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행위의 속성과 용서
ㄱㅁㅇㅎ(정당명 안 쓰겠음. 차마 못 쓰겠음.) 소속의, 자칭 소장파 초선 국회의원 김재섭의 기자회견 첫 두 문장을 다시 읽어본다.
“당당하게 새로 시작합시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이 청중으로 상정한 이가 '국민'이라 하면 대번에 '문장호응'이 깨진다. 왜냐면, 국민은 12월 3일 평화를 깨고 선포된 불법 비상계엄 무력화를 이미 시작했으니까. 즉 12.3내란범죄를 그날 당일 온몸으로 막아냈으니까. 그럼으로써 국민은 이미 우리 민주공화국 시스템 구하기를 시작했고, 앞으로도 여러 다양한 방법을 통해 계속 시도할 거고, 그리 할 수 있음 또한 확신하니까.
반면 저 문장이 자기네 '이익집착 패거리'를 향한 말씀(?)이라면 그나마 말은 된다. 문장호응만큼은 갖추게 된다는 말이다. 허나, 그러고 나면 파악되는 것 한 가지! 아! 저 사람은 심지어 기회주의자마저도 못되는구나.
아렌트는 말했다. 행위(‘말’을 포함)는 한 번 하고 나면 돌이킬 수 없으니, 용서를 주고받자고. 돌이켜보면 ‘사과’와 ‘용서’가 인간의 역사에 수없이 재현되어왔다. 왜 그랬을까? 지나간 행위를 용서받지 못하면 새로운 행위를 시작하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단!! 용서를 적극적으로 구하며 새로운 행위를 시작하는 것과, 윤상현이라는 ㄱㅁㅇㅎ 5선 국회의원의 말씀을 '금과옥조'로 받아 "1년만 지나면 다 잊혀져"를 전제로 두고 과거와 다른 행위로 나아가며 변화를 슬쩍 보여주는 건 '천지차이'다. 그래도 변화한 건 다행이지만.
군인도 군인 나름이듯, 청년도 청년 나름이다. 김재섭은 자기가 주장해온 청년의 기운을 이미 잃은, 아니 버린 것 같다. 목하 ㄱㅁㅇㅎ이 '국민의 힘'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중이듯, 청년이 청년이기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