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키스의 추억(1): “이런 거 폭력일까?”

soft feminism

by 이인미
연인 사이에 (...) 폭력을 당하면, 사실, “이런 거 폭력인가요?”라고 누구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희미할지라도 어렴풋할지라도 느낌이 온다. 희미함과 어렴풋함을 무시하지만 않으면 된다.





첫키스를 추억한다는 것


안 그런 사례도 매우 많겠지만, 첫키스는 대체로 한쪽이 다른 한쪽에 일방으로 실시(?)되는 경우가 확률상 좀 더 많은 것 같다. 갑작스런 첫키스 같으니라구!


얼마 전까지만 해도(요즘도?) 우리나라에서, 뭐랄까, 남성다움은 ‘갑작스러운 몰아붙임’ 같은 것으로 이해(오해!)되었다. 벽에 여성을 몰아붙여 양팔로 가둬놓고 키스하는 장면을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또, 매몰차게 돌아서는 여성의 손목을 박력있게 잡아채서 결국 키스에 성공하는 장면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보여줬다. 그러고 나서 따귀를 맞는 사례도 드물게 있었지만···.


나만 해도, 어렸을 땐 그러려니 생각하며 지냈다. 그 와중에 그런 식의 첫키스를 (상대를 달리 하여) 두어 번 겪게 되었고, 그걸 크게 문제삼은 적도 없다. 솔직히(!), 문제삼아야 되는지 몰랐다.


내가 사춘기를 지날 무렵엔 성교육이나 연애교육 같은 게 없었다. 내용이 ‘성차별적입네 어쩌네’ 하는 비판도 없었다. 성교육이나 연애교육 자체가 완전히 없었으니 비판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내가 30대 초반이었을 때 <여성의 전화>에서 ‘딸들을 위한 캠프’를 열었던 적이 있다. 나는 강사로 참여했다. 그때 캠프에 참가한 중학생 여자아이들은 난생 처음 배우는 성교육과 연애교육에 대해 무척 놀라며, 동시에 매우 반가워했었다. 그때 그 아이들, 지금은 모두 중년여성이 되어있을 텐데, 그때 그 교육이 유익했기를 바란다.


고백컨대 나는, 꽤 나이가 들 때까지 첫키스를 일방의 애정표현으로 받아들이며 지냈다. 페미니즘과는 아주 거리가 먼 삶이었다. 그런데, 간혹 첫키스 추억을 떠올릴라치면 때로 불쾌해졌다. ‘애정표현의 불쾌감(?)’이라는 이율배반적이라는 견해를 갖고 한동안 지냈다. 희미하게나마, 어렴풋하게나마 폭력을 당했다는 느낌이 올라왔기 때문이리라.


물론 모든 첫키스가 불쾌하게 추억되진 않는다.모든 남자들이 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데이트 성폭력’을 감행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뭐. (명백히 부분부정이에요.)





희미함과 어렴풋함을 무시하지 않는 것


사랑을 고백한다는 것은, 어느 경우에도, 또 어느 나이에 이르렀어도, 상대가 누구일지라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난이도로만 보면 차라리 짝사랑이 쉽다. 그러나 고백이 연인관계의 시작이므로 연인 중 한 쪽은 반드시 그걸 감당하게 되어있다.


고백이 어렵고 힘든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고백이란 게 속성상 어차피 ‘일방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백하는 사람은 고백받는 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지만 어떻든 일방적인 고백을 감행하여야 한다. 확률로 반반이니, 도전해볼 만한 과제라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절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긴장감이 매우 고조된다. 인생이란 게, 결과가 뻔히 긍정적이면 우습거나 만만하고, 반대로 부정적 가능성이 있으면 긴장감이 말도 못하게 높다.


나도 사랑을 먼저 고백해본 적이 있다. 오십 넘게 살면서 뭔들 못해봤겠느냐 싶겠지만, 어떻든 정말로 그렇다. 세 번 해봤다. 결과는? 세 번 다 거절이었다. 타율 0%.


거절을 당하면, 거절을 받아들여야 한다. 거절당했을 때 억지로 상대를 붙들거나 키스하려 시도하면 안 된다. 거절한 상대를 ‘붙잡는 힘’은 ‘사랑의 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건 폭력이다. 또 거절한 상대 앞에서 무너져내리는 걸 보여줌으로써 상대의 ‘인류애’를 자극하려 해서도 안 된다. 자율적, 주체적 사랑을 방해하는 방식이며, 폭력이다.


일방적 고백까진 Okay,
그러나 폭력은 Not Okay.


만약 연인 사이에 한 번 폭력을 용인했다면, 이후의 관계에서 이 문제가 계속 불거질 수 있다. 폭력은 ‘싹’이 났을 때 따끔하게 제지당해야 한다. 데이트할 때 어떤 행동이 폭력인지 긴가민가하다고? 잘 모르겠다고? 그렇지 않다. 폭력을 당하면, 사실, “이런 거 폭력인가요?”라고 누구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희미할지라도 어렴풋할지라도 느낌이 온다. 희미함과 어렴풋함을 무시하지만 않으면 된다. 단, 사람에 따라 매우매우 희미하고 아주아주 어렴풋할 수 있으니 반드시 쉽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첫키스의 추억(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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