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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엄마

by 김모음





자식을 키우는 엄마로서 다른 아이와 또 그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일지라도 우리 모두 자식 앞에선 객관적 판단이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아들을 키우는 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의 아들은 한눈에 봐도 똘똘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엄마의 꾸준한 교육의 결과로 아직 7살이었지만 한글은 물론이거니와 덧셈과 뺄셈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또한 타고난 성격인지 자신의 주장이 강하고 좋고 싫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야무지게 말로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아이는 학원에서 또래 친구들과 예비초등 과정 수업을 받았고, 역시나 여타의 아이들보다 생각면에서나 글로 표현하는 면에서 남달랐다고 했다. 하지만 이 아이와 함께하는 수업 내내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너는 이것도 모르냐? 이건 당연히 이거잖아.”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는 법에 미숙한 어린아이라서 나올 수 있는 말들이 매 수업시간에 나왔고 이 말을 들은 친구들은 속이 상해서 더 이상 수업을 즐길 수가 없었다. 자신을 무시하는 말을 들은 친구들 중 우는 경우도 있었다.


“제가, 제가 할래요!! 선생님, 저요!!”


아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기에, 아이는 다른 친구에게 발언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혹여나 다른 친구에게 기회가 가면 자신이 말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수업을 방해하며 거부했다.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면서 같이 수업을 듣던 3명의 친구 중 2명이 학원을 관뒀고 남은 1명의 친구마저도 아이와 같이 수업하는 걸 싫어한다고 했다. 담당 선생님은 수업의 고충을 토로했고 이 이야기가 아이의 부모에게 전해졌다. 아이의 부모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평소 아이의 부모는 이성적 사고로 무장된 사람이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사리분별이 확실했고 정확한 판단과 해결책을 적재적소에 내놓는 사람이었다. 한데, 자식의 일에는 눈물까지 보이며 속상해했다. “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가르치기 싫어서 하는 말이 아니냐.”며 하소연했다. 모든 아이가 다 똑같이 착할 수 없고, 아직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잘 타이르면서 이끌어나가야 하는 게 선생님의 할 일이 아니냐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는 좋게 타이르면 알아들을 수 있는 아이라고 설명했다.


부모의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가르치는 선생님 입장에서 봤을 때 매 수업이 전쟁터 같았을 것이고,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은 속상한 일만 있는 수업이 재미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고스란히 친구들 부모의 귀에도 전해졌을 것이다. 그 부모의 입장에선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무시받고, 말하고 싶어도 말을 못 하게 해서 학원에 가기 싫어하는데 어떻게 계속 학원에 보낼 수 있을까.


사실 나는 그 아이가 떼를 쓰고 어른의 말을 듣지 않았을 때를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어린 나이에 그 똑똑함을 감당하기가 어려운 탓인지 말과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판단이 서는 순간 목소리가 커지면서 막무가내로 떼를 쓰기 일쑤였고, 분이 풀리지 않으면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던졌다. 그러면서 있어야 할 공간에서 무작정 나가버리려고 시도했다. 또 아직 어리기 때문에 뭘 모르고 하는 소리가 많기도 했지만 상대방을 당황하게 하고 상처를 줄 수 있을 정도였다. 보호자가 없을 땐 이런 과도한 행동이 좀 더 심했고, 보호자가 아닌 ‘그냥’ 어른은 그 아이의 과잉 행동을 저지하지 못했다. 물론 보호자도 자신의 아이의 성향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평소 사소한 잘못을 한 경우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고 따끔하게 훈육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보호자도 아이의 강한 성격을 인지하고 있기에 예전엔 어린이집에서도 아이의 성격 때문에 상담을 몇 번 한 적이 있었고 다른 학원에서도 한두 번 얘기가 나온 적 있지만 최근엔 그런 적이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리고 자신이 꾸준히 훈육을 하고 있고 단속을 잘하고 있다고 했다. 결국 담당 선생님의 고충을 선생님의 인내심과 자질의 문제로 결론 지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원장은 이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걱정 어린 말을 풀어냈다.


“굉장히 철저하고 냉철한 사람인데 자식에 관해서는 객관적으로 보질 못하는 것 같아요. 아이가 길들여지기 힘든 타입이라는 걸 아직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네요.”

“자식 일에 객관적인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저도 그건 잘 안돼요. 그래서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도 곤란하고요.”

“시간문제겠죠. 언젠간 인정하는 날이 올 거예요. 근데 아직은 아닌 것 같네요.”


사실 이렇게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단체생활을 하다 보면 물러지는 경우가 많다. 유치원의 한 반 보다 초등학교 학급의 인원이 몇 배가 많은 상황에서 내가 모든 관심을 다 받기란 힘들다는 것을 아이도 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고 타인에 대한 배려도 배우고 나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문제이다.


많은 부모들이 내 눈에 이뻐 보이기만 한 자식의 안 좋은 점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객관화된’ 눈을 가지고 싶어한다 생각한다. 하지만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는 속담이 있듯이, 완벽할 수 없기에 결정적인 순간엔 아이를 감쌀 수밖에 없는 것이 부모이기도 하다. 역시 자식 문제는 참 어렵다. 결정적 순간엔 본능만 남을지라도 평소 내가 할 수 있는 한 눈을 크게 뜨고 아이의 좋고 나쁜 모든 면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인정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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