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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서 Oct 25. 2022

상상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음

    우리는 어둠의 시대를 지나, 이제 막 포스트 코로나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했던 시간들을 넘어 드디어 빛을 볼 수 있을것만 같은데, 여전히 우리 앞은 캄캄하게만 느껴진다. 분명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바이러스는 확산세가 꺾이지 않고, 새로운 변이가 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 속속 들려온다. 게다가 그 미래를 명확히 알려주는 사람은 없고, 이 사람 저 사람모두 지레짐작으로 서로 다른 전망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무책임하게 미래에 대해 말하며 사람들의 불안감을 키우고만 있다

    사실 미래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힘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생텍쥐베리는 자신의 소설 『야간비행』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인생에 해결책이란 없어. 앞으로 나아가는 힘뿐. 그 힘을 만들어내면 해결책은 뒤따라온다네.”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없지만 미래를 만들어가는 힘은 우리에게 있다.

    미래를 만들어가는 그 힘이 바로 상상력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상상력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켜왔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정치에 참여하는 세상’을 꿈꿨던 근대의 사람들의 허무맹랑한 상상은 21세기에 민주주의라는 제도로 정착되며 세계의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냈고, ‘시간과 상관없이 언제나 밝은 빛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의 공상은 과학기술을 통해 전구라는 사물로 재탄생하여 일상생활 속에 스며들었다.     

    이제는 그 상상력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위기 속의 인간은 불안감 속에서 더 소극적으로 행동하고 과거의 경험에 의존하려고 한다. 그것이 위험을 최소화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수많은 재난과 위기 속에서 깨달았다. 이토록 복잡한 불확실성의 시대에서는 과거의 경험에 의존하는 것보다 어쩌면 상상력이 더욱 정확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완전히 새로운 국면의 시간이 다가오는 과정에서도 과거의 환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채 도태될 수밖에 없다. 어설픈 지레짐작으로 제자리를 맴돌지 말고 계속되는 상상력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 아무리 터무니없어 보이는 미래도 상상하면 현실이 된다.

    예측 불가능한 앞으로의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자신만의 상상력을 통해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순간, 우리 생각의 빈 공간은 다른 이의 생각으로 채워질 뿐이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생각, 권력이 사회에게 주입시키기를 원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지배집단의 언어와 사고, 누군가가 주입한 생각이 아닌 우리 자신만의 주체적인 상상력으로 새로운 미래를 꿈꿔야 한다.


    이야기는 위기의 상황을 이겨내고 새로운 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스티븐 핑커를 비롯한 여러 진화 이론가들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통해 사회생활의 주요 기술을 연습한다고 이야기한다. 미국의 작가 재닛 버러웨이는 "문학은 공짜로 감정을 선사한다. 일상에서는 감정에 대가가 따르지만 문학에서는 그런 위험 없이 이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스토리텔링 애니멀』을 쓴 조너선 갓셜은 "이야기를 자연이 우리를 설계한 이유는 연습의 유익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며, "픽션은 인간의 문제를 시뮬레이션 하는 데 특화된 아주 오래된 가상 현실 기술"이라고 말한다[1]. 인류의 풍부한 상상력과 픽션을 쌓아올려 만들어진 ‘SF의 우주’는 재난의 시대 이후를 준비하는 우리의 연습장이 되어줄 것이다.

    상상력으로 가득한 SF의 우주에서 우리는 앞으로의 길을 찾아야 한다. SF라는 안전한 우주에서 수없이 많은 시뮬레이션과 시행착오를 거쳐 알 수 없는 우리의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지금껏 인류가 축적해온 상상력으로 가득한 무기고와 같은 SF는 우리에게 미래를 예행연습 해볼 수 있는 수많은 무기들을 제공해줄 것이다.

    상상력과 함께라면 미래가 완전히 새로운 것만은 아니다. 우리의 모든 미래는 누군가의 머릿속 상상력으로부터 출발했고, 지금 이 시대를 지나는 우리의 미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도 알 수 없는 미래를 머릿속에서 그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상상력의 힘이고, 그 상상력의 힘을 극대화시켜주는 것이 바로 SF를 포함한 인류의 상상력 창고, 인간이 만들어 온 ‘이야기’의 능력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사상과 정서를 청중에게 '감염'시키는 것이야말로 예술가의 임무라고 믿었다. “감염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훌륭한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좋은 예술이 만들어내는 좋은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전파되어, 전염병이 퍼뜨렸던 불안을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유쾌한 상상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위기의 순간, 우리 곁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코로나 이후에도 우리에겐 수없이 많은 재난과 위기가 닥쳐올 것이다. 그 재난과 위기 속에서 이야기는 분명히 좋은 대피처가 되어 줄 것이다. 중세 시대, 페스트의 공포에서 도망친 젊은이들이 바깥 세상의 두려움을 잊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즐거워했던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처럼.

    어두운 재난의 시대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당신, 이야기의 세계로 대피하라. 이야기는 우리를 불안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영원히.


[1] 조너선 갓셜(노승영 역), 2014, 『스토리텔링 애니멀』, 민음사. pp8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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