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현관 앞에서 배우는 거리감.

기다림이라는 이름

by 은기

집으로 무사히 돌아온 뒤에도 현관문은 예전과 똑같이 열린다.

언니와 오빠가 등교할 때, 혹은 엄마가 환기를 위해 잠시 문을 열어둘 때.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문틈 사이로 코를 들이밀지 않는다.


대신, 문에서 정확히 세 걸음 뒤로 물러나 그 풍경을 가만히 바라본다.

열린 문틈으로 스며드는 바깥의 냄새는 여전히 강렬하다. 바람은 내가 모르는 수만 가지 이야기를 실어 나르고, 그날 나를 얼어붙게 했던 차가운 공기와 날카로운 소음도 여전히 그곳 어딘가에 남아 있다.

나는 이제 그것들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더는 서두르지 않는다.


엄마가 문 앞에서 신발을 신을 때면, 나는 현관 매트 위에 단정히 앉는다.

그것은 밖으로 나가지 못해 안달하는 몸짓이 아니다.

‘엄마 다녀오세요.’ 라고 엄마에게 보내는 나만의 고요한 신호다.

‘철컥-’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조용히 숨을 고른다.

예전에는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를 가로막는 벽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안다.

문이 닫힌다는 건 단절이 아니라, 다시 열릴 때까지 내가 이곳을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약속’이라는 것을.

가끔 문이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열려 있으면, 찰나의 호기심이 예전처럼 마음을 앞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발바닥을 타고 전해지던 그날의 차가움과, 어둠 속에서 나를 간절히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집 안에는 내가 반드시 이곳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들이 가득하다.

따뜻한 밥 그릇, 보드라운 이불,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세상 전부처럼 아껴주는 가족들의 품.

나는 이제 현관에서 연기처럼 사라지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 대신 그곳에 의젓하게 앉아 ‘기다리는 쪽’을 택한다. 기다림이란 겁이 나서 멈춰버린 나약함이 아니다.

돌아갈 곳이 어디인지, 내가 사랑받는 곳이 어디인지 분명해졌을 때 비로소 할 수 있는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다. 문은 다시 닫히고 집 안은 평화로운 정적에 잠긴다. 나는 천천히 몸을 말아 현관 옆 햇살이 잘 드는 곳에 눕는다.

이곳은 이제 나에게 스쳐 지나가는 통로가 아니라, 마음 편히 머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넓은 안식처다.




� 명언 한 줄

“고양이가 문턱을 넘지 않기로 결심한 순간, 집은 감옥이 아니라 비로소 하나의 우주가 된다.”

일요일 연재
이전 13화13화. 이름이 들려온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