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ft feminism
첫키스의 추억(1)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그는 키스를 시도했다. 나는 그를 밀쳤으나 잘 되지 않았다. 내 얼굴을 돌리려 했으나 그가 꽉 잡고 있어 잘 되지 않았다. 그때 나는 포기해버렸다. 내가 왜 포기했을까? 왜 더 강렬하게 저항하지 않았을까? 왜 꼬집거나 깨물거나 발로 차거나 하지 않았을까? 키스가 좋아서? 아니었다. 음, 할 말이 많다. $&@€£¥%#|\€£?•+*£&$@:;/‘
(첫)키스를 포함하여 데이트 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애정표현의 폭력 수위(?)에 대해 ‘간단히’ 말하기는, ‘간단치’ 않다. 어디까지가 데이트인지, 어디부터가 데이트 성폭력인지, 아니면 모든 게 장난인지, 당사자도 제3자도 판단하기 어려운 애매한 행위가 부지기수다.
내가 경험한 첫키스 중 한 사례를 ‘솔직히’ 공개한다. 그가 내 어깨를 안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목덜미에 입술을 대는 건 싫었다. 밀쳤다. 하지만 그가 불쾌해할까 봐, 확 세게 밀치진 못했다. 그 순간 그와의 관계를 아주 끊을 작정을 한 게 아니었기에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자 그는 키스를 시도했다. 나는 그를 밀쳤으나 잘 되지 않았다. 내 얼굴을 돌리려 했으나 그가 꽉 잡고 있어 잘 되지 않았다.
그때 나는 포기해버렸다. 내가 왜 포기했을까? 왜 더 강렬하게 저항하지 않았을까? 왜 꼬집거나 깨물거나 발로 차거나 하지 않았을까? 키스가 좋아서? 아니었다. 음, 할 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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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은 신 앞에서 “나 자신이 나에게 문제가 됩니다(I have become a problem to myself)”라고 고백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인간은 모두가 자기자신에게 문제거리다.
‘내 마음 나도 몰라’ 말하고 싶을 때가 (빈번하진 않을지라도)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던 사람은 세상에 없으리라. 아니 확고하게 “난 언제나 나를 잘 알고 잘 주장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더 소름끼치듯 무섭다.
어차피 인간의 마음속에 심연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 어떤 의도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 깔끔하게 이해하거나 이해되는 일은 쉽지 않다. 데이트 성폭력 사건에서는, 이게 더 어려워진다.
대개의 나라들에서는 데이트 성폭력 피해자(주로 여성)에게 ‘왜 그게 성폭력이었는지’를 입증하도록 권고(강제?)하는 경향이 있다. 허나 비록 최근의 일이긴 하지만, 북유럽 국가들에서 데이트 성폭력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가 어째서 성폭력이 아닌지’를 증명해야 하는 분위기가 더 강력해지는 추세다. 즉 상대방으로부터 ‘명시적 동의’를 확실히 받았는가 하는 점에 집중하는 것이다.
2017년, 전세계적 미투운동의 영향으로 일어난 변화! 역시 올바른 방향을 추구한다면, 운동은 하고 봐야!
가해자가 명시적 동의를 '받은(!)' 증거를 제시하며 설명하는 것. 이건 확실히 인간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공정하다. 에이, 대체로 (피해자가 되는) 여성에게 유리한 건데 뭐가 공정한 거냐 싶겠지만,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시라.
가해자가 명시적 동의를 입증하도록 하는 방식은, 성폭력 가해자 한 명을 다른 보통의 사람들과 구별하여 다루는 효과가 있다. 이 방식을 사용하면, 성폭력 사건 앞에서 ‘남성 대 여성’ 식으로 성별중심의 진영이 형성되는 것도 예방된다.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데이트 성폭력이 발생했고, 그 사건의 내용이 언론에 기사화됐다. 성폭력 가해자로 고소당한 사람이 자신의 행위가 성폭력이 아니란 걸 입증하고자 내놓는 증거들을 대할 때 보통의 사람들은 ‘저딴 식의 애정표현을 왜 하지? 난 저렇게 안 하는데!’하고 생각하게 된다. 가해자와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앞에 공개한 내 사례로 생각해보자. 내 상대였던 남자는 나의 명시적 동의를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여자는 남자를 밀쳤다.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게 명시적 동의?
또 어느 순간 여자가 남자를 밀치다 중단한 것, 그게 명시적 동의였다고 그는 과연 주장할 수 있을까?
허나 반대로, 이 입증단계를 피해자가 주도하도록 하는 경우에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심한 경우, ‘아니 왜 그때 당시에는 가만 있었대?! 어쨌거나 싫진 않았단 거잖아?!’하는 아이디어가 일어날 수 있다. 앞에 공개된 내 사례를 읽을 때, 쯧쯧, 하신 분들, 있었을지 모르겠다.
제삼자들은 피해자를 의심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가해자와 자신을 분리하기 어려워진다. 성폭력 가해경험이 자기한테 전연 없을 때에도, 심지어 여성들마저도 그리 반응할 수 있다. 남성의 경우 ‘저 정도면 나도 어쩌면 걸리겠는걸?’ 하는 심정이 생길 수도 있다.
‘펜스 룰(Pence Rule)’에서 보듯,* 손만 까딱해도 눈동자만 굴려도 성폭력 될지 모른다는 식의 과도한 공포심(?)이 남성집단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과민반응 같은 것인데, 이를 통해 서로 만난 적도 없는 남성들 안에서 갑자기 강한 연대감이 조성된다.
*펜스 룰: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가 한 말이다. “아내 외의 여자와는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여성들과의 관계를 (공적 관계까지 포함해) 통으로 거부한다는 표현이다.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이 ‘명시적 동의를 입증’하는 방식은 여성들에게뿐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유익하다. 사건이 일어나 재판절차에 들어갔을 때 피해자의 명시적 동의를 ‘받.았.는.지.’를 증명해 제3자에게 인증받는 방식은, 잠재적 가해자 집단에 대다수의 남성들이 자기도 모르게 묶이는 사태를 방지한다.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분류하며 꺼리거나 멀리 하게 하는 말들, 그거 보통의 선량한 남성들에게 얼마나 억울한 일이던가? 얼마나 불공정, 불공평한 일인가?
그러므로 명시적 동의 여부를,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따져묻는 건 매우 공정한 방식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이런 판례들이 자꾸 공론화되면, 더 유익한 긍정적 부대효과까지 불러오게 될 것이다. 데이트하며 연인들이 명시적 동의를 구하고 표하는 동안, 두 연인의 관계가 점점 명료해지고, 또 발랄해질 수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