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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다

소설을 써라 써~!

by 글린더

가끔 소설 같은 말도 안 되는 생생한 꿈을 꾼다.

너무나 생생해 혹시 예지몽일까 하여 눈 뜨자마자 꿈의 잔상이 사라지기 전에 상세히 기록을 해둔다.

때로는 세 페이지도 넘어가는 글을 읽다 보면 가끔 소설이 이렇게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을 때가 있다.

꿈에서 본 현실적이지만 현실이 아닌 허구들의 잔상이 어쩌면 이런 의미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이지 않았을까 상상하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이야기들이 쓰여 내려간다.


상상력이 넘치던 10대에는 골목길을 걸으면서도 골목골목의 스토리들을 상상했다. 이 문 너머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저 문 너머에는 어떤 사연들이 있을까.


소설가가 되고 싶었으나 경험의 한계는 상상의 한계로 늘 멈추었다. 아는 만큼 꿈꾸고 아는 만큼 보이리라.

닿을 수 없는 허상, 닿지 않아도 되는 상상이 잘 버무려진 세상에 닿는 소설들을 읽을 때면 그들의 경험이 궁금했다.


"많이 읽고, 많이 쓰면 돼요"


그들만큼 많이 읽지 않아서일까. 그들의 경험은 와닿지 않아도 그들의 글은 와닿는 것이 마냥 부러웠다.

그렇게 시작된 어설픈 소설은 다시 상상의 한계에 부딪혀 꽤 오래 멈춰버렸다. 다시 곧 녹아내릴 날을 기다리며 오랜만에 지나간 경험들을 돌아보며 글을 적어 내려가본다.


지난밤 교통사고가 났다.

큰 외상은 없지만 차는 꽤 크게 상한 사고였다. 운전을 하고 지금 이차와 함께한 지도 어느덧 15년이 다되어간다.

그 사이 소소하게 사고들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차가 크게 다친 적이 없었다. 타이어가 터지고 엔진룸의 무언가 터져 물이 새어 나오고 휀다는 다 휘어 통으로 다 갈아야 하는 상황인데 신기하게 외상은 전혀 없었다.


늘 그랬다.

이 차가 나를 보호해주고 있나 싶을 정도로 큰 사고들을 비껴갔다. 15년을 되돌아보면 내가 운전을 잘해서? 내가 운이 좋아서?라고 치부하기에도 너무 엄청나게 운이 좋은 사건들이 꽤 있었다. 그 순간들은 항상 이상하리만치 안정감과 괜찮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심지어 고속도로에서 뉴스에 날 정도로 큰 사고가 난 날도 내차는 앞차의 차체높이가 아주 높은 트럭이라 내 차의 앞 범퍼가 앞유리창이 트럭 번호판에 닿을 정도로 가깝게 차밑으로 들어갈지언정 털끝만큼도 닿지 않아 사고와 무관하게 상황을 건강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뒷좌석에서 주무시고 계시던 엄마도 상황을 전혀 모르셨을 정도로 조용히 아주 안전하게 상황을 벗어났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늘 누가 지켜주나 싶은 미신 같은 믿음이 생길 정도였다. 내게는 수호신이 있다 생각하며 이차는 그 수호신이 나를 지키기 위해 내게 온 차라 생각했다.

이 차는 나와 함께한 15년을 한결같이 든든하게 지켜줬다.


그러고 보면 꿈만 소설 같은 게 아니라 현실도 소설 같은 날이 많았던 듯하다. 꿈이 공상과학이라면 현실은 가끔은 호러, 가끔은 드라마와 같은 장르의 변화만 있을 뿐 소설이 이렇게 나오지 않았을까 싶은 현실들 속에 살아간다.


가끔 열심히 살아가다, 열심히 하기도 지칠 때는 현실을 잠시 덮어두고 허상과 공상의 경계 그 어딘가에서 잠시 쉬고 싶다.

내 글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작은 위로로 닿을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오늘도 교통사고 후유증 물리치료받듯 콕 집어 어디가 아픈지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한 몸을 치료하고 가볍게 수축된 근육들을 풀어주며 이왕이면 이번 스토리는 희망 가득한 명랑 드라마장르이기를 상상한다.

삶이 지쳤을 때, 지친 사람들이 잠시 짐을 덜어내고 갈 수 있는 그런 시원한 사이다가 있는 명랑드라마 혹은 잔잔한 위로가 있누 힐링드라마이기를 바라며 잔근육을 키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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