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ft feminism
외도남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모른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풍월로, 자기를 어떤 사람으로 묘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로 자기가 누구인지는 진실되게 말하지 못한다. 언변은 혹시 좋을지 모르나, 진실을 말하지는 못한다. ‘자기정체성에 관해 말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능력은 학력과 전연 무관하다. 자기정체성에 관해 진실을 말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려면, 외도남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져보면 된다.
“왜 아내가 있는데, 다른 여성과 데이트하려는 의도를 품었습니까?”
외도남은 이 질문에 답하길 꺼리거나, 중언부언 대답할 것이다. 갑자기 일부일처제나 결혼제도를 비판할 수도 있고, 자기 아내의 문제점을 부풀려 진술할 수도 있다. 일상의 지루함을 거론할 수도 있고, 느닷없이 성적인(sexual)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을지도 모른다. 혹은 여성이 갑자기 나타나 자기를 유혹했다고 특정한 여성을 탓할 가능성도 있다. 왜 아내가 있는데 다른 여성과 데이트하려 하는지, 그 의도를 자기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를 신뢰할 수 없다. 물론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자기자신을 100% 신뢰하는 경우는 아마 없을 것이다. 신(god)이 아닌 이상 자기가 자기를 100% 신뢰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 하겠다. 오히려 자기를 100% 완벽히 신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기자신에 대하여 근본주의적 신앙을 갖고 있는 고집불통의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도남은 자기신뢰가 없을 뿐 아니라, 어떻게 자기를 신뢰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외도관계 안의 사랑을 부부관계 안에서의 사랑과 비교해보면 어느 쪽이 더 건강할까? 외도남의 경우는 둘 다 건강하지 않다. 외도남은 사랑 자체를 건강하게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존재의 깊이’를 품고 있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상대를 알아갈수록 그 존재의 깊이에 더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사랑은, 상대에게 내 존재의 깊이를 알려주고 상대 존재의 깊이를 알게 되는 활동이다. 내 존재의 깊이가 나 자신에게도 알려지고, 상대에게도 알려지는 것, 그것이 친밀한 관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기정체감이 불명확하고, 자기신뢰가 불투명한 외도남은, 그러한 자기가 진실되게 아내에게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걸 원할 수조차 없다.
친밀한 관계 안에서 형성되고 지속되는 사랑은, 나의 정체성과 남의 정체성의 건강한 상호작용을 통해 생성되고 유지되고 성장한다. 둘 중 한쪽의 정체성이 상대적으로 불명확하고 불투명할 수는 있다. 이때 건강한 상호작용에 열심히 참여함으로써 두 사람의 사랑은 견실해질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 중 한 명이 그럴 의사를 갖고 있지 않다면···? 아니면 초기에 아주 조금 갖고 있다가 슬그머니 포기한다면···?
자기의 온 존재를 ‘열심히’ 쏟아붓거나 갈아넣지 않아도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라는 점, 그것이 외도관계의 특징이다. 여기서 온 존재라는 것은 두 사람만이 누리는 은밀·친밀함은 물론이거니와 두 사람이 연루되어있는 모든 사회적 관계를 포함한다. 외도관계는 은밀·친밀함은 갖췄지만, 사회적 관계는 갖추지 못했다. 온 존재의 한 부분을 아예 제쳐둔 것이다. 외도관계의 경우, 그 성질상 온 존재가 관여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바로 그 특징 때문에 자기가 친밀한 관계에 열심을 내고 있다는 ‘착각’이 일어난다. 그 착각이 외도를 지속하게 하는 주요 동력 중 하나가 된다. 그러니까 외도관계는 건강한 사랑으로 유지된다기보다는 ‘다른 동력’으로 유지된다는 이야기다.
드물게지만, 외도관계를 청산하면서 기존 부부관계를 종료하고, 새롭게 부부관계를 시작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하지만, 외도의 결과로 부부관계를 맺게 되었다면, 두 사람의 부부관계에서 외도사건이 또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외도는 습관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실, 외도는 외도하는 근본의 심리적 원인이 건강하게 치유받지 못한다면 언제고 발생가능한 사건이다. 표면으로 외도가 없이 유지되는 부부관계라 해서 사랑 가득한 부부관계라고 반드시 말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 이 글을 쓸 때에는 내 경험, 에릭 에릭슨의 사회심리발달이론, 그리고 이 책의 도움을 받았다. 리처드 테일러, <결혼하면 사랑일까>, 하윤숙 옮김, 부키,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