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WHIPLASH (채찍질)
전쟁 영화나 액션, SF 장르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나는 영화 편식이 너무 심하다.
심지어 난 한번 본 영화를 다시 보는 일이 극히 드문데 위플래쉬는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엔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를 정하였다.
최고의 드러머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 앤드류와 최고의 음악가를 키우고 싶어 하는 플래처 교수 이 영화는 사제관계를 드라마틱하게 다루고 있다.
이 글을 읽기 전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먼저 영화를 보길 권한다.
그리고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명의 주인공 관점에서 음악을 바라보는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음악에 대한 접근방법을 내가 이해하는 데로 풀어봤다. 세계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한 제자와 그의 천재성을 끌어내기 위한 교수의 처절한 대립..
의외로 잘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이다. 그런데 무엇인가 어색하다.
죽이 잘 맞을 것 같은 조합이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었다.
플래처는 보통의 선생님이나 교육자가 할 수 없는 일들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극 중에 플래처는 찰리 파커의 사례를 들며 존스가 심벌을 집어던진 일을 비유한다. 의도가 어떠하였든 플래처는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천재적인 뮤지션을 발굴하여 자신이 원하는 완벽한 음악가로 만들려는 목표가 있다.
초반 플래처가 앤드류를 픽업하여 자신의 스튜디오 밴드로 불러왔을 때만 하더라도 그는 선배들과 합주를 할 실력조차도 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플래처는 미래의 앤드류를 상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만약 플래처 교수가 되어 인터뷰를 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려서부터 난 음악을 매우 사랑했고, 당연히 세계적인 뮤지션이 되는 것을 꿈꾸었다. 재능도 꽤 출중하였는데 중학교 때 음악 선생님께서는 항상 나의 연주 실력이 꽤 괜찮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렇게 나의 음악적 재능을 믿고 나는 음대에 진학을 하였지만, 그곳에서 더 지독하게 연습하는 연습 벌레들, 그리고 정말 하늘에서 내려준 것만 같은 타고난 재능의 천재들 사이에서 결국 깨닫게 된다. 연주자로서 난 천재도 아니었고, 그 어떤 세계적인 뮤지션들만큼 밤을 새워가며 연습하는 연습벌레도 아니었다. 뭐, 물론 나와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 사이에서도 세계적인 음악가는 나오지 못했지만 말이다. “
“결국 음악은 재능만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후회와 함께 어린 시절 나에게 그저 끝없이 칭찬만 해 주셨던 선생님이 기억난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분이었지만, 만약 그때 당시 나에게 더 냉정한 판단력과 질책을 해주었다면, 아마 지금의 나와는 매우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아는가 진짜로 세계적인 뮤지션이 되었을지도 모르지..”
“이후 나는 나의 또 다른 재능을 발견하였는데, 잘 들을 수 있는 귀와 예민한 음악적 감각 그리고 아주 강력한 추진력이었다. 바로 이런 나의 재능을 바탕으로 교육자로써 미국 최고의 음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물론 나의 진정한 꿈은 저런 코 묻은 애들이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뮤지션을 발굴해 내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학교에서 애들이나 가르치고 있지만, 분명 내 제자 중에 세계적인 뮤지션이 나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이상 플래처 교수와의 인터뷰였다.
영화에 나오는 플래처 교수의 이야기에서는 그의 사생활에 관한 이야기와 가족사 혹은 유년기에 대한 내용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구성된 스토리 구조에서 그의 어린 시절이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유추해본다. 뿐만 아니라 극 중의 나이에 비추어 보았을 때, 한 번쯤 나왔을 법한 그의 아내나 자식에 대한 이야기도 전혀 언급되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못했거나, 가족들과 관계가 결코 원만하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무척이나 예민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본인이 목표하는 바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이다. 때로는 그런 확신이 위험 수준을 넘어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하는데, 예전 제자였던 션 케이시의 죽음을 애도하며 음악을 듣는 장면이다. 제자였던 션 케이시의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은 션이 자살로 죽었음에도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학생들에게 말하면서 본인에 대한 타인의 생각을 인정하지 못한다. 혹은, 스스로의 행동을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 합리화시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플래처 교수 역시 음악을 향한 내면에서의 갈등을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인물이다.
앤드류의 입장에서의 관점
앤드류는 드럼에 미친 음대 학생이다. 명문 음대인 셰이퍼에서도 유독 다른 학생들보다 더 강하게 음악에 집착하는 모습은 영화 여러 부분에서 수차례 강조되고 있다.
플래처 교수에게 따귀까지 맞으며 심하게 질책을 당하고도 전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나, 연습실에 처박혀 피로 흥건히 젖은 붕대에 감긴 손을 얼음물에 넣어가며 연습하는 장면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집념으로 음악을 대하는지 알 수 있다. 아마도 어지간한 학생들은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교수에게 당하는 수모와 모욕감 때문에라도 당장에 밴드를 박차고 나왔을 것이다.
