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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날 Jan 31. 2024

빗속에서 달리기



발톱에 피가 차서 한동안 달리기를 쉬었다.


피부과 의사 선생님이 말하기를, 발톱에 지속적으로 충격을 주면 피가 찰 수 있다고 한다. 달리기를 더 열심히 한 것도 아닌데 난데없이 피가 찰 건 또 뭐람. 피가 찬 부위에 무좀도 있다고 해서 약을 처방받고 다소 심란한 마음으로 병원을 나왔다.


2주 동안 무좀 부위를 사포줄로 다듬고 처방약을 바르니 두꺼웠던 발톱이 얇아지고 파랗게 질렸던 부분이 피가 빠지면서 하얗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제 모습을 되찾은 발톱을 보면서 자신감이 붙은 나는 오랜만에 러닝화를 신고 밖을 나섰다.


그렇게 트랙 위에서 조금씩 속도를 높이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많이 내리지는 않아서 곧 그칠까 하고 산책로의 교량 밑에서 기다려봤는데, 뒤늦게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오후 내내 비가 내릴 예정이라고 해서 어떻게 해야 되나 싶었다.


비 오는 날 달려본 적은 없지만, 오랜만의 달리기라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교량 밑에서 오랫동안 고민을 한 결과―고민하는 동안 비가 그칠까 하고 정말 느긋하게 고민했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다―한번 빗속에서 달려보기로 결심하고는 옷을 여미고 교량의 그늘 밖으로 나섰다.


러너들은 빗속에서 하는 달리기를 ‘우중런(雨中Run)’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나는 의도치 않게 처음으로 우중런을 했다.


다행히 비가 많이 내리지는 않아서 우중런을 시작할 때 우려했던 문제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비가 얼굴을 때려서 시야를 확보하기 어렵다든가, 길에 고여 있는 물웅덩이 때문에 달리기가 힘들다든가 하는 문제 말이다.


다만 우려하지 않았던,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는 있었다. 우선 비에 젖은 얼굴이 미끄러워서 틈만 나면 안경이 흘러내렸다. 10km의 우중런 중 마지막 2km를 달릴 때는 얼굴에 기름칠을 해놓은 것처럼 안경이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흘러서 안경을 얼굴에 박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비에 젖은 신발과 옷 때문에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옷이 가벼운 소재라 그런지 생각보다 몸이 무거운 느낌은 없었지만, 물에 젖은 휴지를 몸에 덕지덕지 붙이고 달리는 기분이 들어서 달리는 내내 어딘가 거추장스러운 느낌이었다.


길에 사람이 없고 공기가 시원해서 기록을 내기에는 괜찮은 것 같았다. 평소의 달리기가 공냉(air cooling)이라면, 우중런은 수냉(water cooling)으로 달리는 기분이었다. 수냉이 일반적으로 공냉보다 냉각 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번 달리기는 최근 몇 개월 동안 달린 것 중에 가장 괜찮은 기록이 나왔다.


우중런을 마치고, 땅콩 마사지볼이 다리 근육을 푸는 데 좋다고 해서 집으로 돌아와 거실 한구석에 오랫동안 방치해둔 땅콩 마사지볼을 찾았다.





땅콩 마사지볼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물로 씻으면서 한동안 외면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그동안 너의 가치를 몰랐어), 땅콩 마사지볼을 바닥에 놓고 종아리에 무게를 실어서 굴리기 시작했다(이제 너의 가치를 증명할 차례야). 아킬레스건 쪽이 가장 아플 줄 알고 긴장했는데, 의외로 종아리 아래쪽은 아무런 통증이 없었다.


그리고 땅콩 마사지볼이 종아리 위쪽을 지나가자, 알이 배긴 곳을 누군가 꼬집고 비트는 것 같은 통증이 들이닥쳤다. 근육이 감전되는 것 같은 찌릿한 충격에 나는 단발적인 비명을 질렀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허를 찔려서 훨씬 고통스러웠다. 10분 동안 마사지를 하면서 60분을 달릴 때와 비슷한 양의 땀을 흘렸다.


마사지는 아픈 만큼 효과가 있는 걸까. 효과가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아픈 만큼’ 효과가 있는 거라면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무서운 것 같다.




이미지 출처: Comstock/Think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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