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를 버리는 자와 줍는 자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많은 나라들이 있다. 해외여행이라는 것이 흔하지도 않고, 우리나라가 못살던 시절에는 비행기를 타는 것 자체가 신기한 시절이 있었다. 물론 소위 잘 나가는 나라들 서유럽이나 미국에 대한 동경심 또한 대단했었는데, 이제 해외여행은 지방으로 여행 가는 것만큼이나 일반적인 것이 되었고 우리가 선진국이라는 의식도 많이 강해진 것 같다.
출근길 지하철
오늘 지하철에서 참 재밌는 일을 겪었는데, 그 일을 계기로 글을 써보려 한다.
어떤 여자분이 종이컵에 김밥을 담아 아침식사를 드시며 지하철에 탑승하였다. 사람이 많지 않은 구간에서 탑승하였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타게 되면서 거의 가득 찬 열차에서 그녀와 나는 지하철 자동문을 가운데 두고 서있게 되었다.
그런데, 김밥을 다 먹은 그녀는 지하철 문 옆 그리고 객석 틈 사이 바닥에 살며시 종이컵을 내려놓는다.
잠시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녀가 아직 내리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그것을 버리는 것인지 아니면 잠시 내려놓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순간 내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설마 저걸 쓰레기로 지하철에 그냥 버리는 것인가? 내가 가서 한마디 해줄까..?, 아니야 아니야 분명 하차하면서 다시 주어서 가겠지..'
무려 10 정거장이 넘는 구간 동안 나는 그녀를 지켜보았다. 점점 더 내가 하차하는 역이 다가오기 시작하고 그녀는 아직까지도 지하철에서 내리지 않았다. 결국 내가 먼저 내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정말 많은 고민들이 머릿속에 스쳤지만, 결국 나는 묵묵히 내리면서 직접 종이컵을 직접 버려주기로 결정했다. '
그런데, 내가 그 종이컵을 주어서 차에서 내리려 하자 그녀가 덥석 나를 잡으며 이야기했다.
"그거 제가 버릴 거예요.. "
역시,
내가 잠시 오해를 했었나 보다.
"네"
나는 짤막하게 대답한 후에 종이컵을 그녀에게 넘기고 출근했다.
만약 거기서 내가 어줍지 않은 조언 따위로 그에게 가르치려 했다면, 그녀와 나 서로에게 더 힘든 하루가 되었을 것이다.
뉴욕 이야기
내가 잠시 뉴욕에 머물 때 그곳에 살던 지인으로부터 들을 이야기이다.
나는 뉴욕에 사는 것이 부럽다는 식의 말을 했더니, 그분이 하는 말이 "ㅎㅎㅎ 야 후배야, 여긴 말이지 출근길에 멀쩡하게 생긴 숙녀분이 택시 타면서 손에 든 커피를 그대로 길바닥에 던지고, 그렇게 휙 가버려.. 여기가 좋긴 뭐가 좋냐..ㅎㅎㅎ"
그리고 뉴욕에서는 그런 일이 흔하다는 것이다.
뭐, 뉴욕의 지하철을 경험하신 분이 있다면, 철로에 넘치는 쓰레기만 봐도 이게 선전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도시가 맞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것이 결코 길이 깨끗하거나 단지, 신호를 잘 지키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런 것들을 보기 시작한 이후였다.
그럼 선진국의 기준은 무엇일까?
건물이 화려하고 고급차들이 질주하고 심지어 나라가 매우 부유해서 거의 모든 복지와 대학교육까지도 무료에 가까운 아랍에미레이트를 선진국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방금 언급한 지저분하고, 정신없고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뉴욕은 선진국의 도시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도시에 속한다. (아니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적어도 눈에 보이는 것들이 선진국의 기준은 아닌 것 같다.
여행자의 대화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느끼는 재밌는 현상이 있다.
어떤 나라의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참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그리고 지나고 나서 드는 생각이지만, 얼핏 반박하거나 내 생각에 대한 지적을 해 줄 수도 있었을 법한 이야기였음에도 그 당시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잘 들어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면, 어떤 나라에서는 그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의견 대립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그런 내용이 감정적인 대립으로 악화되거나, 그럴 기미가 보인다면, 내가 말을 아끼고 더 이상 그 이슈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물론 사람을 국적으로만 단정 짓거나 분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 같은 문화권에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기에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에 바탕한 것이라 생각해주시기 바란다.
결국 이런 기준에서 선진국의 시민의식은 상대방과의 다름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옳고 그름으로 단정 짓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본인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자세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을 우리는 선진국이라 부른다. 동시에 개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인생의 가치관을 실현하며 살아가되, 나의 주장을 부르짖으며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또한, 이런 의미에서 개인주의란 본인의 인생관과 철학을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고, 내 안에서 지켜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오래전 쿠바를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게스트 하우스 응접실에 모여 소소한 대화를 나눌 때가 생각난다. 그곳은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다. 쿠바를 여행하기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사람에 의존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며 상대방에게 경청하려고 노력하였고, 설령 상대방이 조금 잘못된 의견을 제시했더라도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원한 맥주와 통쾌한 웃음으로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냈다.
존중
가끔 인터넷 댓글창이나 뉴스에 보면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열띤 논쟁을 펴는 모습들을 발견한다. 때론 인신공격이 난무하고, 각종 객관적인 자료들을 모아서 상대방에게 공격을 퍼붓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상대방이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할 때 의기양양한 승리의 미소를 짓는 사람들도 보인다. 법과 규율로는 이겼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단지 최소한의 규칙일 뿐이지 전부가 아니다.
또한 더 이상 건물이 화려하고 GDP가 높다고 선진국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제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유럽의 웬만한 국가의 개인소득 수준을 초월하고 있으며, 교육 수준도 선진국 평균을 넘어서고 있다.
도로를 달리는 차량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패션감각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렇게 잘 꾸미고 깔끔하게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드물다.
하지만, 물질적으로 이미 충분한 사회에서 우리의 삶을 더 이상 풍요롭고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이런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존중과 이해 그리고 배낭 여행자만큼이나 넓은 마음가짐과 포용력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