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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급 만 원짜리입니다. (1)

by 김모음





월, 화, 수, 목 오후 2시~5시

경력무관

사무보조

시급 만원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당근마켓 앱을 깔았다. 친구가 나에게 괜찮을 것 같다며 추천해 준 논술 학원 시간제 알바였다.


“너 책 읽는 거 좋아하잖아. 시간도 괜찮고 일도 힘들 것 같지 않아 보여.”


남편의 사업실패가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나는 약간의 우울과 함께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삶을 살고 있었다. 세상과 담을 쌓고 살고 싶었지만 현실은 생활비가 필요했고 억지로 나를 밖으로 떠밀 수밖에 없었다. 지원서를 내고 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지원서 낸 사람인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어려운 일은 아니고요, 청소하고 아이들 수업할 때 보조해 주시거나 필요한 교재 복사하거나 프린트해주시는 거예요. 근데 저희가 원하는 점이 있다면 처음엔 보조하시다가 괜찮으면 아이들 가르칠 수도 있는 분이었으면 해서요. 음... 일단 면접 한 번 보시겠어요? 월요일 2시 괜찮으세요? 학원 위치는 아시나요?”


얼마만의 면접인가. 낯선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워 몇 년 간 두문불출하며 살아서인지 유난히 긴장되었다.


“어떻게 저희 학원에 오실 생각을 하신 거예요?”

“제가 책을 너무 좋아해서요. 사는 것도 좋아하고 읽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독서모임도 하고 있어요. 관련 일을 한 적은 없지만 책을 좋아해서 일도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지원했습니다.”

“저희가 주로 초등학생 대상으로 가르치는데 혹시 아이들 좋아하시나요?”

“아니요. 아이 안 좋아합니다.”

“네?”

“주위에 보면 아이들 좋아해서 지나가는 아이만 봐도 ‘어머~너무 귀엽다.’ 하면서 하트 뿅뿅 날리는 분들 계신데, 저는 그렇게 아이를 예뻐하고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를 싫어하지도 않고요. 지나가는 아이들 보면 별 생각 안 듭니다. 그냥 성인보다 작은 한 인간으로 봐요. 제가 책을 보고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해서 그 대상이 아이들 이어도 책 얘기 하는 게 재밌을 것 같아서 지원했습니다. ”

“어머, 그러시구나.”


‘아, 씨...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건가.’ 하면서도 속의 말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아이들 다니는 학원인데 아이를 안 좋아한다는 말을 한다는 건 고용되고 싶지 않다는 말이랑 똑같다. 면접을 다 보고나선 ‘면접 보느라 기만 빨렸네. 다른 데를 알아봐야 하나.’ 싶었다.


다음 날 원장에게서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냐고 연락이 왔다. 좋기도 했지만 의아했다. 학원에 다니고 한참 후에 원장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는데 몇몇 지원자 중에 나를 뽑은 이유가 ‘적극성’과 ‘솔직함’이라고 했다. 지원서를 내고 전화까지 한 적극성과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솔직하게 말한 점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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