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인미 Nov 08. 2024

브레멘 음악대: 여기가 바로 브레멘입니다

<브레멘 음악대>를 읽으면, 별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우리는 아렌트의 정치이론 중 ‘협력’을 강조하는 행위이론을 배울 수 있다. 아렌트에게 관심 두는 이들 중 어떤 이들은 “아렌트를 더 알고 싶은데, 읽기가 쉽지 않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 분들에게 추천한다.


<브레멘 음악대>를 읽으십시오. 이 동화를 꼼꼼히 읽으면 아렌트의 정치이론, 그중에서도 행위이론의 알맹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독주에서 이중주로


<브레멘 음악대>에서 브레멘으로 가겠다고 길을 나선 첫 번째 동물은 당나귀다. 더는 쓸모가 없어져 주인에게 홀대받게 된 당나귀 한 마리가 어느 날 브레멘을 향해 출발하기로 마음먹고 길을 나섰다. 이 당나귀가 길을 가던 중 사냥개 한 마리를 발견했다. 사냥개는 그때까지 막 힘든 길을 달려온 것처럼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당나귀가 사냥개에게 “너 왜 이렇게 헐떡거리니?”라고 물었다. 사냥개가 대답했다.


“내가 늙어서 그래. 나는 하루하루 더 허약해져. 그래서 더 이상 사냥을 못하게 되었는데, 주인이 날 죽이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도망쳤지 뭐야. 근데 이제 뭐 먹고 살지 걱정이야.”


그러자 당나귀가 사냥개에게 솔깃한 제안을 하나 날린다.


“너 그거 아니? 난 브레멘에 가서 음악대에 들어갈 건데, 너도 나랑 같이 가서 그 음악대에 들어가자. 난 류트를 연주할 건데, 넌 드럼(북)을 연주하면 어때?”


류트는 현악기의 일종이다. 당나귀의 말을 들은 사냥개는 무척 좋아했다. 여기서 아렌트의 행위이론을 염두에 두고 있는 우리가 각별히 주목할 것은 둘이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기로 정했다는 점이다. 당나귀는 나랑 같이 류트를 연주하자, 그리 말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마음에 담아두자.



이중주에서 삼중주를 거쳐 사중주로


그렇게 둘이 함께 걸어가는데, 이번엔 고양이를 만났다. 고양이는 삼일 내내 비를 맞은 듯 안색이 좋지 않았다. 당나귀가 물었다. “무슨 일이니?” 고양이가 대꾸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내 이빨이 약해져서 쥐를 잡는 것보다 난로 뒤에 앉아서 갸르릉거리는 시간이 많아졌어. 그랬더니 내 주인 아주머니가 나를 익사시키려 하더라고. 그래서 서둘러 도망가는 중이야.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겠어.”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가 익사 위기에서 서둘러 도망쳐나왔다는 말을 들은 당나귀는 아까 사냥개에게 했던 말을 다시 또 한다. “그러면 우리 같이 브레멘으로 가자. 너는 낭만적인 음악 세레나데(소야곡)를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 브레멘 음악대 단원이 될 수 있어!”


당나귀는 늙은 고양이에게 류트나 북이 아닌 또 다른 파트(연주곡의 느낌을 살리는 파트, 지휘자 같은?)를 제안한다. 셋은 음악대 안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담당하기로 정한 것이다. 농장을 지나가던 중에 그들은 문 위에서 목청 돋워 부르짖고 있는 수탉을 보게 되었다. 당나귀가 감탄했다. “너는 뼈와 다리를 뚫을 정도로 멋지게 소리치고 있구나. 도대체 무슨 일이야?”


수탉이 대답했다. “내가 내일 좋은 날씨가 온다고 예언했더니, 내 주인이 손님을 초대했단다. 그러고는 요리사한테 나를 잡아서 닭고기 수프를 만들라고 명령한 거야. 주인이 날 잡아먹는다니 말이 되니? 나같이 충성스러운 수탉을 말이야! 모르긴 몰라도 오늘 저녁이 오면 내 머리는 댕강, 잘려나갈 거야.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마지막 날을 한스러워하며 목이 쉬도록 소리지르는 것밖에 없어.”


당나귀가 상심한 수탉에게 말했다. “얘, 수탉아, 우리랑 같이 가자. 우리는 지금 브레멘으로 가고 있어. 우리는 거기 가서 음악대를 만들어서 공연할 거거든. 우리랑 같이 가면 너는 너의 좋은 목소리로 우리 음악을 더 훌륭하게 완성해줄 수 있어.”



첫 번째 사중주 공연


브레멘은 하루 만에 도달하기에는 먼 곳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숲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당나귀와 사냥개는 큰 나무 아래 누웠고, 고양이와 수탉은 나뭇가지 위에 앉았다. 모두 똑같은 장소에서 잠든 게 아니고, 저마다 자신이 선호하는 잠자리를 찾아간 것이다. 높은 곳에 앉은 수탉은 잠들기 전, 잠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때 수탉의 눈에 작은 불빛이 들어왔다. 수탉이 친구들에게 소리쳤다.


