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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인스타를 잘 안 하는 편인데, 어느 날 심심해서 둘러보다가 글쓰기 수업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글쓰기 수업 스텝을 맡기도 했고 다른 글쓰기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나 싶어서 한번 둘러보았다. 화려한 면면이다. 수강자 중 80프로 이상이 출간 계약서를 맺었고, 베스트셀러 작가도 있다 하고 아무튼 그랬다. 수강료가 얼마인지 싶어서 클릭을 해봤다가 동그라미를 잘못 셌나 싶어서 다시 센다. 1000만 원....


자가 출판비용이 대개 1,2000만 원 정도 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냥 저 비용이면 자가 출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관심사가 생기면 관련된 것이 눈에 잘 보이는 법이다. 글쓰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더니, 글쓰기 수업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런 고액의 수업뿐만 아니라, 웬만한 책을 한두권 내신 분들은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글쓰기 동기부여를 해준다는 점에서, 글쓰기를 독려한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강의 중독이라는 것이 있다. 글쓰기를 배운답시고 여러 강의를 쫒아 다니는 것이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는 일이다. 그러나 강의라는 방식은 강의를 하는 강사만 더 똑똑하게 해 줄 뿐이다. 누군가를 가르침으로써 배우는 사람은 다른 아닌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글은 어떻게 해야 느는가? 천만 원짜리 강의를 들으면 갑자기 글 신이 내려와서 글이 술술 써질까?



살을 빼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 살 빼는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내 뱃살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자신의 바깥에서는 어떤 배움의 길도 없다.




아이가 6살 때 친구 따라 그림 그리는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집 근처에 있어서 물감 가지고 실컷 놀다 오라 싶어서 보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가 그림을 막 그리지 않고 동물을 그리는데 몸통을 그리고 다리를 원근법에 맞추어 하나는 내밀어 그리고 하나는 뒤로 넣어 그리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그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다른 형태로 그려도 된다 했더니 선생님이 그렇게 하는 것 아니라고 했다면서 짜증을 부린다.  아차. 그림을 그리라고 보냈는데, 그림을 지도당하고 왔구나.



이런 사교육뿐만 아니라 교육이 저지르는 가장 끔찍한 잘못은 글쓰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된다. 문학 작품을 읽고 어떤 단어가 은유법을 사용해서 뭘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외우라 시킨다. 학교에서 문학 수업은 아이들에게 문학 작품을 읽게 한 다음 곧바로 문학에 '대해서'만 말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한 편의 시를 놓고서 수업은 살아 숨 쉬는 시의 생명력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은유법과 상징법을 찾아 낱낱이 해부해 버리고 만다. 학교는 우리에게 작가의 의도를 '외워서' 알아야 한다고 다그친다. 그렇게 타고난 시인이자 소설가인 아이들에게서 문학을 빼앗아버린다.



그런 잘못을 성인이 되어서도 반복한다. 본인의 목소리로 글을 써보겠다 다짐하면서도 또다시 그런 방법을 찾아 헤맨다. 작법이 어떻고, 글의 길이가 어떻고, 글의 시작은 어때야 한다는 베스트셀러의 공식을 찾아 헤맨다. 그렇게 또다시 지도의 늪에 빠져들고 만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지만 글쓰기 역시 비법이란 없다. 글쓰기는 아웃풋이다. 사람마다 살아온 인생이 다 다르다. 여러 인생의 조각들이 차곡차곡 내 몸과 마음에 쌓여 있다. 우리는 그 안에서 특정한 경험들만을 수집하기도 하고, 때로는 버린 것들을 섞어서 새로운 경험으로 삼기도 한다. 우리가 버린 달걀 껍데기, 시금치 아파리, 원두커피 찌꺼기 그리고 낡은 마음의 힘줄들이 삭아 뜨거운 열량을 가진 비옥한 토양으로 변한다. 이 비옥한 토양이 우리의 시와 이야기를 꽃피워주는 자원이 된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저자 나탈리 골드버그의 말이다.



이런 토양은 사람들마다 다르다. 그 토양이 비옥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도 사람들마다 따르다. 그리고 그 토양을 고무래로 파내어 자꾸 뒤집어 마음을 들춰내는 것도 남이 아닌 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천만 원짜리 글쓰기 수업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절대 그 누구도 나의 그런 과정을 일깨워주지는 못한다.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게 되면 조급증에 시달리지도, 쓸데없는 욕심에도 빠지지 않게 된다. 나는 그저 계속해서 비료가 될만한 자료를 수집하고, 발효시키고 비옥하게 만드는데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토하듯이 글쓰기가 나온다. 이런 글이 바로 내가 쓸 수 있는,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살을 빼고 싶은가? 운동을 하라.


부자가 되고 싶은가? 투자를 하라.


글을 잘 쓰고 싶은가? 글을 써라.



글을 잘 쓰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해서 글을 쓰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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