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별남이 된 외도남

soft feminism

by 이인미

사별남의 회한


기억컨대 삼십대 중반까지는 결혼경험 없는 남자와 사귈 수 있었다. 사십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이혼남이나 사별남을 만나는 사례가 생겼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삼십대 후반쯤에 대부분의 남자들은 결혼을 하더라.


어르신들은 결혼적령기(?)라는 단어를 쓰지만, 여성과 남성을 불문하고 결혼하기 좋은 때가 있기는 한 것 같다. <파니 핑크>라는 영화의 첫머리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여자가 서른 넘어서 결혼할 확률은 원자폭탄에 맞을 확률보다 낮다.” 1995년 영화라서 ‘서른’인데, 내 경험을 덧입혀 통역하면 마흔 혹은 쉰일 수 있다.


오십 넘은 여자가 결혼할 확률은 아마 핵폭탄에 삼세 번쯤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말하면 될지.


아참참, 로비 윌리암스(Robbie Williams)의 <Supreme>이란 노래에는 다음과 같은 노랫말이 들어있어, 심금을 울린다. 경쾌한 멜로디, 박력있는 리듬이 감동을 더한다. 그냥 흘려듣는 사람도 많겠지만.


And all the best women are married, All the handsome men are gay.
게다가 모든 멋진 여성들은 결혼했고, 모든 멋진 남자들은 게이란 말야.


나만큼 늙은 싱글이 쓴 노랫말인 듯, 동감 백 배 노랫말이다. 아무튼, 여차저차하여 나는 몇 년 전 사별남을 ‘잠시’ 만났었다.


그를 보며 느낀 것인데, 사별이 주는 고독과 회한은 남자(들)에게 더 치명적일 수 있는 것 같았다. 하늘이 무너졌냐 묻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사별이 주는 치명적 고독과 회한의 강도는 살아 생전 부부관계가 얼마나 충실했고 우호적이었고 친밀했든지와 거의 무관해 보였다. 부부관계에 그다지 충실하지 못했어도 사별의 상심은 무거울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왠지 죄송하지만) 오래된 동료의 갑작스런 부재는, 못 견디게 힘들 수 있다.





두 번째 사람?


“If you love two people at the same time, choose the second. Because if you really loved the first one, you wouldn’t have fallen for the second.”
“만약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하게 됐다면 두 번째를 선택하라. 왜냐면, 처음 사람을 진짜로 사랑했다면 두 번째 사람과 사랑에 빠지지는 않았을 테니까.”


어느 호텔 벽면에 적혀있는 글귀다. 영화배우 조니 뎁(Johnny Depp)이 한 말이란다. 흥미로운 메시지다. 바람둥이의 자기변명 또는 자기합리화 같지만.


이제 ‘그’ 사별남 이야기를 해보겠다. 그는 오랜 결혼기간 동안 틈만 나면 외도를 했다. 외도에 관한 한 그는 늘 스탠바이 상태였다. 잠깐씩 외도 휴지기가 있긴 했었는데, 적당한 상대가 눈에 띄지 않을 때에 한한다. 결혼 전엔 여러 여성을 동시에 사귀었고, 결혼 이후에도 그렇게 했다. 일관된 성격, 일관된 라이프스타일.


게다가 그의 주위엔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를 보고 있노라면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요즘 인기있는 이유가 짐작되고도 남는다. ‘남 얘기 같지 않아서’가 아닐지···.


심지어 한번은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아내에게 당당히(!) 밝히고 “당신이 사납게 굴고, 못났기 때문”이라고 공격하기까지 했단다. 아무리 최선의 방어가 공격이라지만, 제정신 박힌 사람인가 싶다. 그러나 그런 정신으로 유학도 갔다왔고, 경제적으로 풍족하며, 사회적 지위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는 조니 뎁의 주장과는 달리 ‘1번’을 떠나 ‘2번’과 독점적 관계를 맺기로 결정한 적이 없었다. 그냥 둘 다 유지하다가 2번의 존재가 들통나면 1번으로 복귀하길 반복했다. 가만 보면, 그에겐 1번도 어쩌면 사랑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남들이 그맘때쯤 다들 결혼을 권하길래, 마침 사귀는 여자가 예뻐서, 하게 됐다는 ‘망언’이 기억난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


사랑해서 결혼한다고들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위의 망언과는 훨씬 고차원의 말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이프로’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결혼할 때는 사랑도 고려하고, 사람도 고려해야 한다.


연애하는 동안 사랑만 하지 말고(으응?) 상대의 성격과 라이프스타일(lifestyle)을 가능한 한 꼼꼼히 살펴야 할 것 같다. 상습외도꾼이나 가정폭력범은 어떻든 걸러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헌데 이렇게 말하면 결혼할 때 사랑보다 ‘조건’을 따져야 한다는 의견과 비슷해지는 감이 없지 않다.


허나, 그런 말이 아니다. 조건도 조건 나름이다. 인간성이란 조건은 간과해선 안 될 조건이다. 콩깍지가 씌여, 내 방식대로의 사랑에 취하여, 살펴볼 기회가 있을 때에도, 상대의 ‘성품&라이프스타일,’ 좀 추상적으로 말하면 인간성에 직면하지 않는 문제에 관한 이야기기 때문이다. 결혼하면 나아지겠지, 같은 것은 권장할 만한 아이디어가 아니다. 건강한 연애에 이어 건강한 부부관계를 영위하는 커플들은 최초 사귈 때부터 서로의 인간성에 직면하는 과제를 허투루 대하지 않았을 거다. 또 사귀는 동안 쉽지 않은 그 과제에 계속 집중했을 거다. 나는 그리 믿는다.


여기까지는 어떻든, 결혼도 못(안) 해본 사람의 말이다. 그렇지만 신뢰도와 타당도가 형편없이 낮은 의견은 아니다. 제3자로서의 객관성, 꼼꼼한 관찰력에 근거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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