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기술
어깨가 자주 뭉치는 편이라 코로나 전에는 자주 마사지를 받으러 다녔다. 마사지 가서 늘 듣는 두 가지 말이 있는데, 첫째는 아니 대체 무슨 험한 일을 하시길래 이리 어깨가 뭉쳐 있냐는 말과, 둘째는 몸에 힘 좀 빼라는 말이었다. 마사지의 효과가 있으려면 근육이 힘을 빼고 이완이 되어야 마사지사님도 나도 편한데, 도대체 힘을 빼고 살아본 적이 없어서 힘을 빼라고 하니 더 힘을 주는 형태였다. 힘을 빼려고 용을 쓸수록 힘이 더 들어가는 것이었다.
치과의사들끼리 어느 과가 더 힘든지 대화를 하던 중이었다.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소아치과의사가 그래도 너희 환자들은 입은 벌리잖아.라는 말로 좌중을 압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아이들은 입만 벌려도 반은 성공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구강 검진을 위해서는 치경dental mirror라고 불리는 작은 거울을 입안에 집어넣고 사용하는데, 입을 안 벌리는 아이들에게 치경을 무리하게 넣었다가는 아이들이 이 치경을 물어버리는 일이 생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뭘까? 더 힘을 줘서 빨리 치경을 빼내야 할까? 치경을 빼내기 위해 내가 힘을 주면 아이들은 더 강하게, 더 세게 치경을 깨문다. 자칫 잘못하면 거울이 입안에서 깨지는 큰 사고까지 생길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힘을 빼면 된다.
치경이 아이의 치아 사이에 물렸을 때 치경을 잡고 있던 손의 힘을 스르르 뺀다.
그러면 아이도 신기하게 어느 순간 꽉 물고 있던 힘을 스르르 뺀다.
그때 치경을 빼내면 되는 것이다.
응립여수 호행사병(鷹立如睡 虎行似病)라는 말이 있다. 매는 조는 듯이 앉아 있고 호랑이는 병든 듯 걷는다는 뜻이다. 매는 ‘매의 눈’이라는 말처럼 날카롭게 노려보아야 정상이고 호랑이는 위풍당당하게 걷는 게 당연한데 왜 매는 조는 듯이 앉아 있고 호랑이는 병든 듯 걷는다고 할까. 질문을 반대로 던지면 답이 보인다.
만일 매가 예리한 눈초리를 번득이고, 호랑이가 몸에 힘을 주어 걸으면 다른 동물들에게는 신호를 주게 된다. 항상 이들과 멀리 떨어져야 신상에 이로운 노루나 사슴들에게 이 모습은 위기의 징조로 해석할 수 있다. 조만간 생과 사를 가르는 위험이 자신들에게 닥칠 것이라는 신호다. 신호를 보고 바람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노련한 매와 호랑이는 조는 듯 앉아 있고 병든 듯 걷는다. 그래야 사냥감들이 경계심을 풀 것이고, 배가 고플 때 쉽게 사냥감을 찾을 수 있는 까닭이다. 특히 산전수전 다 겪은 호랑이들은 힘을 쭉 빼고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닌다. ‘지금은 배가 불러서 너희들에겐 관심이 없어’라는 제스처를 온몸으로 보이면서 말이다. 물론 풀린 눈 속의 예리함으로 주변 상황을 전방위로 ‘스캔’ 하는 건 당연지사다.
이렇게 어슬렁거리다가 괜찮은 대상을 발견하면 슬슬 따라간다. 목표물의 행동을 잘 관찰할수록 그들의 패턴을 알 수 있다. 패턴을 알면 목표 달성이 쉬워진다. 맹수는 조용히 기회를 만든다. 반대로 초보 호랑이들은 온몸에 힘을 주고 다닌다. 힘을 팍주고 무조건 달려들면 굶어 죽는 쪽은 호랑이다.
글쓰기 모임에서 글을 잘 쓰는 분이 있다. 그녀의 글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좋다고 한다. 그녀 표현에 따르면 본인은 정말 평범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글 쓸 소재도 없고, 내용도 특별하지 않아서 매번 쥐어짜서 써낸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의 글은 모두가 좋아한다. 그녀 말대로 그다지 특별한 내용도 아닌데 왜 다들 좋아할까.
그녀의 글은 편안하다. 힘을 주고 있지 않다. 독자들에게 내가 무얼 안다고 아는 체하지 않는다. 읽는 이로 하여금 무얼 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툭, 때로는 무심히, 때로는 섬세하게 세상을 ‘스캔’한 시선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본인은 책을 쓰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데 주변 사람들이 더 난리다. 책 주제를 정해주고, 출판사도 연결해주겠다 한다.
인생은 용을 쓴 만큼 이루어지지 않는다. 글도 마찬가지다. 용을 쓴다고 해서, 애만 쓰다고 해서 좋은 글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노력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가 운다고 해서 아이의 입안을 보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다만, 노련한 호랑이처럼 힘을 빼고 어슬렁거려 보자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호랑이가 노루를 사냥하는 것처럼, 인생에서도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순간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