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ft feminism
나는 글을 쓸 때 카페를 주로 애용한다. 카페에서 작품을 써낸 <해리 포터>의 작가 J. K. 롤링을 흉내내려는 건 아니다. 카페에서 집중이 잘 되기 때문이다. 커피 탓이리라. 남이 서비스해주는 커피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 서비스를 두 번 받으면 기분이 두 배로 좋아진다. (커피값 두 번 지불해야 하지만.)
나는 대체로 넓은 작업용 테이블 같은 데에 마련된 좌석에 앉는다. 그래서 내 옆엔 언제나 나 같은 이들이 자리한다.
가만 보면 카페는 커피를 빌미로 다른 것을 추가로 제공하는 곳이다. 커플들에게는 데이트를, 쏠로들에게는 독서와 사색을, 사업하는 사람들에게는 거래성사를, 변호사들에게는 사건의뢰를, 나 같은 사람에게는 어쭙잖은 글이나마 집중하여 쓸 공간을···.
그런데, 특정한 날 특정시간대에 카페가 붐벼서 이 큰 테이블에 커플이 진출하는 사례가 생기곤 한다. 한번은 내 바로 옆에 여자가 앉고 맞은편에 남자가 앉게 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 즉시 두 사람은 마치 태평양만큼 떨어져있다는 듯 행동했다.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 마주잡았다. 나는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맞잡은 손이 시야에 잡혔다. ‘둘이 얼마나 좋으면 저럴까. 달달한 느낌. 귀엽구나!’
십 분쯤 경과됐을까? 그때까지 멀쩡히 서있던 커피잔이 쓰러졌다. 커피가 테이블 위에 쏟아졌다. 두 사람은 맞잡은 손을 풀고 커피를 닦기 시작했다.
“너 때문이야!”
“니가 잘못한 것 같은데?!”
싸우는 건지, 노는 건지, 아옹다옹···. 내가 그들에게서 잠시 한눈을 팔았기 때문에(으응?) 커피잔이 언제 쓰러졌는지, 누구의 과실인지 증언할 자신이 없었다. 물론 그들도 증인을 부르지 않았다.
카페에서의 사랑 표현이라는 게, 위와 같이 귀여운 종류만 있는 건 아니다. 살벌한 종류도 있다. 다른 날의 일. 역시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고 있을 때였다. 내 시야에, 한 여자가 팔짱을 끼고 앞자리의 남자를 노려보는 옆얼굴이 들어왔다.
남자의 표정으로 보아, 여자에게 뭔가를 잘못하고 사과를 하는 중인 듯했다. 듬성듬성 들려오는 단어들을 조합해보니, 남자가 여자 몰래 다른 여자를 만났다. 에구, 쉽게 용서받지 못할 짓을 했네.
그래도 여자가 남자를 만나주었고, 카페까지 와주었으니, 화해할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때쯤이었다. 여자가 피식~ 웃었다. 남자가 뭔가 어이없는 실수를 했나 보다. 콧물을 흘렸거나, 바지 남대문이 열렸거나, 정작 뭐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것까지 자세히 알아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 웃음이 ‘스위치’가 됐다. 두 사람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누그러졌다. 채 십 분도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다정다감을 연출했다.
‘화해하리라는 내 예상이 맞긴 했지만, 좀 싱겁게 끝났는걸’ 생각하며 그들에게서 완전히 신경을 껐다. 그때였다. ‘툭’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가 여자의 뒤통수를 때려 여자의 머리가 벽에 부딪힌 것이다. 여자가 화를 냈다.
어느덧 주위 사람들이 나처럼 다시금 그들에게 시선을 주게 되었다. 여자가 벌떡 일어나, 쿵쿵쿵 걸어 계단을 내려갔다. 카페 밖으로 나가버렸는지 돌아오지 않았다. 남자도 이내 사라졌다.
인간관계 안에서 일어난 어떤 문제사안에 대하여 제대로 정확하게 화해하지 않고, 실소(失笑) 하나로 잠시 분위기가 풀린 틈에 ‘화해했다’ 치고 그 다음으로 나아가는 건 어느 경우에도 좋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치게 따지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문제의 핵심을 신중히 겨냥해 직면하는 건 중요하다. 이건 커플이든, 친구관계든, 가족관계든, 무슨 관계든 공히 통용되는 말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커플, 친구, 가족을 ‘통합(종합)’한 부부관계는 (나는 경험해본 적 없지만) 얼마나 신중하고 심각하게 참여해야 하는 관계일지 상상하는 것마저도 간단치 않다. 물론 세상 모든 부부들이 다 자신들의 관계를 신중·심각하게 다루진 않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결혼 바깥에 있는 나로서는 어제도 오늘도 부부관계를 이어가는 분들이 바로 그런 이유로 ‘몹시 위대해’ 보일 때가 있다.
문득, 세상 모든 부부님들에게, 당신들이 몹시 위대한 인간관계 안에 들어서있음에 대해 감사하며 살고 있지요? 말 건네고 싶어진다. 이 한 마디 덧붙여가며. “진짜 위대한, 소중한 관계 같거든요!”
노처녀라, 결혼에 환상을 갖고 있군, 이라는 반응은 나오지 않기를···. 나의 진심이 잘 전달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