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할 때, 절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꿈뻑꿈뻑... 2시간 47분째.
행사를 마무리하고 피곤하다 못해 발바닥을 땅에 딛기도 힘든 상태로 퇴근했다. 분명 집에 올 때까지만 해도 곯아떨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집에 오니 덩치만 큰 울 애기가 졸린 눈을 비비며 엄마를 기다린다. 졸졸 내 뒤만 쫓아다니며 엄마랑 조금이라도 시간을 같이 보내려는 아이를 위해 억지 에너지를 끌어올려봤더니 실제로 힘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피곤함을 억지로 털어내려 하다 보니 진짜로 개운해진 것인지 눈은 너무 피곤한데 잠이 들지 않는다.
대체 왜 이럴까 고민하다 이럴 바에 그냥 일어나자 싶어 핸드폰을 집어 들고 오랜만에 글을 적어 내려가본다.
내일부터 국제행사가 본격 시작된다.
어쩌다 보니 여러 부분에서 찔끔찔끔 관여하게 되면서 여기저기 얽히고설켜 많은 파트에 신경이 쓰이는 상황이 되었다. 오늘도 전야제 행사에 참석해 현장운영을 지원하느라 발도 퉁퉁 붓고 손가락은 순식간에 일어났던 작은 사고로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다.
오며 가며 아는 얼굴들과 짧게 인사를 나누며 회사사람들과도 짧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런저런 소식들을 접하게 되었다.
어쩌면 거기서부터 다시금 생각이 많아졌는지도 모르겠다.
늘 스스로의 부족함에만 주눅 들어 있었는데 현장에서의 나는 언제나 활기차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들 속에서 끝날 때까지 밝게 유머를 이어간다. 외국인과도 자연스럽게 농담도 하고 이제는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지 않으며 에너지가 이어진다.
끝나면 소금 절인 배추같이 되지만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것으로 힘듦이 상쇄된다.
잘 끝났으면 된 거다.
이렇게 바쁘게 뛰어다닌 날이면,
'사람들은 역시 자신의 힘듦 이외의 것을 보기 힘들구나.'
라는 생각과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나처럼 또 지켜보는 눈이 있을 수 있겠구나'싶은 상반된 생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들곤 한다. 그럴 때면 잠시 흐트러졌던 자세를 고쳐 잡는다.
나 스스로 쪽팔리면 끝난 거다.
특히 나같이 자책을 하는 사람은 남이 뭐라 할까 봐 지레 겁먹고 작은 실수에도 엄청 스스로를 갈궈대니 떳떳하지 못한 상황이 생기는 것이 힘들다.
그게 싫어 매 순간 최대한 열심히 하는 거다. 현장에선 특히.
오늘도 그걸 다시금 인지하고 온날인 것 같다. 약간은 자각이라기보다는 메타인지되는 환경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다양한 국가에서 창업가들이 모여있는 행사에서,
어쩌면 조금은 더 느슨하게 살아도 될 텐데 싶은 마음이 들며
한국인이라서 더 조급한 것은 아닐까, 창업 생태계 속에 있어 시대의 흐름에 더 마음 바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잠깐씩 여유가 있던 순간에 이런 생각들이 문득문득 들었나 보다. 관광지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과 대조되는 현장의 지친 모습들이 오버랩되었다.
다양한 삶의 방식들이 있을 텐데 난 어떻게 앞으로 살아가면 좋을까, 내가 잘 못하는 일을 붙들고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조금은 단순하게 살아도 좋지 않을까 별별 생각이 머릿속을 끊임없이 흘러 다닌다.
오늘도 한 사람의 몫은 충분히 하고 왔음에도
한 아이의 엄마로서의 역할도 진심을 다해 전했음에도
해가 밝아오는 시간까지 잠 못 드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런 생각들이 크나큰 이유이겠지만...)
몇 시간 후면 행사장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닐 텐데
그러려면 잠을 자 둬야 할 텐데.
알람이 울리기까지 두 시간도 채 안 남은 시간, 이젠 잠들면 못 일어날까 걱정에 못 자겠네.
피곤할 때는 절대!!!
생각을 많이 하지 말아야 한다.
주절주절 적어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뜬 눈으로
3시간 40분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