동등시될 수 없다.

누군가 한 사람이 표면에서 현행법에 불복종하고, 그의 불복종에 여러 사람들이 동조하는 현상이 겉으로 볼 때는 시민불복종 현상과 얼핏 비슷해 보일지라도 우리는 그 내용을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 1960년대 미국의 베트남전 징병거부, 우리나라의 양심적 병역거부, 그리고 환경파괴를 막기 위한 무단점거 농성 같은 것들은 시민불복종이 맞다. 그러나!! 윤씨는 시민불복종자가 아니라 범죄적 불복종자다.


아렌트에 따르면, 시민불복종자는 우선 공개적 저항을 한다. 그러나 범죄적 불복종자는 공공의 눈을 피하려 한다. 돌이켜보건대, 12.3내란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 피의자는 체포되는 그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공공의 눈, 언론 앞에 나타난 적이 없다. 경호차량에 휩싸여 이동하고, 경호관들 뒤에 숨어 공수처 건물에 들어갔으며, 또다시 경호차량에 탑승해 구치로로 송치됐고, 법원의 긴급호송차를 타고 서부지법 법원으로 송치됐다. 그 과정 어느 단계에서도 그는 공개적으로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요컨대 윤씨는 (범죄적 불복종자이기에) 시종일관 당당하지 않다. 그는 공공의 눈, 언론을 피하려고만 할 뿐이다. 이건 그가 그냥 쫄보, 겁보여서가 아니다. 범죄자여서다.


다음으로, 아렌트는 범죄적 불복종을 "경찰 역량과 심각한 권력 쇠퇴의 불가피한 결과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런 다음 그것이 "책임회피의 기술"에 속한다는 사실을 부가하였다. 윤씨에 딱 들어맞는 개념정의가 아닐 수 없다.


끝으로, 윤씨는 시민불복종자와 달리 폭도(mob)들을 의식적으로 자극한다. 윤씨가 부하들이나 잔당들을 통해 다각도로 범죄적 불복종자인 자신을 지지하며 흥분하게끔 선동하는 와중에 결국 불행하게도, 안타깝게도 '1.19 서부지법 습격사건'이 발발하기에 이르렀다.








아렌트는 시민불복종을 위한 해결방안으로서 독특하게도 '안식처(home)'라는 개념을 거론한다. 그 안식처를 위하여 정치언어뿐 아니라 정치체제에서도 "응급조치가 필요하다"고 아렌트는 강조한다. 여기서 또 하나 분명히 기억할 것은, 아렌트가 시민불복종자 당사자를 엄히 다스려야 한다(처벌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때 응급조치는 시민불복종자가 문제삼았던 현행법(의 조항들)에 대한 조치로 볼 수 있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해, 시민불복종자와 범죄적 불복종자는 명확히 다른 목표를 지닌, 명확히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나는 시민불복종과 범죄적 불복종이 아주 다른 것이긴 해도, '정치적 응급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점에서만큼은 동일하다고 본다. 단, 그 응급조치의 방향과 성격은 아주 다를 수밖에 없다.


시민불복종(자)에게는 안식처(home)를 마련해주기 위해서 응급조치를, 범죄적 불복종(자)에게는 감옥을 마련해주기 위해서 응급조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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