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대로가 좋다
어떤 사람 같아요?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이 나오면 그것은 정답일까?
언제부터인가 '넌 어떤 사람이니?'라고 물어보면 되물어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곤 그 대답이 무엇이든 이렇게 답한다.
"네, 그게 저예요"
상대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건 그 모습이 나라고 이야기하며 스스로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다만 그들이 비난의 의미로 이야기했건 칭찬의 의미로 이야기했건 그것은 크게 관여치 않는다. 이제는.
어린 시절, 아니 불과 몇 년 전까지도 타인이 보는 시각이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경향이 아주 컸다.
크게 좌절했고 크게 실망했다.
주로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비난만 받았냐 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칭찬과 찬양을 받은 것도 적잖았지만 이러한 긍정의 말도 결국은 큰 타격감으로 돌아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고, 좌절도 크게 돌아온다.
그럼, 타인의 말을 무시하라는 말이냐고?
NOPE!! 절대 아니다.
다만 타인의 의견은 듣고 수렴하되 지배되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개떡콩떡 같은 말일까.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너 참 예쁘다"(칭찬)
말 그대로 외모를 이쁘게 보고 칭찬을 하는 말이다. 그 안에 굳이 뜻과 의미를 해석하고 부여할 필요도 없고 너무 크게 기뻐할 이유도 필요도 굳이 꼬아서 들을 필요도 없다.
간혹 어떤 사람은 "예쁘다"라는 말을 계속 듣고파서 본인의 외모를 가꾸는데 집중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 말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져 히죽거리며 행복을 만끽하는 이도 있다. 그게 나쁘냐고? 아니지.
그걸 받아들이는 내가 칭찬의 말에서 기쁨만 취하고 비난의 말은 거를 수 있는 힘만 있다면 얼마든지 누려도 좋다.
다른 말로 타인의 말에 내 감정이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면 칭찬은 충분히 감사히 받고 걱정과 조언도 적절히 감사히 받아도 좋다는 말이다. 말 그대로 미처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부족하고 모난 부분들이 피드백을 통해 좋은 방향으로 성장해 갈 수 있는 것도 조언과 걱정의 말들이다.
수용할 수 있으면 받아들이고, 사정없이 흔들릴 것 같으면 차라리 반사를 외치는 게 나을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비료도 땅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면 소용이 없다.
스스로가 타인의 말에 타격감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싶을 때가 비로소 들을 준비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남들이 입으로 싸는 똥을 내가 받으면, 내 손은 똥칠이 된다.
그 똥을 피해버리면 그 똥은 그 사람의 몫이다.
스스로를 잘 돌아보면 굳이 남의 똥을 내 손 더럽혀가며 내 코 괴롭혀가며 같이 치워줄 만큼 착하지 않을 거다. 내가 싸는 똥도 생각보다 많을 것이기에 그냥 각자의 똥은 각자 치우며 살자.
화가 치밀었던 수많은 순간들이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 게 되고, 절대 받아들일 수없었던 전연인과의 결별사유도 지나고 보면 유치 찬란한 자존심 싸움이었던 경험들 누구나 한두 번쯤은 있다. 지나고 보면 지나갈 일이다.
화내고 속상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내 인생의 소중한 시간이다. 그들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를 묻지 말고 스스로에게 답해줘라.
겁나 예쁘고 똑똑한 데다 멋진 사람이요(크-)
완벽할 필요도 없고 완벽할 수도 없다.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인 거다. 스스로가 믿으면 우주로 가는 로켓도 만들고 바닷속에 터널도 뚫어버리는 게 인간이다. 그들이 특별히 똑똑해서? 맞다.
그런 쪽으로 미친 재능을 가진 천재들이 다른 쪽으로 미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그려내는 세상을 '겁나 예쁘고 똑똑한 데다 멋지기까지 한'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의 역량을 뽐내며 살다 보면 불가능했던 것들이 가능해져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하려 했던 것들을 적당히 잘 해내고 들어와 나른한 밤을 맞이하고 있다면, 이미 충분히 잘 살아내고 있다는 거다. 오늘 내가 한 것으로 인해 내일의 내가 할 것이 연결되고 모레의 내가 할 것들이 만들어진다.
누가 뭐라 해도 각자의 인생은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가치 있고 훌륭하다.
오늘도 잘 살아낸 것을 기특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