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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이 작아요.(1)

by 김모음





학원생들 중엔 몇 달만 다니다가 그만두는 경우도 있지만 짧게는 2~3년, 길게는 7~8년까지 오래 다니는 학생들도 있다. 초등학교 6년을 거쳐 중학생이 된 아이들은 글쓰기 고수가 된다. 물론 그렇게 오래 다니는 아이들은 소수이고 원장의 말에 의하면 잘하는 아이들만 남게 되다 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부모와 아이의 끈질긴 인내심으로 만들어낸 걸작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2년, 3년을 꾸준히 다니는 아이들 중에서도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는 아이들이 간혹 있기 마련이다. 물론 글쓰기란 달달 외워서 시험 보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글을 쓰는 능력이라는 게 생각만큼 팍팍 느는 게 아니다. 많은 책을 읽고 경험도 쌓고 여기저기서 잡다한 상식도 주워 들어야 그 모든 것이 합쳐져서 글이 써지는데, 그 성장속도란 체감상 나무늘보가 손가락 움직이는 속도보다 느리다. 눈에 띄게 실력이 느는 아이들은 평소에 책을 많이 읽어서 내공이 있거나 언어적 감각이 있는 경우이며 흔하지 않다. 3년째 학원을 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3줄만 쓰고 그 뒤에는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는 아이, 쓸 때마다 주제와 무관한 이야기로 종이를 가득 메우는 아이, 6년을 다녔지만 맞춤법을 계속 틀리고 조사 ‘을’과 ‘를’을 구분하여 쓰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이런 아이들과 수업을 하다 보면 내 탓인 거 같아 죄책감이 든다. 내가 좀 더 능력 있었다면 아이가 이렇게 헤매지 않을 텐데, 내가 자질이 부족해서 아이가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아서 이 일을 계속해도 되는 건지 현타가 온다.


“원장님, 왜 제자리 걸음 하는 것 같은 느낌이죠? 나아지는 게 보여야 하는데 오히려 퇴행하는 건 아닌가란 생각도 들어요. 분명 아이는 성실하게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말이죠.”

“하아.... 그렇죠, 그런 경우가 제일 답답하죠. 저도 그런 아이들 겪어봐서 알아요. 근데, 나중에 보면 향상되어 있어요. 평소에 눈에 띄게 잘하는 게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처음 학원 왔을 때 글이랑 한참 후에 쓴 글 보면 확실히 변화는 보여요.”

“그런데 분명 열심히 책도 읽어오고 글도 잘 쓰려고 하는 게 눈에 보이는데 왜 쉽게 늘지 않을까요? 성실하게 준비하는데 그에 비해 결과물이 잘 안 나오는 경우를 보면 가르치는 저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심란해요. 그리고 학부모 입장에서도 오래 보냈는데 늘지 않는 것 같아 보이면 당연히 문제 삼지 않겠어요? ”

“제 경험 상으로 봤을 때 결론을 내리자면 ‘그릇’의 차이인 것 같아요.”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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