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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시스 Apr 14. 2022

간헐적 단식

온전히 비우고 잘 채우기

간헐적 단식이라니!

한달전만 해도 내 인생에서 간헐적 단식이란 단어를 들먹일 일은 없었다. 

난 세끼를 꼬박꼬박 먹는 사람이고 밀가루를 좋아해서 면과 빵과 과자를 간식으로 먹어야 하는 사람이고 아침에 일어날 때 삼겹살을 구워먹고 싶은 식욕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다. 

베트남 샤브샤브 식당에 가서 라이스페이퍼에 야채를 듬뿍 싸 먹는 모습을 본 친구가 말했다.

"넌 우울증 걸릴 일은 없겠다."


그런 내게 변화가 일어났다. 생애 처음으로 면접관이 네분이나 있는 면접을 보게 된 것이다. 

난 일을 하게 되었고 나에게서 다른 모습을 끄집어 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난 사사로운 영역에서 사적인 일을 하는 소소한 개인의 역할에 충실했는데 이제 공적인 영역의 나를 만들어야 했다. 

월급을 받으려면 공적인 내 모습이 필요했다. 도서관에서 상주 작가로 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공적인 자리에 머물러야 하는 일이다.


그때 "김민식 PD의 10일 동안 8kg을 뺀 비법은?" 이란 유투브를 접하게 됐다. '노화의 종말'이라는 책을 피디님 식으로 소화시켜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노화를 막기 위해 피디님이 실천한 간헐적 단식은 단번에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16시간 단식, 8시간 식사라는 규칙은 그 전에도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라 감탄만 했었다. 그러나 피디님의 방법에는 좀 다른 점이 있었다. 16시간의 규칙에 대한 내 예상을 깨뜨렸다. 저녁 5시나 6시로 끊는게 아니라 오후 2시로 식사 시간을 끊어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6시부터 식사를 시작했다. 한참 활동하고 간식도 먹어야 하는 오후 2시에 '식'을 끊으란 말이야? 잠은 10시에 자는데?


이상했다. 이번에는 내 마음이 엄두도 안 내던 간헐적 단식을 경험하고 싶어했다. 왜? 마음이 살짝 위치를 바꾸었으니까. 다른 모습을 만들고 싶다면 다른 시스템 속에 나를 밀어 넣는 게 맞다는데 80% 동의했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식사 시간을 경험해 보는 일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난 오후 3시에 끊고 7시에 아침을 먹는 방법으로 시간을 이동했다. 12일 중에 4일은 실패, 8일은 성공했다. 너무 힘든 날은 먹었다. 가볍게 단식을 하고 싶지 스트레스는 받고 싶지 않다. 몸무게는? 빠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더 긴 날들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몇 개월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대신 얻은 게 있다. 공복의 시간을 갖고 먹는 아침 밥상은 푸른 숲에 들어선 청량함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초록을 뒤집어 쓴 모습으로 느껴진다. 건강하고 맛있게 푸짐하게 배를 채우며 먹었다. 예전에는 많이 먹으면서도 살을 걱정하느라 찔끔찔끔 먹곤 했는데 이제는 양껏 먹는다. 그래도 양이 줄고 있다. 16시간동안 위는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들었다. 공복 후의 식사는 고독 한 후에 오게 되는 다정함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삶에는 고독이 있고 고독의 시간을 잘 보낼수록 사람들에게 다정해지듯이 공복 후의 식사는 예상치 못 한 비우고 채우는 재미를 누리게 해 줬다.


마음이란게 참 오묘하구나. 마음을 3도만 비틀었더니 꿈도 못 꿀 간헐적 단식을 스스로에게 허락하고 있다. 제일 놀래는 사람은 스스로 허한 바로 내 자신이다. 지속적으로 해 볼 생각이다. 간헐적 단식을 넘어 온전히 탈탈탈 비우는 기쁨,  잘잘잘 채우는 기쁨을 깊이 누려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버렸으니까.  


간헐적 단식의 괄호를 열고 닫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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