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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을 너무 많이 틀려요.

by 김모음





어느 날 한 학부모가 학원비 결제를 하기 위해 학원에 찾아왔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가 아니라서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고 결제만 하려고 했는데


“혹시 원장님 계신가요? 상담을 좀 하고 싶은데.”

“원장님 지금 수업하고 계셔서 지금 상담은 좀 힘들겠는데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신가요?”


그때 이 학부모의 아이 담당 선생님이 학부모를 알아보고는 “00 어머님이세요?” 하더니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휴, 제가 오늘 마침 시간이 나서 지금 학원들 쫙 돌면서 학원비 결제하고 있는데요. 하... 내가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싶어요. 내가 일을 하니까 학원을 보내고 있긴 한데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아... 어머님 너무 바쁘시죠. 일하시니까 아무래도 공부 봐줄 시간이 부족하죠.”

“아니, 근데 제가 첫째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맞춤법을 너무 심각하게 틀려서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둘째는 괜찮겠지 했는데 얘도 또 그러니까 진짜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어머님, 그래도 요즘 많이 연습하고 있어서 좋아지고 있는 중이에요.”

“근데 집에서 숙제도 안 하고 맨날 놀고만 있으니까, 내가 숙제 다 했냐라고 물어보면 맨날 다 했대. 그래서 학원에 물어보면 수업시간에 이해는 잘한다는 거야. 그런데 숙제해 오는 건 맨날 틀린대. 애가 수업 들을 땐 응~응~ 이러다가 집에 오면 깡그리 다 잊어 먹는다는 거야. 내가 진짜 답답해서. 나는 또 너무 바쁘니까 봐 줄수도 없고”

“그렇죠, 일하시면 바쁘시죠.”

“근데 우리 애가 하아.... 진짜 속상해서... 맞춤법이 너무 심각하게 틀리니까. 그것 때문에 애랑 실랑이하면, 암튼 공부 때문에 총체적으로 다 문제여서 애랑 싸우고 있으면 애 아빠가 지금 학원 다 끊어버리라고, 얘는 처음부터 다 뜯어고쳐야 한다고 막 그러고. 얘 삼촌이 수학학원 원장인데 얘 상태가 지금 학원을 다닐 상태가 아니라고. 학원 다 끊어버리라고 그러더라고. 자기가 봐주겠다고. 나도 봐줄 형편이 안되고, 너무 바쁘니까.”

“아이고.. 그러시구나.”

“암튼, 아 맞춤법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예요. 정말. 이 것 좀 빨리 어떻게 해결이 좀 됐으면 좋겠어요. 첫째 때도 이것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였는데 얘도 또 이러니 진짜 미치겠어, 진짜.”


그렇게 그 학부모는 한 바탕 하소연을 하곤 “하유, 진짜 너무 답답해.” 하며 빨리 가봐야 한다며 서둘러 나갔다. 나는 박 선생님에게 물었다.


“맞춤법이 얼마나 심각하길래 저렇게 걱정하시는 거예요?”

“음... 네, 좀 심각하긴 해요.”


선생님은 아이가 쓴 글을 보여주며 말했다.


“지금 6학년 되는데 이 정도면 어머님이 걱정할 만하세요.”


빽빽하게 쓴 글 중 첨삭해 준 부분이 눈에 띄었다. 사가, 밨기로, 그런대.

‘사과, 받기로, 그런데’가 맞는 글자였다. 나머지 글자도 보니 내용 파악이 어려울 정도로 맞춤법이 많이 틀렸다.


“6학년이라고요?”

“네, 근데 좀 많이 틀리죠? 학원 온 지 이제 한 달째인데 그래도 처음보단 나아지고 있어요.”


학부모님이 와서 하소연하고 갔단 소리를 들은 원장과 부원장은 아이의 상태부터 파악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학습결과물을 보고 이것저것 얘기하고선 글을 잘 쓰고 못 쓰고 가 지금 문제가 아니라 맞춤법에 중점을 둬야겠다고 판단하고 10칸 공책으로 맞춤법 틀린 것 따라 쓰기, 일주일에 한 번 오는 건 부족하니 두 번 학원에 와서 공부하기 등 여러 가지 대책을 세웠다.


사실 00 어머님은 학원 첫 방문 때부터 맞춤법이 고민이라고 했다. 상담은 원장과 부원장이 주로 했고, 실제 아이를 보는 사람은 다른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어머님의 불안을 온전히 체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머님의 긴 하소연에 모두가 이 아이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이다. 학부모의 폭풍 걱정에 담당 선생님과 원장, 부원장은 발등에 불 떨어진 듯 아이의 현 상태를 공유하고 어떻게 이끌고 나갈지 회의를 했다. 그리고 담당 선생님은 학습계획을 어머님께 말씀드리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며칠 째 전화가 안 돼요. 문자도 남겼는데 다시 전화 온 것도 없고요.”

당장이라도 맞춤법 정복을 위해 뭐라도 할 것 같았던 학부모는 삼일 째 연락이 되질 않았다. 아이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별 일 없이 등원했다.


“혹시 집에 무슨 일 있니? 어머님 많이 바쁘셔?”

“별일 없는데요.”


그 후 사흘 째 되던 날, 학부모와 연락이 닿았고 10칸 공책을 사용해 자주 틀리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쓰게 하고, 맞춤법 교재를 따로 마련하여 훈련시키겠다는 등의 학습계획을 알렸다.


맞춤법은 비단 아이들만의 숙제가 아니다. 어른들도 맞춤법은 항상 긴가민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나도 무심코 쓰다가 틀렸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는 것도 있고, 수업 중에 아이가 갑작스럽게 맞춤법을 물어보면 당황할 때도 있다. 하지만 글을 해석하기 힘들 정도로 맞춤법이 틀린다면 과연 교과서나 책은 읽고 해석할 수 있을까란 걱정이 된다. 이 아이를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수학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하니 아마 문제를 읽고 해석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그런데 부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한글을 배우고 졸업할 시기가 되는 6학년이 될 때까지 맞춤법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한동안 모르고 있다가 6학년이 되고 나서야 깨닫고 마음이 급해진 걸까?


며칠 후, 그 아이의 부모는 학원을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혀왔고 맞춤법 에피소드는 한바탕 소동으로 마무리되었다.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디선가 스파르타(?) 교육을 받으며 나아지고 있을지, 여전히 여러 학원을 전전하며 학원 유목민으로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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