“저기 불빛이 보이는데, 집이 별로 먼 것 같지 않아!”


동물들은 노숙하는 것보다 집안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게 더 좋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집안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게 더 좋다는 커다란 전제에는 동의했지만, 그 이유는 동물마다 달랐다. 노숙 여건이 좋지 않다는 의견을 말한 동물이 있는가 하면, 집안에 맛있는 음식이 있을 거라는 의견을 발표한 동물도 있었다.


의기투합한 동물들은 불빛을 따라 걸어갔다. 그런데 불빛이 흘러나오는 그 집은 공교롭게도 도둑들의 집이었다. 당나귀가 창문을 통해 집안을 탐색한 다음 다른 동물들에게 말했다. “좋은 음식과 마실 것으로 가득 찬 식탁 주위에 도둑들이 앉아있어.” 그러자 수탉이 대꾸했다. “응, 응, 우리가 그 식탁을 차지했으면 좋겠다.”


동물들은 도둑들을 쫓아내고 자기들이 집안에 들어가 음식을 얻고 잠자리를 확보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회의하기 시작했다. 회의를 마치자마자 당나귀가 먼저 행동을 시작했다. 당나귀는 앞발로 창문에 기대어 섰다. 그러자 사냥개가 당나귀의 등 위에 뛰어올랐다. 다음으로 고양이가 사냥개 위에 부드럽게 기어올랐고, 마지막으로 수탉이 그 위로 날아올라 고양이 머리 위에 앉았다. 그런 다음 그들은 함께 ‘대단한 것’을 만들어냈다.


원어(독일어) 버전: Der Esel schrie, der Hund bellte, die Katze miaute und der Hahn krähte.
한국어 버전: 당나귀는 이히힝, 개는 왈왈, 고양이는 야옹야옹, 수탉은 꼬끼오 울었습니다.  
영어 버전: The ass brayed, the dog barked, the cat mewed, and the cock crowed.


집안에 있던 도둑떼는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무서워서 비명을 지르며 집밖으로 뛰쳐나갔다. 네 마리의 음악대원은 집안으로 들어와 그들이 식탁 위에 남겨놓고 간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난 뒤, 네 마리의 음악대원은 불을 끄고 각자 편안한 곳에 잠자리를 만들었다. 당나귀는 농장으로 가서 분뇨 근처에 앉았고, 사냥개는 문 뒤에, 고양이는 벽난로에 있는 잿더미 위에, 수탉은 닭장의 홰 위에 올라앉았다. 그들은 물론 한 팀이지만 각자 자신들의 타고난 성격과 개성을 전혀 잃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의 특징껏, 그리고 개성껏 잠자리를 정성스레 만든 후,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엄청난 음악대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어젯밤 도망쳤던 도둑떼가 멀리서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둑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 집을 살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으로 들어간 도둑 한 명은 집이 아주 조용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부엌으로 들어가 불을 켜려고 했다.  


그때 고양이가 그의 얼굴로 뛰어들어 할퀴었다. 깜짝 놀란 도둑이 뒷문 쪽으로 뒷걸음질쳤다. 마침 뒷문에 앉아있던 사냥개가 깜짝 놀라 뛰어올라 그를 물었다. 도둑은 집밖으로 달려나가 분뇨가 쌓여있는 농장 쪽으로 갔다. 당나귀가 뒷발로 도둑을 걷어찼다. 이때쯤 수탉이 홰 위에서 천둥 같은 소리를 냈다. “꼬끼요오~ 꼬끼요오~”


도둑이 도둑떼 대장에게 뛰어가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아! 저 집에 마녀가 있어요. 마녀는 손톱으로 내 얼굴을 할퀴었어요. 돌아 나오려는데 문 앞에 칼을 들고 어떤 남자가 서있다가 내 다리를 푹 찔렀어요. 농장에는 나무 곤봉으로 나를 걷어차는 검은 괴물이 있었어요. 그뿐이 아니에요.  지붕 위에서 어떤 판사가 나에게 배신자를 데리고 오라고 고함을 질렀어요. 나는 도망쳐올 수밖에 없었어요.”


그 이후, 도둑떼는 더 이상 그 집에 가지 않았다. 네 마리의 음악대원들은 그곳에서 오래도록 머물렀다. 처음부터 그들의 목적지로 계속 이야기됐던 브레멘은 이제 언급되지 않는다. 동화의 마지막 결말부는 이렇게 되어있다.


영어 버전: [t]he four Bremen town musicians found themselves so well off where they were, that there they stayed. And the person who last related this tale is still living, as you see.

한국어 번역: 브레멘의 네 음악대원들은 그들이 있던 곳에서 매우 넉넉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아직 살아있습니다.




