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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사 Oct 06. 2020

춤추게 할 고래가 필요하다.

마음이라는 바다에


"2 더하기 2가 뭔 줄 아세요?"

"4잖아"

"왜 사냐."


현장에 있던 외주업체 엔지니어부터 부서 위아래 직원 할 것 없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섞인 욕설과 함께 뒷 목을 잡혔다. 미간에 석 삼 자를 만들며 작업하던 분들에게 작은 웃음 선물해 주는데 뒷 목 한 번 내어드리는 건 싸게 먹혔다 생각한다. 내가 만든 웃음바다에서, 나는 칭찬받은 고래처럼 춤췄다.


퇴사하면 시골 내려가서 소를 키워야 한다. 먹고 살 별난 재능이 없기 때문에 부모님께 빌어 먹어야 한다. 유튜브를 할 정도의 개성도 없다. 고로 월급쟁이 이외에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냥 멋있어 보이고자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가는 척해본다.


요즘 직장인들의 2대 망언이 '퇴사한다'와 '사업한다(유튜브 시작할 거다)' 란다.

나는 마음속에 사직서를 품는 대신, 춤추게 할 고래를 키우기로 했다.


마음에 사는 고래


마음속에 고래를 키우려면 우선 자격지심을 인정해야 한다. '저 저가 내 밥그릇을 뺏으려 잘난 체 한다' 고 생각하는 순간 꽈배기 장인이 된다. 꼬인 마음에서 칭찬의 말이 나올 리가 없다. 내 경험이다. 온갖 착한 척 다 하지만 불현듯 찾아오는 자격지심은 공복 짜파게티 냄새보다 견디기 힘들다. '저 자는 이렇고, 나는 이렇다' 이 단순한 걸 인정하는 게 아직도 힘들다. 어른들은 마인드 컨트롤이 쉬울까.


퇴사하고 싶은 욕구가 최고치일 때를 돌이켜 보면, 역시 그때마다 작동한 건 자격지심이다. 시름시름 앓다가 찾은 방법은 그것을 인정하고 직시하는 것. 모른 체 하고 외면했다간 아주 중요한 타이밍에 불쑥 튀어나와 온 마음을 고추장 먹인 황소처럼 들뛰고 다닌다. 자려고 누운 이부자리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이불 킥 하는 삶을 청산하고 싶다면, 우선 내 자격지심이 뭔지 직시하고 인정해 보자. 안 그래도 인정이라는 게 어려운 일인데, 심지어 내 못난 점을 인정하라니? 그런 마음이 들 때 고래를 출동시켜보자. 마음이라는 바다에 자격지심이라는 태풍이 휘몰아쳐도, 꿋꿋하게 헤엄칠 수 있도록 고래를 단련하자. 고래가 춤추기 시작하면, 태풍이 잠잠해지더라.


고래는 칭찬을 먹고 자란다. 고래가 헤엄치는 바다는 타인을 칭찬하며 넓어진다. 단단하고 바르게 자란 고래는 마음에 태풍이 찾아와도 흔들리지 않도록 굳게 잡아 줄 것이다. 내 마음속 고래는 지금 얼마나 컸으려나.


고래밥(칭찬)을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를 봐야 한다. 그러려면 '난 나고 넌 너야' 마인드를 장착해야 한다. 가식적이어도 되고 본인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칭찬이어도 된다. 우선 하자. 처음이라 어색하고 간지러울 수 있다. 그에 익숙해지는 것도 힘든데 처음부터 진심을 다 해 칭찬하려고 애쓰지 말자. 시작도 전에 진 빠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습관적인 칭찬 덕분에 '소울리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 결과 내 칭찬에 별로 흥미가 없어하는 눈치들이지만, 뭐 어떤가. 칭찬에 신빙성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이젠 맛집 추천을 해줘도 믿지 않더라. 씹기도 전에 맛있다고 한다나 뭐라나.


뭔가를 키우는 건 쉽지 않다.

씨앗을 틔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싹이 난 이후 무럭무럭 자라게 하려면 갖은 노력을 해야 한다. 농부의 딸이라서 잘 안다. 열정에 불 지피기도 마찬가지다. 불붙은 이후가 난제다. 차라리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으면 패배감도 없다. 씨앗을 심지 않으면 싹이 죽을까 걱정할 일도 없다.

처음은 쉽지 않다는 걸 앞 선 경험으로 안다. 기억력이 좋은 누군가는 첫걸음마의 기억을 떠올렸거나, 현재는 도미닉 토레도 보다 분노의 질주를 하고 있는 먼 옛날 초보운전자도 처음은 넘어지고 깨지기 마련이란 걸 안다. 본인도 모르게 재능이 있어서 단 번에 멋지게 키워낸다면 럭키지만, 이걸 깨닫기 위해서도 어쨌든 뭔가 심어봐야 한다. 결과물이 어떻든 한 번 키워본 사람은 아무것도 안 심어본 빈 화분보다는 낫겠지.


이제부터라도 마음이라는 바다에 고래 한 마리씩 키워 보는 게 어떨까.

밑져야 본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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