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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un 15. 2020

함창, 오디 누에고치와 옛 추억

함창 아트로드에서

봄이 익어 나뭇잎이 무성 해지는 5월이 오면 한 손에 주전자를 들고 친구들과 들녘으로 달려갔다. 먹을거리가 부족한 그때는 5월에 익는 뽕나무 열매 오디의 별난 맛이 어린 친구들을 들녘으로 불러냈다. 한 손 가득 까맣고 빨간 오디를 따서 입에 털어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달고 신 과즙이 목구멍을 넘어가면서 오금을 조리게 했고 입 밖으로 검붉은 오디즙이 흘러내렸다. 손바닥과 입술이 까맣게 물들도록 오디를 따먹었다. 배가 부르면 들고 간 주전자에 가득 오디를 따 담았다. 부른 배를 튕기며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흘러 밀양에 사는 동서 집 뒷 언덕을 산책을 하는 길에 까만 오디가 달린 뽕나무 몇 그루가 눈에 띄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손을 뻣어 오디 몇 개를 따서 입에 넣었다. 시큼한 맛이 입안에 감돌면서 어릴 적 5월의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내 고향 함창은 명주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함창에서는 누에고치가 부화되어 비단이 되고, 함창에서 태어나는 아기들에게 선물하는 배넷 저고리가 되고, 전통 조각보의 재료가 되고, 현대 예술의 소재가 되고, 화려한 현대 여성의 의상이 되고, 마을의 화합과 미래가치를 표현하는 상징이 되었다.


누에고치
누에고치에서 얻은 실로 비단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닥종이 인형으로 재현했다.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섬유인 명주로 만든 전통 조각보
예술과 현대 여성의 화려한 의상으로 재탄생
누에고치와 명주실로 마을의 화합과 미래가치를 표현한 함창의 상징물
함창의 특산물인 누에고치와 쌀의 형상화

함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옛 향교가 있었던 자리에 함창의 고지도가 재현되어 있다. 어릴 적에 이곳이 동네에서 제일 높아 고원이라고 불렀다. 고원에서 자라는 닥나무를 꺾어 껍질로 채를 만들어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팽이를 돌리는 곳이었다. 장수하늘소를 잡아 놀았던 곳이기도 하다. 나무 위 종달새 집을 털어 새알을 끄집어냈던 곳이다. 껍질이 얇은 새알을 입에 넣어 살며시 물고 높은 나무 위에서 조심조심 내려왔다.      

고문헌에 남아 있는 함창의 옛 지도

환하게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는 시골 인심을 명주실 뭉치와 시장 아낙네 머리 라인의 이중적인 이미지로 표시하고 있는 함창 전통시장은 현빈, 이연희가 주연한 영화 '백만장자의 첫사랑' 촬영지이기도 하다. 매 1일과 6일에 오일장이 선다.  함창 장날에는 태봉, 이안, 농암, 가은 등 산골동네에 살고 있는 아낙이 고추, 마늘, 보리쌀, 닭 몇 마리를 머리에 이고 어깨에 지고 와서 시장바닥에 쪼글시고 앉아 늦도록 팔아 귀한 현찰을 모았다. 객지에 보낸 아들 학자금 마련을 위해 몇 년간 기르던 암소를 팔기도 했다. 복날에 처가를 찾아오는 귀한 사위에게 보신탕을 내주기 위하여 장모가 봄에 강아지를 사는 곳이다. 명절에 설빔을 사 입는 곳이다. 볼거리가 귀하던 그 시절엔 거름 지게를 지고 함창장에 와서 찰떡과 가락국수를 사 먹으며 사람 구경을 했다. 더러 약장사가 와서 사람을 모아 차력을 보이고 노랫가락을 불러 재키는 날도 있었다. 서커스가 들어온 날이면 모처럼 시골사람 눈과 귀가 즐거워 홍재하는 날이었다. 읍내에 자란 나는 엄마를 졸라 풀빵을 사 먹기도 했고, 땅에 떨어진 동전을 줍기 위해 시장바닥을 어슬렁거렸다. 어릴 적 나는 자주 시장에서 돈을 줍는 꿈을 꾸었다. 꿈속의 돈은 줏어도 줏어도 끊임없이 나타났다. 꿈에서 깨면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함창 장날에 장터 형님들이 저지른 짓궂은 장난을 생각하면 지금도 계면쩍다. 그때는 비닐봉지는 커녕 신문지도 귀했다. 시장에서 돼지고기, 닭고기나 생선을 사면 돌가루 종이(시멘트를 담은 크고 누런 종이봉투)에 둘둘 말고 볏짚으로 묶어 주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아이들은 함창 장날에 마른 개똥이나 돌덩이를 돌가루 종이에 싸고 볏짚으로 묶어 길 모퉁이에 던져두고 멀리서 망을 보았다. 마치 푸줏간에서 고기 한칼 사서 가다가 길에 흘러 떨어진 것처럼 말이다. 길가던 아낙이 발견하고 주위를 둘러본 후 재빨리 주워 장바구니에 넣고 빠른 걸음으로 가던 길을 갔다. 그 순간 동네 아이들은 배를 잡고 웃어댔다.

