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대로 발표하시겠습니까?"
스타트업 컨퍼런스 대기실. 스태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PPT 첫 장을 가리켰다.
'Perfect한 실패의 기록 - 완벽주의자가 배운 불완전한 성공의 법칙'
"네, 이대로 가겠습니다."
서준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있었다. 박민우가 커피를 건네며 다가왔다.
"떨리나요?"
"네, 많이요. 근데 이상하게도... 즐거워요."
"그게 바로 진짜 성장이죠."
박민우가 빙그레 웃었다.
"완벽한 발표를 준비하느라 밤새우던 예전의 당신은 어디 갔나요?"
"아마도... Perfect의 첫 번째 버그와 함께 사라졌나 봐요."
둘은 마주 보며 웃었다.
무대에 오르며 객석을 둘러보았다. 하진과 유진이 앞줄에서 엄지를 치켜세웠다.
"안녕하세요. Perfect의 강서준입니다."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서준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6개월 전, 저는 완벽한 제품을 만들려다 모든 것을 잃을 뻔했습니다."
객석이 조용해졌다.
"서울대 수석 출신, 대기업 최연소 TF 리더... 저는 늘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았죠. 그리고 그 완벽주의는 저의 가장 큰 무기였습니다."
스크린에 초기 기획안이 떴다. 빽빽한 일정표와 완벽한 계획들.
"그러다 우연히, 아니 어쩌면 필연적으로... 저는 실패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서준의 발표가 이어졌다. 유진의 사직서, 첫 베타 버전 출시, 서버 다운 사태... 그동안의 실패와 성장의 순간들이 하나씩 펼쳐졌다.
"하지만 이건 제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서준이 잠시 말을 멈추고 팀원들을 바라봤다.
"완벽주의라는 족쇄를 풀어준 이하진 CTO님,
용기 있는 사직서로 저를 깨우쳐준 김유진 님,
그리고..."
서준의 시선이 박민우에게 향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쳐주신 박민우 대표님까지."
청중석의 박민우가 따뜻하게 미소 지었다.
"우리 팀은 이제 '완벽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즐기죠. 왜냐하면..."
서준이 환하게 웃었다.
"그 실패야말로 우리를 완벽에 가장 가깝게 만들어주니까요."
발표가 끝나고 객석에서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질의응답 시간. 한 청중이 손을 들었다.
"완벽주의를 완전히 버리신 건가요?"
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버린 게 아닙니다. 다만... 완벽에 이르는 새로운 방법을 배웠을 뿐이에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성장하는 법을요."
발표장을 나오자 팀원들이 달려왔다.
"대박! 서준아, 방금 L사 대표님이 전국 확대 얘기하시면서..."
하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진이 끼어들었다.
"대표님! 베타테스터 커뮤니티에서 난리 났어요. 방금 발표 영상이 실시간으로 중계됐거든요!"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박민우가 물었다.
"이제 어쩔 건가?"
"Perfect 2.0요?"
서준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번에도 완벽하진 않겠죠. 하지만..."
그의 눈에 장난기가 어렸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불완전하게 시작해보려고요. 더 빨리, 더 많이 실패하면서요."
박민우가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축하해요. 이제 진짜 완벽해진 것 같네요."
사무실에 도착하자 팀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Perfect 2.0을 위한 첫 회의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자, 새로운 실패를 시작해볼까요?"
서준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창가에 걸린 새로운 슬로건이 눈에 띄었다.
"Perfect하게 실패하자"
완벽한 끝이란 없다. 다만 새로운 시작만이 있을 뿐.
서준은 이제 그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걸 아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완벽한 깨달음일지도 모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