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ft feminism
내가 레즈비언들에게 ‘애인 예비후보’ 비스무리한 게 되었던 경험이 두 번 있다. 그들이 나를 그들 입장에서 ‘혹시나 싶은 사람(the available)’ 로 착각한 것이다. 내내 싱글로 지내니 내 쪽에서 빌미를 주었다고 볼 수도 있다. 어떻든 그런 착각이 짝사랑을 일으킨 듯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고백하러 다가왔다.
나는 레즈비언이 아니다. 물론 나는 여자들과 사이좋게 지낸다. 우정을 나누는 거다. 나는 동성애자가 될 생각도, 의지도 없다. 그러나 나는 동성애자를 혐오하지 않는다. 혐오는 폭력적이다. 폭력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레즈비언의 고백을 받을 때마다 (두 번뿐이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그랬더니 좀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내 거절의 의미를 ‘동성애 혐오’로 받아들이고, 화를 낸 것이었다. 한 번만 그랬다면 그 한 사람의 개성이려니 하겠는데, 공교롭게도 두 번 다 그랬기에 “뭐지?”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내 취향이 이성애라니깐요.
고백을 받으면 그 사람과 연애하고 싶은가 그렇지 않은가를 중심으로 생각하게 마련이다. 나는 그런 생각의 절차를 나름 밟아가며 결론을 내렸고, 그래서 거절한 거였다. 그러나 그분들은 그리 생각지 않았다.
동성애자들은 (다는 아닐지 모르지만, 내가 만난 분들에 한하여 생각해보면) 거절 문제를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우선 자기가 거절당하는 것과 혐오주제로서의 동성애를 병합한다. 그런 다음 동성애 혐오의 부당성을 항의 및 하소연하거나 ‘당신의 성적 취향을 다시 생각해보라’ 권한다.
이는 고백받은 사람이 자기의 성적 취향에 대하여 스스로 명확하지 않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들 중 어떤 사람들이 자기의 성적 취향을 깨닫게 된 계기가 동성에게 고백받은 때였다는 점은 이 복잡함을 더욱더 복잡하게 만든다.
넷플릭스에서 내가 본 다큐멘터리 <그들만의 사랑: 테리와 팻의 65년>에서도 그런 사연을 확인할 수 있다. 테리는 팻의 고백을 받기 전에는 자신의 성적 취향이 동성애인지 몰랐었다. 막상 고백을 받고 나서, 테리는 자신의 성적 취향을 알게 되었고 차츰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사랑을 이어갔다. 미국이었지만 20세기 초반이었으니, 커밍아웃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청년기에 두 사람은 각각 남자친구를 두기도 했다. 21세기 들어 그들은 드디어 커밍아웃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동성애 결혼이 합법화된 곳에서 가족과 친지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다.
이런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마음속에 품고 지내는 레즈비언들이 간혹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런 분들 중 두 분을 차례대로 만난 것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 열심히 ‘호모포비아는 아니나 고백은 거절해야 한다’는 나의 진심을 설득했었어야 했던지.
동성애를 ‘악(evil)’의 일종으로 보는 분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개신교인들 중에 그런 분들이 더러 있는 (아니 많은) 것 같다. 성적 일탈 혹은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보는 사례도 있다. 물론 성폭력, 성매매는 범죄다. 그런 부류는 악으로 분류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리고 소아성애자(pedophilia)들은 아마 격리되어야 하고, 적극 치료받아야 할 사람들일 것이다. 성폭력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은 그런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 동성애자들은 적합한 상대를 만나면 범법행위를 전연 저지르지 않고 좋은 사랑을 할 수 있다. 에이즈에 걸리지 않을 수 있고, 혹시 걸렸더라도 고혈압 환자들처럼 약으로 조절하며 살 수 있다. 그러니, 이성애자들은 동성애 취향을 이해하고 인정해주면 좋을 것 같다. 아니 이해하고 인정하고 할 것까지도 없다. 그냥 놔두면 된다. 취향이니까···.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동성애자들도 남들의 이성애 취향을 이해하고 인정해주면 좋겠다. 남성이 여성보다 훌륭하고 멋지다고 느껴서 이성애 취향이 생긴 게 아니다. 남성이 저지르는 폭력과 남성중심사회의 성차별 문제들에 덜 민감해서 이성애 취향을 유지하며 사는 게 아니다. 그리고, 여성단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것과 이성애 취향은 별개의 문제다.
성적 취향은 말 그대로 성적 취향이다. 모쪼록 이성애자들은 동성애자들을 괴롭히지 않으면 좋겠다. 반대로 동성애자들은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못하고?) 사는 나이든 싱글 이성애자의 거절을 거절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동성을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데, 그걸 어쩌란 말이냐고요. 그게, 어떻게 바꿔볼 수 있는 게 아닌 거 아시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