    

아침에 비가 온 날, 장터로 이어지는 길이나 골목길은 빗물이 고이고 온통 질퍽거리는 진흙길로 변했다. 잔뜩 진흙이 묻어 미끄러지고 깜장 고무신이 자주 벗겨졌다.  누런 흙물이 튀어 바지 하단을 적셨다. 오일장을 보러 온 아주머니들은 덜 질고 마른땅을 찾아 조심조심 밟으며 장터에서 파는 나일론 치마를 사러 갔다. 이때를 노려 장터 아이들은 길 가운데 작은 웅덩이를 파고 흙과 물을  붓고 개 똥을 넣었다. 웅덩이 위에 마른 흙을 뿌려 감쪽같이 마른땅으로 위장시킨다. 마른땅이라고 착각한 산골 꼬마가 웅덩이 위를 디뎌 한 발이 빠져 당황해하고 잔뜩 화를 낼 때, 멀리서 지켜보던 아이들은 배꼽이 빠지라 깔깔 웃어댔다. 또 다른 재미거리를 찾기 위해 바싹 깎은 민머리를 굴렸다.


지붕과 콘크리트 바닥을 갖춘 아케이드로 변한 함창 전통시장
옛 장터 한 모퉁이에서 여전히 참기름을 짜고 있다. 낚시 미끼로나 쓰이는 들깨 깻묵도 그 시절엔 좋은 간식거리였다.


함창의 중심을 지나는 큰길에 접한 세창 술도가는 이 곳에서 제일 큰집이고 제일 잘 사는 유지였다. 세창 술도가의 막내딸은 나이가 나보다 한 살 많은 친구였다. 친구 집의 넓은 마당과 2층 집 계단을 뛰놀던 중에도 친구 엄마가 내어 줄 간식을 내내 기다렸다. 친구 어머니는 가끔 귤이나 바나나를 내어 주셨다. 그 당시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조차 없었던 귀한 과일을 세창도가 친구 집에서 얻어먹었다. 신나게 놀다 지나치는 친구 아버지에게 꾸뻑 인사를 했다. 그분은 어린 내가 보아도 풍채가 좋고 잘 생기셨다. 그 당시 난방하고 밥을 짓는 19 공탄 재료인 무연탄을 공급하는 문경 탄광 중 하나를 소유하신 분이었다. 친구 아버지 김세영 씨는 김천고등학교 이사장이었고, 대통령을 뽑는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위원을 지냈다. 아트로드의 관광지중 하나인 고령가야 태조릉의 진입구에는 김세영 씨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함창 김 씨의 후손 중 지역사회를 발전시켰거나 공덕이 있는 이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중 하나에 친구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현재 세창도가의 넓은 마당 중 일부는 주민을 위해 공용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술을 빚던 도가 건물은 아트로드의 함창 감읍, 금상천화, 술도가 아트 카페, 라온 섬유 갤러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생전에 모은 부를 지역사회를 위해 무료로 대여해 주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내 친구는 어떻게 변했는지도 궁금하다. 법률가와 결혼해서 대구에서 살고 있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던 것 같은데...