그림출처: 그림 형제 동화 웹사이트 https://www.grimmstories.com/ko/grimm_donghwa/beulemen_eumagdae


30년전쟁과 브레멘


브레멘이라는 도시는 실재하는 도시다. 독일 북부에 위치한다. 브레멘은 17세기 유럽을 휩쓴 ‘30년전쟁’ 시기에 극심한 고난과 고초를 당했다. 처음에 브레멘은 어떻게든 전쟁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먼저 구교(가톨릭)와 신교(프로테스탄트/ 루터파, 칼뱅파로 또 다시 나뉨) 사이에서 ‘중립’을 선포하고, 활발한 상업활동을 통해 그동안 쌓아둔 막대한 부(wealth)를 활용해 전쟁통에 들어서지 않으려고 무진장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 노력이 무색하게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었을까) 구교와 신교(루터파, 칼뱅파)를 앞세워 주변 나라들이 모두 뛰어든 ‘끝장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이리 쓸리고 저리 쓸려다니게 되었다. 무려 30년 동안, 끔찍한 피해를 입으며 고생한 몇몇 독일 도시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 <브레멘 음악대>는 바로 그러한 슬픈 고난의 역사를 지닌 도시 브레멘을 마치 ‘이상향’인 양 묘사한다. 당나귀가 동물들을 하나둘 모을 때마다 언급하는 ‘브레멘’이라는 도시 이름은 독자들에게 “야, 브레멘에 가면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되는가 보다”하는 느낌을 갖도록 이끄는 ‘기호’로 작동한다. 그러나, 동물들은 정작 브레멘에 도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앗! 얘들이 브레멘에 안 가?”하게 된다.


그림출처: 퍼블릭도메인(독일 브레멘에 위치한 브레멘 음악가들을 묘사한 게르하르트 마르크스의 청동상. 그 동상은 1953년에 세워졌다.)




‘똑같은 소리’ 말고 ‘서로 다른 소리’


아렌트의 행위이론과 <브레멘 음악대> 줄거리의 접합부분은 음악 연주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서로 다른 파트를 연주한다’는 지점이다. 동일한 소리로 동일한 파트를 연주하는 게 아니라, 다른 소리로 다른 파트를 연주한다는 것이 아렌트의 행위이론에 꼭 들어맞는다. 실제로 아렌트는 ‘협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Act-in-Concert.


정치행위를 생각할 때 우리는 흔히 ‘일치단결된 하나의 세력’을 우선 생각하곤 한다. 정치적 목적으로 모인 정당이 특히 그렇다. 정당인들은 정당의 기치 아래 단합된 모습을 보인다. 정당 안에서 회의할 때는 물론 민주적으로 다양한 의견을 발표하며 토론하겠지만, 그들이 어느 하나의 견해를 정하고 나면 대체로 한몸처럼 움직인다. 예를 들어 녹색당은 녹색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정당 활동을 도모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길거리 정치집회도 중요한 이슈 한두 개에 집중하게 마련이다. 좀 속되게 말하자면 “한놈만 팬다” 식이다. 그런데, 아렌트의 행위이론은 하나의 세력, 단합된 모습을 강조하지 않는다. 하나의 세력이나 단합된 모습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아렌트에 따르면, 정치행위는 서로 다른 파트를 서로 다른 음색으로 연주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똑같은 소리를 똑같이 내는 것, 똑같은 소리를 똑같이 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은 원칙적으로 볼 때 ‘전체주의적’인 활동이다. 서로 다른 소리가 자유롭게 터져나와서 그 결과로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렌트가 이야기하는 ‘협력’의 의미다.


하지만 우리 주변엔 나와 다른 소리를 들으면 그 다른 소리를 ‘삑사리’로 간주하고 야단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때로는 왜 단합을 흐트러뜨리고 방해하느냐는 꾸지람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아렌트에 따르면 ‘삑사리’는 없다. 아니 모든 ‘나’의 소리는 모든 ‘남’에게는 ‘삑사리’일 수 있다.



그들이 함께하는 곳 그 어디나 브레멘


<브레멘 음악대>와 아렌트의 행위이론을 연결해 말해보면 이렇게 된다. 세상 모든 ‘삑사리’가 평화롭게 살아있는 곳, 거기가 브레멘이다. 아닌 게 아니라 동물들은 그 집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로 합주(콘서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집에 머무르기로 했다. 그들이 서로 다른 소리를 내어 연주할 수 있고 연주의 효과를 누린 훌륭한 무대가 그곳이라면 그곳이 곧 브레멘이니, 그들은 굳이 어디 다른 무대(브레멘)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찌 보면 그들이 함께하는 곳 그 어디나 브레멘일 수 있다. 동화의 말미에 이르면서 우리는 어렴풋이 알아채게 된다. 저들이 브레멘이라는 특정장소로 가야만 음악대가 되는 건 아니구나, 하는 것 말이다.


아렌트는 “우리는 어딜 가든 ‘폴리스(민주주의)’를 세울 수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가만 보니 동화의 제목이 <브레멘으로 가는 음악대> 아니고 <브레멘 음악대>다. 서로 다른 소리로 서로 다른 파트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곳, 그곳이 어디든 브레멘! 이 메시지를 제목에서 벌써 알려줬던 것.


이전 07화 선녀와 나무꾼: 인생은 용서‘복붙’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