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여자라서 ‘죄송합니다’?

soft feminism

by 이인미

마녀일 수 있어서?


혼자 사는 여자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게 있는데 그것에는 역사가 있다.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혼자 사는 여자는 ‘마녀 후보자’였다. 혼자 사는 여자가 예쁘면, 마녀였다. 혼자 사는 여자가 상냥하면, 마녀였다. 혼자 사는 여자가 돈이 많으면, 마녀였다. 혼자 사는 여자가 섹시하면, 마녀였다. 혼자 사는 여자가 까칠하면, 마녀였다. 혼자 사는 여자가 요리를 잘하면, 마녀였다. 혼자 사는 여자가 이웃을 잘 도우면, 마녀였다.


혼자 사는 여자가 마녀라는 혐의를 벗으려면 몇 가지 시험을 받아야 한다. 그중 하나로 물 시험이 있다. ‘순수하고 선한 물은 불순하고 나쁜 마녀를 튕겨낸다’는 가설에 근거한 시험이었다.


시험방식인즉 이러하다. 마녀를 물에 빠뜨리면 물이 마녀를 튕겨낼 것이므로 마녀는 익사하지 않고 생존한다. 그러면 그 여자는 마녀임에 틀림없으므로 얼른 물에서 건져내어 화형에 처해야 한다. 반대로, 마녀 혐의가 있어 물에 빠뜨렸는데 익사했다면 그 여자는 마녀가 아닌 것으로 판명난다. 사람들은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마녀라는 오명(?)을 친절하게 벗겨준다.


역사적으로 남편 있는 마녀는 거의 없다(남편이 마녀의 기운을 억제한다?). 죽었거나 떠났거나, 애초에 없었거나 셋 중 하나다. 또, 마귀할멈은 혼자 사는 여자가 나이까지 많은 경우다. 주름살이 깊어 웃으면 눈가가 쭈글거리고, 늙었지만 건강해서 가볍게 ‘빗자루 타고’ 날아다닐 수 있는 여자를 가리킨다. 음, 나 같은 여자를 가리키는 말일 수 있다.


(내 사진을 공개할까 말까 잠시 망설인다.)





카리스마가 있어서?


수 년 전, 여성 직장동료가 내게 이런 말을 건넨 적이 있다. “카리스마 있어 보여요”라고. 내가 남성이었다면 이 말은 99.9% 칭찬이다. 그러나, 나의 직장동료는 칭찬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대화할 때 나는 상대의 눈을 응시하는 습성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그녀가 말하는 카리스마의 연원이었다. 그녀는 눈을 똑바로 응시하는 나의 습성이 불편하다는 것을 “카리스마 있어 보여요”라는 문장에 담아 표현한 것이다.


그녀는 나와 대화할 때 늘 나의 턱과 목 사이 어디께에 눈길을 두었다. 그녀처럼 시선을 처리하는 분들이 제법 많다. 상대의 눈을 똑바로 보는 것을 어려워한달까, 피한달까. 그 같은 시선처리를 어떤 이들은 ‘한국식’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외국인들이 거론하는 한국인의 특징목록에 이 ‘한국식 시선처리’라는 내용이 들어있는 경우가 제법 많다. 헌데 최근 들어 내 또래 말고, 젊은 한국인들 중엔 ‘한국식 시선처리’를 사용하지 않는 분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추세다. 그래서인지, 나는 나보다 어린 사람들과 대화할 때 마음이 더 편안하다.


물론 이른바 한국식 시선처리가 명확한 사람도 있고, 애매한 사람도 있다. 또 한국식 시선처리를 항상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듬성듬성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발견한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 평상시 눈을 응시하지 않는 시선각도를 유지하는 사람도, 싸울 때는 상대의 눈을 향하더라는 것.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똑바로 쳐다보는 시선을 ‘싸우자’는 뜻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나의 응시하는 시선에서 불편을 느낄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당신 남편의 ‘잠재적’ 상간녀일 수 있어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성폭력 가해자 아닌 남성들을 싸잡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는 것은 명백히 부당한 일이다. 남성들은 자신이 잠재적 가해자로 간주되는 것에 몹시 화를 낸다. 그럴 수밖에 없다. 화가 나는 거, 충분히 이해된다.


화만 잠깐 내고 끝나길 바랍니다. 페미니즘 혐오자로 변신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요.


페미니즘 중에 남성들을 적대시하는 주제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모든’ 페미니즘이 ‘모든’ 남성들을 적대시하지는 않는다. 페미니즘 중 ‘어떤’ 페미니즘이 ‘어떤’ 남성을 적대시한다.


‘모든’과 ‘어떤’ 사이에서 여성이든 남성이든 길을 잃지 않기를 소망한다. 페미니스트든, 앤타이-페미이스트든···.


내 경우는 (고백컨대) 혼자 사는 여자라서, ‘내 남편의 잠재적 상간녀’로 취급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상간녀 통계에서 기혼여성의 비율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러고 보면 혼자 사는 여자, 싱글여성은 외도와 관련하면 어쩌면 ‘공익광고’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실제 외도상대자가 되어봤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존재 자체로 잠재적 상간녀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문득 환기하여, 외도 경각심을 북돋울 수 있다.


내 경험상, 정상적인 기혼남성(유부남)들은 결혼해본 적 없는 싱글여성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신경쓰는 이들은 사실 성가신 축들이다. 내가 자기표현을 명확히 하면 ‘자기표현이 강해서 싱글인 거야’라고 말하고, 자기표현을 좀 자제하면 ‘자기표현을 못해서 결혼도 못한 거야’라고 끼어든다. 묻지도 않았는데 (내겐 존재하지도 않는 ‘큰오빠’를 자처하듯 아니 사칭하듯) 훈수를 둔다.


물론! 이건 철저히 내 경험에만 근거한 ‘이론’이므로 일반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나 같은 싱글여성이 남편 앞에 얼씬거릴 때 혹시 불안해할 기혼여성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남편의 외도는 어떤 종류의 여자가 나타났는가에 걸려있는 게 아니라, 그 남편의 ‘정조(fidelity) 시스템에 오작동이 일어난 문제’라고 말이다.





모든 죄송함을 넘어, 당신에게 ‘타인’으로 존재하는 개인으로서


혼자 사는 여자는 싱글상황을 스스로 선택했을 수 있다. 혹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싱글상황에 도래했을 수 있다. 인간은 인생의 매 단계마다 선택도 하지만, 우연이나 사고도 경험하게 마련이다. 싱글여성도 (인간인 고로) 마찬가지다.


결혼을 기준으로 사람을 분류하면 기혼 대 비혼(미혼)이다. 연애관계를 기준으로 사람을 분류하면 커플 대 싱글이다. 이외에도 성인남녀를 분류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 두 기준을 우선 적용하면 나는 ‘비혼-싱글여성’이다. 비혼-커플여성, 기혼-커플여성을 때때로 꿈꾸지만, 이런 건 나 혼자 노력한다 해서 이룰 수 있는 꿈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그 꿈을 간직한 채 나름의 일상생활을 영위한다. 일상생활 가운데 나를 만나는 누구나에게 나는 ‘타인’으로 존재하는 ‘개인(individual)’이다.


말이 나온 김에 나를 더 적극 변호하자면, 나는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두려움을 일으키는 존재(마녀)가 될 의지는 결코 생성해본 적 없다. 불편감을 주는 존재(카리스마)로 보였다면 미안하고, 불안감을 조성하는 존재(외도상대자)로 인식됐다면 죄송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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