플래처가 합주를 감독할 때마다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가 손에 땀을 쥘 정도로 긴장감이 넘치는데, 사실 이런 장면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앤드류의 실력 그 자체보다는 점점 두 사람의 감정 대립과 기세 싸움으로 흘러가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연주 실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앤드류를 더 이상은 단순한 실력 문제로 압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앤드류 자신도 이런 사실을 알고 더더욱 강하게 밀어붙치지지만, 플래처 교수는 그런 앤드류를 인정하지 않고, 그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라이언 코넬리와 선배 드러머인 네이먼을 이용하여 공격한다. 앤드류는 이것을 매우 치사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교수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하며 분노가 쌓이기 시작한다.
결국 경연대회에서 이성을 잃은 채 플리처에게 주먹을 날림으로서 그와 플리처의 관계는 완전히 박살 나게 된다.
사실 여기서 플래처 교수는 교내에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앤드류 스스로와 경쟁하고 싸우게 하려는 욕심이 있었지만, 스스로 확신이 없던 앤드류는 오히려 플래처 교수에게 인정받는 것에만 극도로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결국 퇴학까지 당하며 앤드류를 무릎 꿇게 한 것은 플래처가 아닌 앤드류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플래서 교수는 교육자로써 적합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가 추구하는 음악 교육의 방식은 단 한 명의 세계적인 음악가를 탄생시키기 위해 그 주변의 모든 학생들을 다 소멸시켜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플래처 교수에게 앤드류는 소중한 진주와 같은 보석이었다기보다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비추는 원석들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앤드류가 더 이상 플래처에게 도전하지 않았거나, 다시 만날 일이 없었다면 그는 주저 없이 또 다른 후보감을 찾아 과감히 앤드류를 버렸을 것이다. 단지 앤드류에게 강한 자극과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많은 거짓말을 서슴없이 하는 장면에서도 교수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교육 방식이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자로는 매우 부적합할 수 있으며, 학교에서 다수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위치에서라면 반드시 학생의 인성까지도 고려한 교육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화에서 배경이 되는 셰이퍼 같은 명문 음대라고 하면 약간의 예외로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음악가를 배출하는 소수의 전문가 집단이라면 때론 그런 방법이 필요할 수는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플래처 교수를 교육자로써 보다는 음악가 또는 뮤지션으로 바라보고 싶다.
그의 뮤지션으로서의 자세는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그런 측면에서 앤드류는 아직까지 뮤지션이라고 보이게는 충분히 부족한 점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앤듀류의 뺨을 때리는 초반의 장면에서 플래처 교수의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지는데, 바로 본인의 플레이하는 연주가 어느 위치에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것은 플래처 교수가 이끄는 스튜디오 밴드에서 합주 때 불협화음을 내는 연주자를 솎아내는 장면에서도 다시 한번 강조되어 나온다. 여러 팀원들과 합주를 진행하는 프로 연주자에게 본인 스스로가 연주하는 소리에 대한 확신이 없는 연주자는 프로로써 자질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고, 이런 측면에서 플래처 교수 역시도 연주 실력 못지않게 뮤지션 스스로 프로의 마음가짐과 자질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그의 탁월한 음악적 통찰력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음악가를 꿈꾸는 학생에게 플래처 교수와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정말 행운이면서도 끔찍하게도 운이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큰 꿈을 가지고 달려 나가는 음악도에게 플래처와 같은 교수는 반드시 필요한 촉매제이기도 하다.
음악인으로서 능력치를 최대로 끌어올리고 정상의 자리에 선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역사에 남을만한 뮤지션이 된다는 건 단순히 악기의 연주 실력과 기교의 문제를 뛰어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위대한 뮤지션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그 사람 인생 전체가 음악에 파 묻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플래처 교수가 가진 생각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그는 자신을 통해 준비된 뮤지션이 탄생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자신의 인간적인 면이나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 따위는 모두 다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그 한 명의 뛰어난 뮤지션을 발굴하는 데에는 너무나도 많은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마지막 카네기홀에서 열리는 JVC 페스티벌에서 앤드류는 다시 한번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밀리는 듯 하지만, 결국 본인 스스로의 확신을 갖게 된 그가 플래처 교수를 이끌기 시작한다. 결국 플래처는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짓는다. 그것이 바로 플래처가 원했던 결과였던 것이다.
소극적인 성격의 앤드류와 괴팍한 성격의 플래처 교수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결코 함께할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였지만, 음악이라는 최고의 인생 목표가 이 두 사람을 연결해 주었다. 방법만 달랐을 뿐이지 결국 앤드류와 플래처 이 두 사람은 그저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던 서로 다른 음악인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