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이사 Oct 06. 2020

재력과 잠재력.

무기력도 힘이다.


입사 2년 차 구매팀 병아리가 중고차를 뽑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업팀 입사 3개월 차 달걀이 K5 신형을 뽑았다.


쉬우려니 참 저렇게 쉬운데, 망설이던 시간이 엄마 매실액만큼 오래되다 보니 재기 시작한다. 월급에서 세금 떼고, 적금에 연금 빠지고, 통신비에 관리비에 다 빠져나가고 겨우 남은 늘씬한 잔고로 과연 차를 감당해 낼 수 있을까. 보험료, 세금, 유지비, 반드시 긁어먹을 앞 뒤 범퍼와 사이드미러 수리비까지. 어릴 적에는 핸들 잡을 손과 브레이크 밟을 발 하나, 신호등 볼 눈만 있으면 운전이 되는 줄 알았는데 그 위아래 삼십 센티 남짓한 핸들 하나 내 거로 만들어 잡기가 여간 복잡하다.


회사 어른들은 비가 와도 자전거로 출근하는 나를 보며 본인들이 총각이었으면 검소한 나를 보쌈했으리라 하시지만, 이사님께서 순수한 얼굴로 그 이야기하실 때 제가 입고 있던 보풀 천국 하트 카디건이, 어디서 주워 신은 듯한 꼬질꼬질한 별 딱지 운동화가 30만 원 웃도는 걸 아셨다면 들쳐맸던 보쌈을 얌전히 내려놓으시겠죠.


잘 봐주려고 해도 썩 미친 듯이 검소한 편도 아니다. 죄책감을 덜기 위한 Trick으로 장바구니에 묵혔다가 사고 싶은 건 웬만해선 산다. 짝사랑을 싫어하는 타입이라 그런가. 한 번 빠지면 내 거로 만든다. 적금은 월급에 50퍼센트 이상은 한다. 그렇다고 월급이 어마어마한 것도 아니다. 딱 내 나이 또래 받는 정도, 혹은 그 언저리.서른이 되면 사야지 했던 버킷리스트 백도 옆구리에 장전했다. 새 것 같은 중고로. 그 마저도 아끼다 똥 되는 중이지만.


당장 무언가를 살 수 있는 게 재력이라면, 장바구니에 넣어둔 것을 언젠가 얻을 수 있다는 게 잠재력인가. 바로 지불할 수 있는 현금이 재력이라면, 한 달 후에 지불할 수 있는 카드 대금은 잠재력인가.

자산이 재력이라면 부채는 잠재력인가.


다른 카테고리의 단어들인데, 괜히 말장난을 하다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저런 의미라면 "포텐셜이 터졌다"는 파산 혹은 부도상태가 아닐까. 장바구니를 모두 비웠더니, 카드대금이 터졌고, 부채가 상층권을 뚫었다.

어쩌면 나는 재력도, 잠재력도 없는 아무개 일지도 모른다. 무기력만 가득한 어른이 되면 어쩌지. 무기력도 나름 힘이라며 애써 위로해 본다.


잠재력이 있는 아이이고 싶은 줄 알았는데.

재력 있는 어른이 되고 싶은 것 같다.  



이전 02화 입사 8년 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