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복 애호가다. 생활한복 치마 두 벌과 저고리 세 벌에 겨울용 누빔 배자, 뒤꽂이까지 가지고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결혼식 날에는 새신랑 새신부를 상징하는 한복을 입고 손님들에게 인사할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해 왔다. 결혼과 아무 관련이 없던 학생 시절부터 예뻐 보이는 신부 한복을 캡처해 두었을 정도다.
하지만 현실은 늘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막상 결혼을 앞두고 보니 한복 비용이 생각보다 비쌌고, 남편이 한복 입는 것을 싫어했다. 절충안으로 우리는 스튜디오 촬영날 한복 사진을 몇 장 남기기로 했다. 저렴한 곳을 고르고 고르다 보니 단돈 10만 원에 1박 2일 동안 대여해 주는 한복점이 있었다. 가볍게 고른 분홍색 신랑 신부 한복의 퀄리티가 제법 괜찮았다.
우리는 큰 고민 없이 혼주 한복도 같은 곳에서 빌리기로 했다. 결혼 당사자인 신랑 신부의 옷과 화장에 들인 돈도 100만 원 남짓인데 혼주 한복과 화장 비용에 비싼 값을 치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양가 어머님을 모시고 몇 가지를 입어 보니, 신랑 신부 한복과 달리 어딘가 조금씩 부족해 보였다. 무엇보다 두 분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졌다. 다른 곳에도 가보자고 권했지만, 두 분 다 이렇다 할 의견을 내지 않아 대충 한복을 고르고 돌아왔다.
찜찜하던 차에, 내 드레스를 다시 고르러 가준 친구가 한복도 무조건 다시 고르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부모님의 한복을 '혼주 한복'이라고 칭하는 것은 말 그대로 부모님이 결혼의 주인이기 때문이란다. 결혼의 주인에게 비싸고 좋은 옷을 입혀드려야 한다는 것이 이어지는 논리였다.
사실 그때도 지금도 그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결혼 당사자인 신부와 신랑이 결혼의 주인이지 부모님이 주인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주인이 누구냐와는 별개로, 내가 어색한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하기 싫었던 것처럼 엄마도 비슷한 마음이 들 수 있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며칠 뒤 양가 어머님을 다시 모시고 다른 한복점에 찾아갔다. 지나치게 비싸지도 수상하게 싸지도 않은 곳이었다. 사돈의 조합은 여전히 어색하기 때문에 두 번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다행히 두 번만에 모두 만족했다는 훈훈한 이야기다. 세 번이 아닌 게 어디랴.