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와 남자

soft feminism

by 이인미

범죄사건, 개인정보 해킹


며칠 전 새벽 4시, 체크카드 결제승인 문자가 수신됐다. 그 시각, 영국에서, 내가 카드를 사용했다는 거다. 잠결에 문자를 읽으니 한국어인데도 무슨 말인지 얼른 해석이 안 되었다. 뭐라는 소리지?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번호가 카드사였다. 이 와중에 카드홍보 전화를 받으란 거냐? ‘거절’을 꾹 눌렀다. 그동안 계속 결제승인 문자랑 다른 문자 메시지들이 연이어 들어오고 있었다. 문자들을 차례차례 들여다보는데, 결제승인 문자 사이에, 이 메시지가 있었다.


***님의 카드가 해외승인되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 문자를 발신한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이 이상한 상황을, 당신한테 물어나 봅시다 하는 마음이었다.


“카드 사용 이상징후가 발견되어서 방금 전에 전화 드렸었습니다. 영국에서 결제가 되었는데요, 본인이 쓰신 게 맞나요?”
“아뇨. 그럴 리가 없어요. 저는 지금 한국에 있고, 자고 있었고···.”


상담원은 지금 전화통화중에도 영국(GBR)에서 누군가가 계속 카드결제를 시도하고 있으니, 해외승인을 당장 막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얼른 그리 해달라 대답했다. 아마도 거의 ‘하소연’이었을 것이다.





범죄자, 나쁜 인간


해외승인을 막자 더는 내 돈이 출금되지 않았다. 그러나 체크카드여서 이미 출금된 금액이 문제였다. 빠져나간 돈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해외결제 승인회사에 이의제기를 해야 한단다. 성과가 없지 않겠지만, 시간이 걸릴 수 있으니,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다행히 오래 지나지 않아 최초 결제 건은 해결이 됐다.)


나는 상담원께 감사하다 말하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 그런 다음, 세 가지 생각에 빠져들어, 동이 틀 때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첫째, 카드사는 내 카드에 이상징후가 발견된 걸 어떻게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었을까? 내가 어떤 데에다 돈 쓰고 다니는지 다 공개되고 있구만.
둘째, 도대체 내 돈이 얼마나 빠져나간 걸까? 정신차리고 헤아려봐라. 도대체 어디에서 내 정보를 빼간 걸까? 얼른 정신차리고 헤아려봐라.
셋째, 아니, 어떤 놈이 남의 카드정보를 해킹해서 지 맘대로 쓴 거야? 세상 최고 나쁜 놈 같으니라구.


“나쁜 놈! 나쁜 놈!”이라고 백만 번쯤 중얼거린 것 같다. 그러다, 갑자기 깨달았다. 내 카드정보를 해킹한 사람이 ‘남자’란 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 혼자 말하고 듣는 상황인데, 생면부지에다 범죄를 저지른 그 사람을 남자로 상상하고 욕한 것이 무슨 문제가 되냐 싶겠느냐만···. 이런 종류의 아이디어는, 말 그대로 편견이다. 성별 고정관념의 일종이다. 나는 어째서 범죄자를, 대번에 남자로 상상하게 되었을까? 여성 범죄자들이 세상에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클리셰(cliché)는 클리셰를 낳고


운전미숙자는 대충 ‘김여사’로 통한다. 삐뚤빼뚤 운전하는 차량을 보면 사람들은 “김여사, 또 길에 나왔네”하며 비웃는다. 이런 종류는 또 있다. 독일인은 시간과 규칙을 엄격히 준수할 것 같다. 이탈리아인은 ‘캣콜링(catcalling, 주로 길거리에서 행해지는 성희롱 행위)’에 능숙할 것 같다. 흑인은 성관계 시 특별한 재능(?)을 발휘할 것 같다.


간호사라는 말을 들으면 대개 성인여성 이미지를 떠올린다. 팔뚝에 털이 잔뜩 있는 남성 간호사가 점점 많아지는 추세임에도. 또, 국방장관은 군복차림의 성인남성으로 연상된다. 이십여 년 전 미국에서 올브라이트(Madeleine Korbel Albright)가 국방장관으로 4년 정도 버젓이 임기를 수행했음에도.


오십대 싱글여성에 대한 클리셰도 있는 것 같다. 까칠한 성격일 거다, 노처녀 히스테리 소유자일 거다, 결혼에 대해 환상(망상?)이 있을 거다, 몹시 못생겼을 거다, 몸매가 엉망일 거다, 남성 혐오자일 거다 등등···.


‘척하면 척’ 알아먹을 수 있는 내용들이, 말하자면 클리셰로 통용된다. ‘척하면 척,’ 바로 그 지점에 해당 클리셰의 묘미와 효력과 파급력이 있다.


대중이 사용하는 클리셰는 쉬 변경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비슷한 때에 한 방향으로 변화된다는 건 간단치 않은 일이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클리셰는 그런 변화나 일반화의 흐름을 전제로 한다. (게다가 그러한 변화 혹은 일반화는 자칫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넘어갈 수가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페미니즘은 주로 성별 고정관념을 표현하는 클리셰에 질문을 던진다. 그러느라 성별 고정관념 클리셰를 사용하는 대중에게 불편감을 준다. 바로 이때! ‘페미니즘은 (블라블라, 몰라몰라) 불편해!’라는 클리셰가 생성된다. 곧 이 클리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클리셰는 클리셰를 낳고, 클리셰는 클리셰를 낳고···. (신약성경 마태복음 시작부분 같은 일이 연속된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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