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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묘미

우치다 다쓰루의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지금 일하고 있는 병원은 외국인 환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특히 아랍 쪽 국가가 치과치료를 받으러 많이 온다. 이들 국가에서는 자국민에게 치료비를 대주는 경우가 많아 병원 입장에서는 수익을 올릴 수 있어서 좋고, 환자 입장에서는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으니 서로의 니즈가 맞는 편이다.



각 언어별로 통역사가 있지만 유독 아랍국가 나라 사람들은 통역을 거치지 않고 직접 의사와 대면해서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 어쩔 수 없이 프리토킹 실력이 향상되고 있다. 그런데 영어로 치과 용어를 설명하다 보면, 언어의 미묘한 차이를 느끼게 된다.



한국어로 표현하면 정확히 그 의미가 전달되는데 영어로는 딱히 맞는 표현을 찾기 어렵다거나 반대로 한국어로 표현할 때는 조금 밋밋했는데 영어로 표현할 때 딱 맞는 것 같은 경우다.




치과에서 어른들이 증상을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이 있다. 바로 “우리하다”이다. 원래는 경상도 지역의 방언이었는데, 많이 쓰다 보니 표준어로 등재된 표현이다. 국어사전에 나온 뜻은 “신체의 일부가 몹시 아리고 욱신거린다.”로 되어 있다. 아리고 욱신거린다와 비슷하긴 한데 “우리하다”는 그보다는 좀 더 둔하고 넓은 느낌이다.



이런 “우리하다”를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영어에서 통증을 나타내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ache”가 사용되지만 통증의 양상에 따라 sore, prickle, sting, throb, tingle 등 여러 표현이 사용된다. 통증은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날카로운 느낌의 예통 sharp pain과 둔한 느낌의 둔통 dull pain으로 나뉜다.



통증의 표현을 보면, 영어 표현에서는 dull pain을 지칭하는 용어보다 sharp pain을 지칭하는 것이 더 많다. sore(화끈거리다), prickle(찌르다), sting(따끔거리다)에 더해 심하면 cut, broke 등의 표현을 쓰기도 한다. 보다 통증을 표현하는 방법이 직설적이다. Dull pain을 표현하는 것으로는 throb 정도인데, 이는 맥박이 느껴지는 진동을 표현하는 단어에서 유래되어 편두통 같은 통증에 주로 사용하는 표현이다. Tingle은 간질간질하면서 감각이 멀어지는 느낌, 우리말로 굳이 표현하자면 얼얼하다 와 상응할 것 같은데, 역시 딱 떨어지지는 않는다. 어떤 단어를 가져다 붙여 보아도 우리말의 “우리하다”를 대변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치과에서 이를 뽑을 때의 표현이다. 우리는 치아를 뽑는다거나 발치한다, 또는 발거한다. 이 정도의 표현을 사용한다. 발치에 대응하는 영어 표현은 extraction이지만, 이 단어는 주로 문서에서 사용하고 실제로 이를 뽑는다는 표현은 “pop out”이다. 그런데 나는 참 이 단어가 너무 찰떡같다고 생각한다. 정말 치아를 뽑을 때는 “뾱”하듯이 팝 아웃하는 느낌이 나는데 “뽑는다”나 “발치”는 그 느낌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pop out”은 이를 뽑다 이외에도 팝콘이 튀겨지는 것, 야구에서 플라이 아웃을 뜻할 때 사용되고 있다. 사용되는 상황을 머리로 그려보면, 이 단어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직설적이고 명확한 표현이다.




일본의 대표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는 그의 저서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언어는 도구가 아닙니다.
우리가 언어를 사용한다기보다는 우리 자신이 언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언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언어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언어는 우리의 피이자 살이고, 뼈이자 피부입니다. 얼마나 양질의 언어인가, 어떻게 생긴 언어인가, 어떤 특성을 지닌 언어인가에 따라 우리 자신의 사고방식, 감각, 삶의 방식이 송두리째 영향을 받습니다.

영어를 솜씨 좋게 구사하게 되었다는 것은 ‘영어를 모어로 삼는 종족의 사고방식, 감각’을 내 몸에 새기고 각인시켰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중대한 일인지 사람들은 실로 자각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






그러면서 “a”와 “the”의 사용법을 예시로 들고 있다. 정말 영어를 배울 때 지독히도 헷갈리던 관사였는데(물론 지금도 잘 모르겠다.) 우치다 다쓰루는 이렇게 설명한다.





“좀 두꺼운 사전에서 a를 찾으면 20개쯤 풀이가 나옵니다. the는 더 많지요. a나 the 같은 관사에는 언어공동체의 세계관이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관사를 알면 영어권 사람들의 세계관을 알 수 있습니다.

 a는 형상, 이데아, 추상 개념입니다. the는 질료(아마도 재료 느낌?), 감각 세계에 실존하는 개체입니다. 세계를 형상과 질료로 나눈 것은 플라톤 이래 유럽의 우주관입니다.

집이 한 채 있을 때 그들은 집의 구조를 형상, 나무나 돌 같은 재료를 질료라고 나눕니다. 일본인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지요. 형상은 a를, 질료는 the를 각각 관사로 요구합니다. 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사물을 볼 때 이것이 형상이나 질료냐 하는 식으로 구별하지 않으니깐요. “





우리가 왜 이리도 a와 the의 사용을 어려워하는지, 결국은 그래서 외울 수밖에 없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단순하게 명사 앞에 관사가 아니라, a와 the에는 알파벳을 모어로 사용하는 유럽인들의 우주관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런 우주관이 없는 동양은 이것을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다.




다시 치아 용어로 돌아온다. Dull pain보다 sharp pain에 대한 표현이 더 다양한 것도, 구체적인 상황을 그려내는 표현이 발달한 것도 서양인들의 직설적인 세계관이 더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한 사람을 아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같이 오는 일이라 했다. 어쩌면 한 언어를 아는 것 역시 그 민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 더 나아가 그들의 우주관까지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언어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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