      

금상첨화, 함창 감읍
막걸리를 빚는 술도가
술도가 아트 카페
과거 술을 만드는 흔적의 공간을 부유하는 막걸리로 표현


어릴 적에는 왕릉이 놀이터였다. 큰 무덤 위에 올라가 미끄럼을 타고 내려왔다. 그래서 능은 올라가는 평평한 쪽과 내려오는 가파른 쪽의 잔디가 죽어 흰 띠를 이루었다.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무덤의 주인을 경외해서 능에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여러 석상에는 올라가서 놀았다. 까까머리 중학생들이 모여 남몰래 담배를 피우거나, 중학교 입학해서 처음 만나는 산골 촌놈을 불러내 한 판 떠서 콧대를 꺾어 버리는 장소이기도 했다. 시간이 조금 흘러 나라 전체가 배고픈 시기를 지나 염치를 알게 되는 시기부터 함창 김 씨 후손들은 왕릉 주변을 다듬고 석물을 정비했다.

이 왕릉은 서기 42년경 낙동강을 중심으로 일어난 고령가야의 태조 왕릉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 선조 당시 경상도 관찰사 김수와 함창 현감 이국필 등이 무덤 앞에 묻혀있던 묘비를 발견하여 고령가야 왕릉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 후 조선 숙종의 왕명으로 묘비와 석양(石羊)을 마련하고 후손에 의해 관리되었다. 함창에는 왕의 태를 묻었다는 태봉이라는 지명이 있다. 앞산 오봉산에 오르면 여러 고분군이 있어 그릇 몇 점씩 주어 올 수 있었다. 나도 어릴 적에 낡은 긴 칼을 줏었는데,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귀한 청동기로 만든 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넓은 들과 돗질 냇가가 일구어 놓은 비옥한 함창은 고대 적부터 사람 살기 좋은 곳이었다.


함창역 - 증촌리 가야마을 - 전통시장 - 바탕골에 이르는 폭넓은 장소에 거쳐 조성한 아트로드를 천천히 걸으면서 함창 예고을의 다양한 작품과 옛 추억을 만나 보자. 함창에도 맛집들로 파스타 맛집인 쿠치나, 명실상감 한우, 두부 맛집 오식당 등이 있다. TV에 나왔던 착한 식당, 자연산 미꾸라지로만 끓이는 추어탕 집도 있다.  그중 한 곳에 들려 오래 걸어서 허기진 배를 채우면 된다. 마지막으로 교촌리에 있는 명주 테마파크에 위치한 카페촌을 찾아가 여행을 마무리 하자.


분재, 다육식물, 야외공연장과 아늑한 내부 장식을 갖추었다.
화려한 도안의 박공예, 특별한 기법의 섬세한 도자기, 인두로 지져 얼룩무늬를 넣은 괴목. 천재적 예술가가 수집한 미술품들이다..
예술 작품으로 봐주어야 하나? 이 음란한 시도를.  

알차다, 속이 차다라는 의미를 지닌 옴팡지다는 단어에서 따온 오방지리 카페의 주인장은 봉화 출신으로 대재 다능한 예술인이다. 매화와 난을 치고, 도자기를 굽고, 박 공예의 대가라 특별 도안과 음란한 그림을 즐겨 새겨 넣었다. 19세 금지지역인 작지만 알찬 전시공간에 들려 그의 음모에 동참해 보자.


나는 카페에 들려 차 한잔을 마시며 아트로드를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과 사연들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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