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가 글을 왜 쓰세요?”
한 글쓰기 모임에 중견 작가님을 도와 스텝으로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나의 직업이 치과의사라 했더니 다들 의아한 반응이었다. 최근 자기 계발 열풍이 불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글쓰기를 하고 책을 내는 것이 유행이다. 세계 유수의 대학들과 아마존, 구글 등 선호하는 회사에서 글쓰기 능력을 중요시한다고 알려지자 아이들의 교육에도 글쓰기가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의사들의 직군에는 여전히 논문을 제외하고는 글쓰기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중에 이런 나의 일탈은 신기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글쓰기의 시작
일주일의 서너 번은 각종 약속과 행사 등으로 다이어리가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약속이 비면 이상했고, 또 그렇게 채워 넣고 무엇 위해 달리는지 모른 채 바쁘게 사는 나날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전대미문의 바이러스가 지구를 덮쳤고, 우리는 모두 갇혀버렸다. 모든 약속이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할 일도 갈 곳도 없어졌다. 늘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막상 시간이 나자 뭘 해야 할지 붕 뜬 느낌이었다. 조금 우울해졌다. 불현듯 글이나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주어진 주제를 가지고 시간 내에 써내는 모임을 3달정도 했다. 거기서도 의아한 시선을 받았지만, 새벽에 깨서 머리를 싸매고 글을 써내고 나면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성취감이 느껴졌다. 재미가 있었다. 잘한다는 소리도 들으니 더 쓰고 싶어졌다. 아마도 “의사치고” 잘한다는 것이었으리라. 그래도 좋았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쓰기 시작했다.
글을 통해 나를 보다.
“표현하지 않는 감정은 절대 죽지 않는다. 산채로 묻혀서 나중에 더 추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나는 감정표현에 매우 서툰 편이다.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고 소심하다 보니 맘 상하는 일이 있어도 그 앞에서는 티를 못 내고 나중에 끙끙 앓는 스타일이다. 그러다 그것이 쌓여 상대가 생각하기엔 말도 안 되는 포인트에서 폭발하는 식이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감정을 펼치는 방법을 배웠다. 감정이 올라오면 그것을 외면하지도, 누르지도 않았다. 어떤 감정인지, 무엇 때문인지 오롯하게 내 감정을 펼쳐보는 시간을 가졌다. 감정을 글로 쓰다 보면 어느새 그 감정은 가라앉기도 하고, 정리가 되기도 했다. 글은 내 안의 엉켜있는 실타래를 푸는데 훌륭한 도구였다.
엉켜있던 감정의 실타래를 풀고 나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보였다. 늘 나에게 사람들이 물어보는 것,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글로 풀어내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으로 도전을 시작했다.
스트라이크를 던지다. 책 출간.
사람이 가장 성장할 때는 모르는 분야에서 낯선 이가 될 때이다. 책을 쓰면서 난 완전한 초보자가 되었다. 출판사와의 미팅, 초고 작성, 그 이후 편집, 책 출판 후 홍보. 모든 과정이 낯설고 서툴렀다. 때로는 나의 언어를 세상에 내놓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자다 일어나서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동료 의사들이 책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가장 두렵기도 했다. 왜 사서 이런 고생을 하지라는 생각에 도중에 몇 번 그만두고 싶기도 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한 어린 투수가 홈런을 맞을까 봐 불안해서 공을 가운데로 넣지를 못한다. 이에 볼만 반복한다. 이때 감독이 지시한다. “스트라이크로 상대를 삼진 시키든지 아니면 홈런을 맞아라” 결국 이 투수는 홈런을 맞는다. 그런데 그가 홈런을 맞는 모습을 보자 다들 미소를 보낸다. 그가 홈런을 맞았다는 의미는 이제 그가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썼고 홈런까지는 아니지만 안타 정도를 맞았다. 삼진을 잡지는 못했다. 하지만 스트라이크를 넣어봤기 때문에 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모두가 같은 모습으로 삶을 살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주인공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구경꾼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그 차이는 삶에서 도전하는 것의 차이가 아닐까.
나는 글 쓰는 치과의사입니다.
“자신의 삶과 일에서 얻은 지식과 정보를 나누는 일에 열심이다.” 내 책 저자 소개란에 들어있는 문구이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글은 나를 보게 해 준다. 나의 감정, 생각을 글로 풀어내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는 무얼 잘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글은 세상을 보게 해 준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인생을 두 번 산다는 생각을 한다. 한 번은 남들처럼 살고, 다른 한 번은 글을 쓰면서 다시 산다.
또 글은 나를 세상으로 연결시키는 통로이다. 알고 있는 일, 알고 싶은 일, 알아야 하는 일을 글로 나누며 세상을 향해 말을 건넨다. 그렇게 글을 쓰며 성장한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지닌 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각이란 당신 자신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나아가 보다 다정한 동반자가 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당신이 좋아하고 기꺼이 응원하고 싶은 사람이 마치 당신 자신인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자각”을 “글쓰기”로 바꾸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글쓰기란 자신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나아가 보다 다정한 동반자가 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고 기꺼이 응원하고 싶은 사람이 마치 나 자신인 것처럼 말이다.”
나는 글 쓰는 치과의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