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에 한 번은 수강생으로, 한 번은 스텝으로 참여했다. 수강생의 입장에서는 글쓰기의 매력을 느꼈다면 스텝의 입장에서는 글쓰기의 본질에 대해 사유하고 나누는 시간이었다. 글쓰기의 본질이란 무얼까.
글쓰기란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차이를 “발명”해내며 그것을 세상과 다시 “연결”하는 작업이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인생을 2번 산다는 생각을 한다. 남들처럼 한 번을 살고, 글쓰기를 통해 사유하면서 세상을 다시 뜯어보고 맛보고 즐기며 다시 산다.
현대사회는 소외의 사회다. 사회의 각 영역에서 소외를 말하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 역사상 어느 시대보다 풍요롭고, 어느 시대보다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은 어느 시대보다 많다. 무엇이 문제인 걸까.
인간이라는 한자를 보자. 인간(人間)은 사람 인(人)에 사이 간(間)을 쓰고 있다. 사이에 있다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사람은 땅을 딛고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땅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다. 우리가 생활하는, 흡수하는 모든 것이다. 하늘은 무한하고 간접적이다. 무엇이든 가능하고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다. 하늘을 향하지 않고 땅만 디디고 있어도 안되며, 땅을 디디지 않고 하늘만 향해도 사람은 살 수 없다. 땅을 제대로 딛고 하늘을 향해야 바른 삶을 살 수 있다. 그러기에 한자 자체도 천지 “사이” 존재하는 뜻을 담은 것이리라.
고미숙 작가는 그의 저서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천지의 운행을 주시하는 것이 ‘읽기’라면 그 사이에서 삶의 비전을 여는 것이 곧 ‘쓰기’다. 물론 그 둘은 나뉠 수 없다. 하늘을 보는 것과 땅을 살피는 것이 동시적이어야 하듯, 읽기와 쓰기는 동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요컨대, 산다는 것은 천지인의 삼중주를 ‘아는’ 것이고, 그 앎의 구체적 행위는 바로 읽기와 쓰기다.”
어느 시대보다 읽을거리가 넘쳐흐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인들은 꼭 책을 통하지 않더라도 쉴 새 없이 읽고 보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남는 것이 없다. 읽은 내용은 부유물이 되어 사라진다. 음식을 먹으면 반드시 소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 몸의 여러 장기가 유기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정성껏 음식을 소화시켜 필요한 상태로 재흡수시킨다. 많이 먹으면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소화에 많은 에너지를 쓰느라 뇌에는 에너지가 가지 않아서 그렇다. 지식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읽어도 소화를 시키지 않으면 필요한 곳에서 에너지원으로 쓸 수가 없다. 그 소화를 하는 과정이 바로 “쓰기”이다. 지식을 얻고 그 지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의문에 대해 사유하고 그 사유에 대해 나누고 “쓰는” 작업이 일어나야 비로소 그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할 수 있다. 현대인들이 많이 읽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비슷한 사고를 반복하며 결국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는 것은 바로 “읽고 쓰기”의 세트에서 이 “쓰기”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 김애리 작가의 책 제목이다. 글쓰기는 더 이상 지식인이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유물이 아니다. 인간이 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함에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다. 글쓰기의 매력을, 그 필요성을 약간이라도 먼저 느낀 사람으로서 이 글쓰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영위될 수 있기를 전파해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마저 느낀다.
유대인들은 아이들이 유대교의 율법서인 [토라]의 맨 첫 자를 배우면 꿀이나 단 음식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공부를 하면 단 음식을 먹게 될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를 만드는 학습 유도 방법이다. 아무리 공부가 필요해도, 글쓰기가 훌륭한 것이어도 즐겁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인간이란 즐겁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즐겁지 않은 일에 에너지를 쏟는 것은 시선을 빼앗길 곳이 너무 많은 현실에서 쉽지 않다. 그래서 글쓰기도 즐거워야 한다. 즐거우려면 ‘벗’이 있어야 한다. 혼자는 가기 어려워도 함께 하면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같이 글 쓰는 공동체가 중요하다. 이번 글쓰기 모임을 함께하며 많이 성장했고 즐거웠다. 그래서 드리고 싶었다.
토라 끝의 달콤한 사탕 맛처럼 글쓰기의 달콤함을, 다양한 영역의 교류를 통해 시선의 확장을 말이다. 아쉬움이 곳곳에 남지만 그래도 글사세에 합류했던 분들이 글쓰기의 단맛을 조금이라도 느끼셨기를 바라며, (동시에 갈증도) 이곳에서 만난 벗들과 오래 조우하며 “쓰는 삶”을 사셨으면 좋겠다. 그 여정에 나도 계속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