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 정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지 4개월이 지났어. 그동안 크게 느꼈던 것 중 하나는 돈의 중요성.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은 너무나 진실이었어. 내 배가 불러야 마음에 여유도 생기고, 주변 사람도 챙길 수 있고, 행복감도 느낄 수 있더라고.
20대 초반에 직장을 선택할 때, '돈이 많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었어. 그런 나를 보고 '아직 어려서 모르나본데 돈은 많을 수록 좋은 거다.'라고 아빠가말했지만 흘려 넘겼지. 평생 혼자 살면서 내 한 몸만 건사한다면 내 생각도 꺾이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나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늘어난다면? 돈은 많을 수록 좋은 게 맞았어.
뉴질랜드는 자연 환경이 너무나 아름다운 나라지만,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 텅 빈 곳간을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 해야 했어. 집세, 기름값, 공산품, 식재료... 모든 물가가 엄청나게 비싸서 돈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너무 빨랐거든. 남편과 원하는 것들이 다른데, 제한된 자금으로는 우리 모두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사소한 것도 다툼의 원인이 되었어.
청소나 식당 일을 도우면서 근근이 살아가야 하니, 육체적인 피로도 컸어. 처음 남편의 청소 일을 도우러 갔을 때, 부부가 같이 일하다가 싸워서 이혼하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어. 그때만 해도 과장이 심하다며 웃어 넘겼지. 당시에는 몸도 마음도 여유가 있었으니 '서로 도와가며 일하면 되지 싸울 일이 뭐가 있나' 그렇게 생각했거든. 지금은 정말로, 브런치에 유행이라는 이혼 일지를 쓰게 생겼다니까.
우리는 환경을 바꾸어 보기로 했어. 살고 있는 집을 빼고 로드 트립을 떠나기로 한 거지. 좋은 집이었던 만큼, 새로운 세입자도 금방 나타났어. 정착할 집을 찾느라 희망과 절망을 오고 간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떠돌이가 되어 뉴질랜드의 자연을 느낄 계획이야. 비싼 집세를 내는 대신 캠핑장에서 적당히 잠을 자고, 호수, 산, 하늘, 들판을 보면서 여유를 부리다 보면 새로운 행복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젯밤에는 승용차에서 차박을 하는 것이 가능할 지 시험도 해봤어. '승용차에서 차박하기'를 검색하면 자동차 튜닝부터 온갖 보조 장비까지 다양하게 나오던데, 뉴질랜드에서 당장 적용할 만한 방법은 없었어. 그래서 그냥 운전석을 최대한 눕힌 후에 침낭을 덮고 되는대로 자보기로 했지. 그럭저럭 누울 만 했지만, 확실히 숙면하려면 일자로 눕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체감했어. 사람들이 왜 그렇게 '차박을 위한 좌석 평탄화'에 진심인지 알 것 같더라.
결국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텐트도 하나 구매했어. 어떤 날은 텐트에서 자고, 어떤 날은 차에서 자고, 또 어떤 날은 숙소에서 자고. 그렇게 자연 안에서 적당히 그날그날의 마음에 충실해 보려고 해. 마음의 평화가 찾아와서 행복이 담긴 로드 트립 일지를 남길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어.
오늘의 Tip campermate.com 사이트에서 뉴질랜드 전역의 캠핑장을 검색하고 예약할 수 있습니다. 무료 캠핑장의 경우 텐트를 칠 공간과 공중 화장실 정도만 있고, 유료 캠핑장은 주방 시설, 샤워실, 와이파이 등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무료 캠핑장 중에는 자체적으로 오수 처리가 가능한 self-contained vehicle만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많으니 안내를 잘 확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