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릇이요? 캐파(capacity)를 말하시는 건가요?”
“좀 편협하게 구분하자면, 쉽게 말해 머리가 좋다 나쁘다로 얘기할 수도 있죠. 사실, 머리 좋은 아이들은 몇 번 알려주면 금방 늘어요. 흔한 경우는 아니죠. 평범한 아이들의 경우도 하다 보면 늘 수밖에 없어요. 매주 학원에 와서 글을 쓰는데 실력이 안 늘 수가 없죠. 그런데 그릇이 작은 아이들은 배운 걸 다 담을 수가 없는 거예요. 배우는 양은 점점 갈수록 늘어가는데 가지고 있는 그릇이 작으면 그걸 다 담는 데 한계가 있잖아요. 어쩔 수 없는 문제인 거 같아요. 태생적으로 그릇이 작은데 학원에서 그 그릇을 크게 만들어 줄 순 없잖아요. 타고난 문제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작은 그릇에 어떻게든 꽉꽉 눌러서라도 담아주는 것 밖엔 없어요. 그리고 우리가 열심히 해주려는 모습을 보이고 최선을 다하면 아무리 아이 실력이 느는 게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학부모가 컴플레인하진 않아요.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돼요. ”
요즘 대한민국은 태어날 때부터 수저도 정해져 있는데 그릇까지도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우울해졌다. 머리의 좋고 나쁨은 피나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배웠다. (물론 나는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극복하진 못했다.) 세상에 ‘노오력’으로 못할 것은 없다고 여러 자기 계발서에서도 광고하고 있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 겪는 현실은 가혹하다. 내가 봤을 땐 우리 집에 있는 2명의 초등학생도 소위 말하는 좋은 그릇을 가지진 않았다. 그들의 그릇도 이미 정해져 있고, 그 그릇의 크기를 정한 내가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슬퍼졌다. 미안해졌다. 죄인이 된 기분이다. 내 그릇이 컸다면 그들의 인생도 편했을 텐데 간장 종지만 한 그릇을 가진 엄마를 만나 피곤하고 고된 인생이 예상된다.
지금이라도 그릇을 다시 쭉쭉 늘어나는 고무로 만들 순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