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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인데요, 룸메이트와 함께 삽니다

뉴질랜드 7개월 살이 Day91

by 여행하는 과학쌤

우리 부부는 한국에서 몇 개월의 짧은 신혼 생활을 보내고 뉴질랜드로 왔어. 지금도 결혼한 지 1년이 채 안 되었으니 아직 신혼이라고 봐야겠지? 같이 살기 시작한 후로 우린 엄청나게 많이 다퉜어. 아니, 사실 다툼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야.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이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는 것을 매일 체감하고 있어. 타인의 감정 변화, 취미 생활, 청소나 요리 습관 등등을 모든 순간 맞춰나가야 하니까 말이야.


뉴질랜드에 온 이후로는 남편뿐만 아니라 플랫메이트까지 한 집에 살고 있어서 더더욱 맞춰야 할 것들이 많아. 페루에서 온 소피는 나랑 동갑내기 여자인데,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는 준수한 동거인이야. 그럼에도 종종 불편한 일이 벌어지긴 해. 세탁기에 돌린 빨래를 며칠 동안 까먹고 안 꺼낸다거나, 주방에 오랫동안 과일을 방치해서 벌레가 꼬이는 일 같은 것. 쿰쿰한 냄새를 맡으면서도 타인의 물건이기 때문에 건드리기 애매한 거지. 가끔은 예고 없이 친구들을 초대해서 난감할 때도 있어.


모르긴 몰라도 소피 역시 사소하게 우리에게 쌓였던 꼬인 마음이 있었나 봐. 이번에 큰 다툼이 벌어졌거든. 밤늦게 집에 들어가자마자 소피가 대뜸 화를 냈어. 처음엔 영문도 모르고 눈만 휘둥그레 떴지.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냉동해 놓았던 닭고기 두 덩이 중에 한 덩이만 남아있다는 거야. 우리가 자신의 닭고기를 먹었다고 굳게 믿는 모양이었어. 그래서 우리 부부의 닭고기 한 팩을 뜯어 먹었다면서, 앞으로는 자기 음식에 손대지 말아 달라고 하더라고.


우리는 정말로 소피의 음식에 손을 댄 적이 없었어. 냉장고의 칸을 나누어 사용하는데, 소피가 사용하는 칸에 뭐가 있는지 들여다본 적도 없거든.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소피 본인이 먹어놓고 잊어버렸다는 게 제일 합리적인 결론이었어. 게다가 우리 부부가 아껴서 일주일 내내 먹는 닭고기 한 팩을 대뜸 뜯어서 하루 저녁에 다 먹어버렸다니 우리도 화가 났지. 닭고기의 행방에 대해 각자의 주장만 하면서 언성이 높아졌어.



우리한테 많이 불리했던 건 소피보다 영어를 훨씬 못 한다는 거야. 게다가 말싸움을 할 때 당황해서 어버버 하다가, 다 끝난 다음에야 '이렇게 저렇게 말할 걸' 하고 후회하는 사람 있잖아. 그게 바로 나야. 한국말로 이야기할 때도 머릿속으로 미리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려야 제대로 말이 나오는 사람인데, 영어로 갑작스럽게 싸워야 하는 상황에 놓이다니.


당시에는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라 제대로 말하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소피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와 대화해 볼 생각을 왜 안 했냐는 거였어. 남편과 신혼 생활을 하면서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을 매일매일 느끼고 있는데, 또 다른 룸메이트와의 소통 문제까지 얹어지다니. 그래도 소피는 오래 볼 사이가 아니니까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 못 다 전한 말은 여기에 소심하게 남기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아.


I think you forgot what you ate, please try to remember again. And you sould've checked and talked before eating our food.


오늘의 Tip
전월세 개념으로 보증금을 많이 내면 월세를 줄일 수 있는 한국과 달리, 뉴질랜드에서 집세를 줄일 유일한 방법은 flatmate들과 함께 살면서 집세를 나누어 내는 것입니다. flatmate가 총 몇 명인지, 화장실은 몇 개인지, 집주인과 함께 생활하는지, 공유 공간의 이용 규칙이 있는지 등을 미리 알아보고 소통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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